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나는 숫자에 약하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 산수를 어려워했다. 수학은 당연히 어려웠다. 수학 때문에 대학도 못 갈 뻔했다. 고등학교 졸업의 가장 큰 기쁨은 더 이상 수학을 하지 않아서였기도 했다. 그 만큼 수학이 너무 어려웠다. 아니 나는 숫자에 약한 사람이라고 오랜 시간 고정관념을 만들어왔다. 특히 재수 때 그렇게 수학을 열심히 공부했는데 수능 시험날 눈앞이 하얘지는 경험을 하고 나서 확신했던 것 같다. (물론 기적으로 다 찍은 것이 다 맞아서 결과적으로 성공하긴 했지만.) 내가 시도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인풋에 비해 아웃풋이 너무 안 나오다 보니 숫자의 세계는 나에게 그저 그냥 버린 세계였다.
하지만 드래곤볼 프로젝트 100일 동안 나의 고정관념이 서서히 부서지기 시작했다.
나는 숫자 그 자체를 보게 된 것이 아니라 숫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숫자가 의미하는 본질과 그 흐름 그리고 세상이 움직임이 이제는 보이는 것이다.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한 수단으로 서의 수학이 아닌, 월급 명세서와 매출이 아닌, 그저 돈을 나타내는 차가운 형상이 아닌, 세상의 이야기를 알려주는 숫자라는 존재를 알게 된 것이다.
이야기의 본질은 '맥락'이다. 이전의 나의 숫자에 대한 안 좋은 고정관념은 '왜'가 없어서였다. 왜는 맥락이다. 나는 서서히 맥락을 이해하고 왜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된 것은 드래곤볼의 메커니즘 "매일, 같은 양, 반복' 덕분이었다. 네 달 동안 매일, 같은 양의 공부를 반복했다. 금융의 역사, 철학 등 관련 도서를 읽고, 경제 기사를 보고 가계부를 쓰고 주식 어플을 보는 행동을 반복했다. 마치 초등학생처럼 나는 천진 난만하게 호기심을 가지고 그 시간들을 채웠다. 그것이 쌓이다 보니 다른 활동과 맞물려 드디어 무엇인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숫자가 들려주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이었다. 숫자는 어디에서나 재미있고 흥미로운 사건들을 잘 설명해 줬다. 복잡해 보여도 단순한 숫자로 재해석하게 되고 맥락의 파악이 빨라졌으며 왜를 이해하게 된 것이다. 경이로웠다. 역시 행동이 답이다. 마음을 열고 움직이니 서서히 빗장이 풀어지면서 숫자는 자신의 세계로 나를 들여보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