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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볼 모으기 Day 12.

화이트보드의 마법

by 쾌락칸트

다수의 사람들이 생각을 글로 옮겨 적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노트에 자주 메모를 하고, 플래너도 직접 손으로 쓰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효과적이라고 생각은 안 들었다. 막 갈겨 적은 경우가 많아서 써놓고도 잘 읽지 않아서 그랬나 보다. 그런데 화이트보드에 적는 행위를 최근에 자주 하면서부터 뭔가 큰 변화가 생겼다.


얼마 전에 프로젝트 '스프린트'를 진행할 때였다. 이 프로세스에서 화이트보드는 필수템이다. 거의 모든 아이디어를 화이트보드에 적어놓고 회의하고 솔루션을 도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나도 화이트보드에 써가면 진행을 했는데 생각보다 진행이 너무 잘되고 빠른 속도로 솔루션이 도출되었다. 솔직히 그때까지만 해도 그러려니 했다. 그러다 최근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스프린트 때처럼 화이트보드를 자주 사용하하였다. 그런데 그 전과는 뭔가 다른 것이다. 일단 화이트보드에 내 머릿속 뒤죽 박죽이던 생각들을 적었다. 그러자 빠른 속도로 머릿속이 명료해지고 실행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되는 지까지 시뮬레이션이 동시에 정리가 되었다. 그래도 이때까지도 그냥 그러려니 했다. 손으로 써서 잘되나 보다 한 것이다.


우리 집에도 화이트보드가 있다. 주로 요리나 식재료 관련 메모용으로 사용하는 A3 크기의 화이트보드인데 냉장고에 붙어 있다. 나는 외식을 지양하고 직접 요리를 해서 먹는 사람이다. 그래서 오전 업무가 끝나면 칼 같이 집으로 가서 직접 요리해서 점심을 먹는다. 그리고 좀 쉬다가 운동을 간다. 운동 후에는 저녁 요리를 해서 먹고 쉬다가 밤 10시에 취침을 한다. 그런데 문제는 오전 말고 점심 식사를 하고 운동을 하는 저 오후- 저녁시간이 그냥 흐르듯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오전에 열심히 일했으니 오후에는 꼭 해야만 하는 식사나 운동만 하고 여유롭게 지내자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하다 보니 그냥 별 의미 없이 흘려보내는 시간이 많은 것 같아서 내심 아쉽긴 했었다. 물론 운동 타임은 너무나 좋은 시간 구간에 넣어놔서 바꿀 생각은 없지만. 그러다 어느 날 오후 시간대에 약간 빡빡하지만 꼭 할 일이 있어서 냉장고 화이트보드에 30분 실행 블록으로 타임라인을 적었다. 그런데 그것들은 빠릿빠릿하게 다 해치운 것이다. 놀라웠다.


화이트보드에 그냥 쓴다는 행위가 아니라 다른 특별한 무엇인가 있다는 느낌이 왔다. 화이트보드에 쓴다는 것은 공개적인 행위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물론 집에서 동생이나 나밖에 보는 사람은 없지만 마치 공개적으로 일정을 공표하는 것처럼 느껴져 그것을 꼭 지켜야 한다는 무의식이 작동한 것이다. 사무실 화이트보드도 마찬가지였다. 나만 보는 것이지만 사적인 공간으로 인식된 노트나 종이 메모가 아닌 공적인 기능의 화이트보드에 쓰니 이것을 어기면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 비슷한 것이 실행에 자극을 준 것이다. 사물의 사회적 기능과 사람의 무의식이 이런 식으로 작동될 수 있다. 생각해 보니 일정이 복잡하거나 생각이 많은 부분을 화이트보드에 적었던 날은 거의 모든 일들을 해치웠다. 공적인 행위라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타인이 볼 수 있는 공개적인 장소에서의 사회적 행위를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 부분을 적극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전-오후-저녁 구간을 나눠서 화이트보드에 가장 이상적인 시간 계획을 작성할 것이다. 그리고 실행에 대한 결과를 관찰해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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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첫날의 새벽 기상. 어제와 다름없이 따뜻한 물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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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극단적인 표현이다. '경기장의 투사'라니. 이런 표현 너무 좋다. 감정과 행위의 이미지가 바로 그려진다. 두들겨 맞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거쳐가야 하는 것은 분명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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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을 명료하게 바라보고 구체적인 방법을 생각하고 실천하기. 조던 피터슨의 일관된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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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는 그 풍경을 바로 떠오르게 하는데 재능이 출중하다.

맛있는 피노누아, 밤바다의 발코니, 향기로운 산들바람... 근데 타조라뇨? ㅋㅋㅋ

타조는 별로지만, 여기에 뜬금없이 타조가 등장해서 완벽한 풍경이 완성된 것. 용의 주도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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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의 철학>을 다음 주부터 스터디 시작한다. 이 책은 진짜 뼈에 새겨야 하는 내용으로 가득해서 정말 찬찬히 다 해부하면서 읽고 적용할 것이다.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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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담타 장소. 최대한 오전의 푸르름을 눈에 넣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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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몸도 포기한 듯. 미라클 모닝에 적응하고 있다. 요즘 밤 8시부터 피곤해서 좀비 상태가 된다.

아무튼 깊은 수면이 길어지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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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바다표범과 키스 중에 고민했는데 좀 더 귀여운 것을 선택했다. 채소의 싱그러움과 바다표범의 바다 냄새나는 귀여움이 합쳐져서 멋진 풍경이 연상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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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씩 가볍게 해체 작업을 하고 있다. 아직 실행이 미숙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계속 시도할 것이다. 미라클 모닝에 항복한 몸처럼 실행을 방해하는 세포도 언젠가는 포기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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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다! 마법의 화이트보드. 나는 남의 눈치 안 보는 쿨한 사람이야 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것으로 쉽게 판명남. 얼마나 남을 의식하면 이런 화이트보드에도 휘둘린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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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을 체험하는 천국의 계단은 격일에 30분씩 타줘야 한다. 그래야 몸도 자기가 언제나 위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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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잡고 뵈프 부르기뇽 만들었다. 오뚜기 곰탕 육수와 쿠쿠 밥솥으로 한국 패치가 결합된 최고의 부르기뇽 탄생. 맛은 흑백요리사 1차 나가도 통과될 정도라고 인정받음. 진짜 맛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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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이렇게 드래곤볼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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