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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n Feb 12. 2020

봉준호, 기생충, 그리고 아카데미

봉준호 감독의 시선은 언제나 한결같다. 그의 장편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0)부터 ‘기생충’(2019)까지 봉준호 감독은 일관된 길을 걸어왔다. 본인이 살아가고 있는 세계에 순응하기보다는 반항한다. 옳지 못하고 여겨지는 부분이 있다면 크게 외치지는 않을지언정 자신의 작품을 통해 조심스럽게 의견을 전달한다. ‘플란다스의 개’를 통해 평범한 우리들의 일상에서조차 뿌리 깊게 박혀 있는 부조리에서부터 시작된 그의 이야기는 필모그래피가 지속됨과 함께 확장되어 갔고, 나라를 지탱하는 사회, 그리고 그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의 현주소를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6), 그리고 마더(2009)를 통해 그려 나갔다.

봉준호 감독의 시선은 한국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넷플릭스와의 협업을 통한 ‘옥자’ (2017)를 통해 이 시대의 자본주의를 비판한다. ‘계급’에 관한 이슈 또한 그에게는 중요하다. 봉 감독의 첫 할리우드 작품인 ‘설국열차’ (2013)는 이미 할리우드를 기반으로 활약하고 있던 배우들과 그의 영원한 뮤즈 송강호와 작업했는데, 메시지는 확실하다. 전 세계에 막연한 계급 간의 격차를 노골적으로, 그리고 강도 높게 비판한다. 기차의 꼬리칸에 있던 그들이 기차 맨 앞 칸으로 향하는 여정을 보아라. 규제된 시스템으로부터의 일탈. 아직은 유토피아처럼 그려지는 이야기이지만 그는 이상을 시각화했다.

2019년, 봉준호는 기생충(2019)을 선보인다. 설국열차에 이어 가는 다시 한번 계급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미 어느 정도 고착되어 있는 대한민국 사회의 계급 구조에 대한 이야기. 극과 극의 모습을 대조하여 보여주기에 누군가는 영화를 보면서 불편하기도, 누군가는 공감하며 영화를 보았을 것이다. 여러 번 기생충을 보면서 느꼈던 점은 정말 한국 사회를 잘 담아내었다는 것이다. 영화를 크게 관통하는 메시지는 봉준호 감독이 기존에 해왔던 것처럼 핵심을 명확히 찌르지만, 영화 속에 등장하는 작은 디테일한 요소들은, 그의 이전 작품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한국 사회의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다. 그 결과로 한국에서 흥행의 지표인 천만 관객을 동원했다.


놀랍게도 기생충은 국내를 벗어나 외국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세계 각국의 영화제에 초청받은 것이 이를 증명한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각 영화제에서 상을 거의 휩쓸었다. 받은 상의 개수만 무려 200여 개다. 부족함이 보이지 않는 작품이었기에 해외의 영화제에서 수상함은 그다지 놀랍지 않은 결과였으나, 두 가지의 상은 참으로 의미가 깊다.

 먼저 황금종려상이다. 흔히 베니스, 베를린과 함께 3대 영화제로 불리는 칸 영화제는 1946년부터 지금까지의 역사를 자랑하는 명실상부 최고의 영화제이다. 칸 영화제의 백미는 바로 ‘황금종려상’. 경쟁 영화제이기에 최우수 작품에게 본 상이 주어지는데,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작년에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흔히 예술영화들을 베이스로 진행되기에 이번 상을 통해서 예술성을 인정받은 셈이다. 다음은 오스카상이다. 현재 전 세계 영화산업을 쥐어 잡고 있는 미국의 영화 시상식 ‘아카데미’는 미국인들의 로컬 시상식이라고 여겨도 무방하다. 비교하기 뭐하지만 한국의 청룡영화제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는 대부분의 영화가 할리우드 영화이니 아카데미 시상식은 사실상 미국의 축제다. 하지만 전 세계 영화산업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영향이 주요하기에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흔히 세계 3대 영화제라 불리는 영화제들은 예술영화들을 주로 다루는 것과 다르게, 아카데미는 흔히 우리들이 접하기 쉬운 상업영화들을 베이스로 진행된다. 따라서 마블 시리즈의 영화도 본 시상식에서는 후보에 오르기도 하는 것이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작품상을 오스카상이라 부르는데, 그 한 해 최고의 작품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그런데 봉준호가 이변을 일으켰다. 아카데미 역사상 최초로, 영어가 아닌 외국어 영화가 ‘작품상’을 수상한 것. 그 이외에도 각본, 감독,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상업적으로도 인정을 받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영화가 갖추어야 할 예술성, 그리고 상업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봉준호 감독의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소감은 참으로 의미가 깊다. 그는 감독상 수상 소감에서(봉 감독은 이번 아카데미에서 각본, 감독, 외국어영화, 작품까지 총 4개의 상을 받았다) 각종 부분에서 유력 후보로 예상되었던 세계적 거장 마틴 스콜세지를 언급한다. 넷플릭스와의 협업을 통해 ‘아이리시맨’(2019)을 제작했지만 결과적으로 스콜세지 감독은 무관에 그쳤는데, 봉 감독은 수상소감에서 어렸을 적 우상이었던 마틴 스콜세지 감독에게 감사를 표했고, 객석의 모든 사람들이 이에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 역시 봉준호의 인사에 깊은 감동을 받은 듯한 표정을 보이며 고맙다는 말로 화답했다. 더불어 봉준호는 자신의 영화를 외국에서 주목하기 전부터 자신의 영화를 사랑해줬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을 향한 감사 인사 역시 빼먹지 않았다. 이 장면들은 나의 마음을 강하게 울렸다. 세계 영화 시장에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는 한국에서 활동하던 봉준호가 영화시장의 중심,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본인이 존경하던 감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순간이 찾아온 것이 그저 놀랍다.

마틴 스콜세지(Martin  Scorsese)
쿠엔틴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


데뷔작부터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하기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은 시선을 지켜온 봉준호 감독에게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예술적으로도 상업적으로도 성공하지 못하고 애매한 위치에 서있는 한국 영화들 속에서 봉준호 감독의 성과는 한줄기의 빛이자, 충무로에서 함께 성장해 온 영화인들에게 큰 위로이며, 한국 영화의 희망이다. 황금 종려상과 오스카상을 수상한 영화를 자막 없이 볼 수 있는 나와 여러분은 축복받은 세대 속에 살고 있음이 틀림없다. ‘기생충’이라는 걸작을 우리에게 선물해준 봉준호 감독과 이하 스태프들, 그리고 제작에 힘써준 이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표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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