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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n May 21. 2020

 <더 랍스터>

사랑해서 결혼하나요?

5월 7일이었나요, 2주 전 목요일쯤일 거예요. 여느 목요일 저녁과 다름없이 저는 익선동의 한식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죠. 팔짱을 낀 채로 멍하니 서 있는데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대화 소리가 들려왔어요. 소리의 근원지는 여자 한 명 남자 둘이 앉은 테이블이었어요. 여성분은 결혼을 앞두고 있었죠. 결혼 전에 친구들에게 한 턱 내기 위해서 모인 것 같더군요.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다가 한 남성분이 이야기를 꺼냈어요. “내 친구가 최근에 결혼을 했어. 친구한테 왜 그 사람이랑 결혼해라고 물어봤는데 친구가 이렇게 말하더라고. ‘정말 이 사람이다 싶어서 결혼한 게 아니라 그때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어서 결혼했어’라고. 너는 왜 그 사람이랑 결혼하는 거야?”

제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결혼’이라는 제도가 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해진 사회 규범 속에서 당연하단 듯이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고 함께 살아가죠. ‘결혼을 해야만 될 것 같은 나이’는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자연스레 공유가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할머니께서 올해 스물아홉인 저희 누나에게 요즘 따라 “예람이는 시집 안 가냐”라고 자주 물어보시는 것을 보면요. 이 세상에서 결혼이 얼마나 중요한 이슈인지, 자신의 조건에 맞는 결혼 상대를 찾아주는 어플이 이 세상에 등장한지도 꽤 되었죠. 하지만 어디 결혼이 쉬운 걸까요, 두 행성의 충돌. 완전히 다른 배경을 지닌 이야기의 두 주인공이 만나, 하나로 합쳐져 이야기를 이어간다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수많은 로맨스 영화들보다 노아 바움백 감독의 <결혼 이야기>가 훨씬 현실적인 이야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사회는 결혼, 더 나아가 ‘사랑’을 강요하는 것만 같아요.

그리스 출신의 영화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 (Yorgos Lanthimos)는 자신의 작품 <더랍스터> (2009)를 통해 이 사회 속에서 시스템화 되어있는 사랑에 조소를 던집니다. 그가 스크린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미래의 디스토피아적인 세상에서는 짝을 이뤄야만 살아갈 수 있죠. 길거리에서도, 대형마트에서도 두 손을 잡은 커플들만 보일 뿐입니다. 짝이 없는 사람들은 도시 외곽에 위치한 한 호텔로 가야만 합니다. ‘러브호텔’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그곳에서 45일간 머무르며 자신과 함께 도시에서 생활할 짝을 찾아야만 하죠. 주어진 기간 안에 짝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은 동물로 변하게 됩니다.

호텔에서 머무르는 동안 사람들은 어떻게든 자신의 짝을 찾기 위해 노력합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면 자신과 ‘공통점’을 가진 상대를 찾는다는 점이죠. 한쪽 다리를 저는 인물은 자신과 똑같이 다리를 저는 상대를 찾고, 난시가 있는 인물은 난시가 있는 상대를 찾습니다. 만약 호텔에 자신과 공통점이 있는 상대가 없다면, 타인이 가진 특징을 인위적으로 자신에게도 만들어냅니다. 다리를 저는 남자는 호텔에 자신과 똑같이 다리를 저는 사람이 없자, 동물이 되기 싫은 마음에 수시로 코피를 흘리는 여자와 짝이 되기 위해서 자신의 코를 학대해가며 코피를 쥐어짜 냅니다. 그들의 세상에서 사랑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두 사람이 공유하는 같음이 있어야 하거든요.

<더 랍스터>의 아이러니한 세상 속에서 사랑은 필연적입니다. 란티모스 감독은 시스템화 되어있는 사랑을 풍자합니다. 하지만 그의 영화 속 세상이 저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는 점이 조금은 씁쓸합니다. 사랑해야 돼서 사랑하고 결혼해야 돼서 결혼하는. 영화 속에서는 공통점이라는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사랑할 수 있는 것처럼, 현실에서 사랑이 이루어지고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공통점뿐만 아니라 다양한 조건들이 수반되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왜 사랑하는 걸까요, 왜 결혼하는 걸까요. 아무런 조건 없이 상대방을 사랑하기는 불가능한 걸까요. 태초에 공유하던 사랑의 모습도 지금과 같았을까요. 사랑이라고 말하기 조금은 부끄럽지만, 어렸을 적의 사랑과 같은 순수한 사랑은 나이의 숫자가 하나 씩 올라갈수록 찾아보기 힘든 것 같아요. 예전에는 막연하게 결혼 참 빨리하고 싶었는데, 요즘은 과연 제가 그냥 결혼이란 걸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더 랍스터>에서, 그리고 이 세상처럼 조건이 충족되는 상대를 애타게 찾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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