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볼 아웃풋 Day 65.

부활

by 쾌락칸트

예수님의 부활이란 그분이 가지고 계셨던 인간의 육체적 형태를 벗어나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남을 의미한다. 그리고 파스카는 '건너감'을 의미한다. 이 모든 것이 특별한 '변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시간적인 순차적인 변화가 아니다. 퀀텀 점프 같은 혁명적 변화다. 하나의 존재가 차원을 넘어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매우 드물며 보통 사람은 해내기가 어렵다.


예전 부활 성야 미사에서 신부님이 강론 중에 하신 말씀이 마음에 들어왔다. 부활이란 회개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회개만 해서는 안된다. 성령의 은총이 협력해야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부활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마음을 다해 회개를 하며 진실한 실천의 노력이 쌓이고 하늘이 도와야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회개는 그냥 반성하고 뉘우치는 것만이 아니다. 새로운 시각을 갖는 것이다. 이미 알고 있는 것도 새롭게 알고자 하는 것이다. 사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착각일 수 있다. 머리로 아는 것이 실천으로 옮겨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진실한 실천은 회개의 발현이다. 여기에는 꼭 마음이 담겨 있어야 한다. 마음을 다해 실천에 옮겨야 한다. 한 번에 끝나는 것도 아니다. 지속적으로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다시 보고 또 보면서 다시 실천에 옮기는 과정이 반복되어야 한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미사를 참여하고 고해성사를 보는 것이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에 지속적인 되새김과 반복은 필수이다. 왜냐 죄는 수시로 짓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개는 수시로 해야 한다. 그래서 진짜 회개는 절대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회개는 개과천선 같은 것이다. 그래도 인간의 영역에서 노력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간들은 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다. 자신의 잘못을 생각하고 인정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인정하면 약해질까 봐 두려운 것이다. 그리고 잘못한 일은 빨리 잊어버리는 게 정신적으로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서운 것은 머리로 망각해도 마음에는 그 잘못됨이 남아있다. 그래서 그것을 털지 않고는 성장할 수 없고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나 역시 냉담할 때는 그랬다. 평생 신실하게 살았던 엄마가 고통스럽게 돌아가셔서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모든 게 허망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부정했다. 하느님은 존재하지 않고 가톨릭은 위선적인 집단으로 여겼다. 나는 절대 회개 같은 것을 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속에는 주님이 여전히 살아계셨다. 결국 어느 날 나는 부름을 받았다. 다시 주님께 돌아갔다. 그리고 회개를 했다. 이후 새로운 세상이 보였다. 이것은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몸이 움직였고 마음이 다시 새로워졌다. 그래서 회개는 너무나 경이로운 것이다.


나는 나의 개인적 부활을 소망한다. 옛 자아를 버리고 주님이 마음에 들어 하실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인간의 영역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고자 한다. 그리고 성령의 은총이 와주시기를 기도한다. 하지만 오시지 않더래도 괜찮다. 주님의 뜻이라면 다 괜찮다. 나의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그게 무엇이든 주님의 뜻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기를 오늘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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