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에 초점을 맞추면 무조건 이득
과정에 초점을 맞추면 무조건 플러스이다. 반면 결과에 초점을 맞추면 무조건 마이너스이다.
이것은 나의 직관으로 깨달은 것이다. 이 직관의 기저에는 나의 개인적인 경험들, 수많은 책과 다양한 자료를 통한 수많은 데이터의 수집과 오랜 시간의 사유가 있었다. 굉장히 간단한 공식임에도 불구하고 잠재의식에 프로그래밍하는 작업은 상당히 복잡하고 오래 걸렸다.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마음과 감정까지 납득시키는 과정은 입체적이어야 했다. 읽고 쓰고 되새기고 움직이고 생각하고 멍 때리고 오만 짓을 다했다. 이 오만 짓이란 어떻게든 의미 기억으로 잠재의식에 새겨 넣는 행위인 것이다. 결국 직관이 나타났고 나는 이 확실한 공식을 제대로 납득했다. 이제는 더 이상 의심하지 않으며 소음에 현혹되지 않을 것이다.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은 현재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생산성과 맞닿아 있다. 결과 중심적 사고는 미래에 가지게 될 것에만 초점을 맞추기에 현재를 하찮게 여긴다. 집단은 부분의 합이다. 그 하찮은 현재들이 모으면 얼마나 괜찮은 미래의 결과가 나올 것인가. 그리고 결과 중심의 완료주의로 연결성의 힘은 상쇄된다. 만약 결과만 바라보고 질주해서 원하는 것을 얻었다고 치자. 아마 백이면 백 현재는 미래 때문에 희생되었을 것이다. 원하는 것을 성취하고 나서의 감정 상태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공허감이 몰려온다면 그것은 명백하게 결과 중심적으로 진행한 것이다. 그리고 결과가 실패한다면 아마도 교훈조차 얻지 못할 확률이 높다. 이것은 거의 대부분 마이너스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반면 과정에 초점을 맞추면 모든 것이 이득인 상태로 유지된다. 결과가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대부분의 결과는 확률 게임이다. 통제의 범위가 제한적이라는 의미이다. 과정은 통제가 가능하다. 인간의 운명은 통제할 수 없지만, 오늘 하루는 통제할 수 있다. 하루에 초점을 맞추면 매일이 승리의 연속이다. 좋은 하루가 모이면 좋은 결과의 확률은 높아진다. 만약 실패하더라도 과정에서 승리의 수량이 높기에 실보다는 득이 많다. 우리가 속해있는 세상, 즉 국가와 정부 그리고 사회 시스템은 결과주의로 개인을 지속으로 억압할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우리는 자연적으로 결과 중심적 사고를 하게 된다. 세상이 억압하는 대로 수동적으로 머물면 빅터(victor)가 아니라 빅팀(victeam)이 되는 것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목격했는가.
결과 중심은 추상적이다. 과정 중심은 구체적이다. 구체적인 것은 언제나 유효하며 힘을 주고 결국에는 가치를 만들어 낸다. 그러기에 지금 이 순간에 충만한 것이 답이다. 구체적으로 충만하자. 그러면 내가 원하는 것은 아주 좋은 선물로 돌아올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 그리고 안 오면 또 어떤가. 그 과정에서 우리는 너무나 즐겁고 충만했는데.
진정한 변화는 지름길로부터 오지 않는다. 그것은 자동적이고 거의 본능적이기까지 한 삶이라는 직물에 직조되어 들어가는 매일의 엄격한 과정으로부터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