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원하는 것
'원하다.'는 욕구이며 욕망이다. 무엇을 사고 싶다. 성공하기를 바란다.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저 사람을 만나고 싶다. 등등 욕망의 모든 것은 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원함의 농도는 각기 다르다. 그냥 적당히 원하는 것이 있고 진지하게 원하는 것이 있으며 진심으로 간절하게 원하는 것도 있다. 대상도 각기 다르다. 여기서 구별해야 하는 것은 내적 순수함의 농도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원함은 외부적 영향이 생각보다 크게 작용한다. 사회가 원하는 것, 타인이 원하는 것을 자신이 원하는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내적 순수 거의 100% 원함의 농도는 일상에 있다. 쉬고 싶은 것,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잠을 자고 싶은 것 등 육체의 기본 욕구에 기반한다. 이 부분에 있어 인간은 상당히 주체적이다. 매일 해도 질리지 않는다. 그것은 아주 단순하기 때문이다. 육체적 욕구만 해결되어도 인간은 행복하다. 하지만 사회적 성취 관점, 즉 정신적 원함의 농도는 상당히 혼탁해 보인다.
생존의 관점에서 보면 차라리 과거 시대가 훨씬 단순했다. 진짜 죽으면 안 되기 때문에 노동을 하고 학습을 했다. 그런데 현대 시대에는 직접적 생존과 관련된 문제는 많이 제거되었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선택들이 있다. 생존 말고 무엇인가를 성취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굳이 원하지 않아도 성공을 해야 하고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못한 인생은 실패로 취급한다. 무리에서 떨어져 나오면 안 된다는 인간의 기본 특징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이 이 루트로 들어선다. 그리고 고통받는다. 진짜 죽을 때까지 자신이 무엇을 원했는지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하는 것. 이것은 순수 농도 100%의 원함을 찾아내었다는 의미이다. 우선 정신적 측면의 원하는 것에 대한 순수함이 확보되었다는 것이다. 선명한 나침반이 생성된다. 그리고 육체는 나침반의 방향대로 성실하게 원함에 이르기 위한 필요한 일을 수행한다. 결국 이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루고 협력해야 순수 농도 100% 그 진짜 원함을 현실에 구현할 수 있다. 하나라도 부족하면 작동이 안 된다. 흔히들 말하는 하다 마는 것이다.
이 두 세계의 완벽한 조합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 있다. 그곳은 바로 마음이다. 마음은 두 세계가 만나는 곳이다. 그런데 마음은 온전히 내 것이 아니다. 마음은 어떤 근원이다. 소명 같은 것이다. 신의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마음을 잘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어떤 선명한 울림을 느끼면 그것은 바로 원함이 진짜라는 것이다. 이 마음에서 완벽한 합의를 이끌어내야 진정한 원함은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다음은 그 무엇도 장애물이 될 수 없다. 거침이 없어진다. 그대로 밀고 나가게 된다. 그래서 이 원함은 무조건 이루어진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