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드래곤볼 Day 45.

신유물론의 수행성 그리고 깨달음

by 쾌락칸트

어제 신유물론 강의를 듣고 뭔가 큰 울림이 있었다. 신유물론은 이분법적인 세계관 즉 재현을 넘어서는 비재현적 현상에 대해 초점을 맞춘다. 재현은 '설명'이고 비재현은 '표현'이다. 우리의 관념이나 언어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그 너머의 세계에 대한 것은 표현으로 규정된다. 물질과 비물질, 사실과 비사실, 논픽션과 픽션, 이성과 감성 같은 이분법적인 규정이 아닌 또 다른 세계는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 신유물론자들이 초점을 맞추는 부분이다. 그들은 애매모호함, 복잡성과 같은 우리가 피하고자 하는 현상들에 관심을 주고 적극적으로 끌어안는다. 나는 처음에 이 강의를 들었을 때 뭔가 거부감이 들었다. 나는 철저하게 이원론자였기 때문이다. 나는 모 아니면 도, 하거나 하지 않는다는 추구 했다. 심지어 최근에는 안티프래질의 바벨 전략에 적극 동의 하면서 중간을 허용하지 않는 삶을 지향하기로 결심하기도 했다. 그러기에 애매모호함을 긍정하는 신유물론의 주장들은 나에게는 소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어제 '수행성'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내 인식의 변화가 생겼다.


신유물론의 수행성이란 쉽게 예를 들자면 분절적 사고를 아예 하지 않는 것이다. 주어가 먼저 오고 동사가 온다라는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전복한다. 동사가 먼저고 주어가 나중에 생성된다. 행위를 먼저 하고 주체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부분은 행위를 할 때 이것은 현실과 이상이 분절된 것이 아니라 얽혀있다는 것이다. 구분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체 역시 완성이 아니라 또 다른 얽힘의 상태로 전환되는 것이다. 수행을 한다는 것이 결국 행위의 반복을 통해서 차이와 애매모호함을 적극 수용하면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전환이나 건너감은 분절이 아니라 얽힘 상태에서 애매모호하게 인식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신유물론에서는 유물론과 다르게 인간과 물질 사이에 경계는 없다. 파동만 있을 뿐이다. 한 마디로 움직임만 있다.


이 신유물론의 수행성에 대한 내용을 듣고 갑자기 온몸에 전율이 왔다. 왜냐하면 이 수행성이 나의 과거 경험에서 느낀 바와 상당수 일치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거의 모든 경험이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다이어트 같은 경우 그때 당시의 감각을 떠올려보면 신유물론의 그 '얽힘 상태'로 진행되었던 것이다.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 계기라는 것이 여러 가지가 맞물려 얽힘 상태로 존재했었다. 옷이 맞지 않는다, 몸무게가 늘어서 걱정이 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이 살쪘다고 한 마디씩 했다 등등 이 모든 사건들이 얽히고설켜서 머릿속에 저장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평소와 다름없던 어느 날 헬스장에 등록을 했다. 딱히 드라마틱하게 바뀔 거라는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뭐라도 해보자 하고 그냥 행동을 했을 뿐이다. 그리고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했다.


매일인지 이틀에 한 번인지는 그때의 하루하루는 디테일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았다. 유산소를 하고 근력을 하고 PT를 받고 식단을 조금씩 하고 그냥 여러 가지 행위들이 얽힌 상태로 진행되었다. 다이어트 성공기의 텍스트처럼 정제되어 있지는 않았다. 그냥 그 얽힌 그 상태의 움직임만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나는 기록을 했지만 그것도 분절의 형태는 아니었다. 반복에서 오는 차이를 인지했을 뿐이다. 그리고 여러 가지 시도를 병행했다. 유산소도 달리기에서 천국의 계단으로 바꿔보기도 하고 식단도 이것저것 먹어보고 24시간 단식도 해봤다. 결국 16시간 공복으로 안착이 되긴 했다. 그렇게 모든 과정이 분리된 것이 아닌 애매모호한 얽힘의 움직임으로 존재했다. 그리고 나는 애매모호한 시간을 넘어 어느덧 17kg 감량이 된 멋진 몸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다고 그것도 끝은 아니었다. 그냥 원래 했던 대로 얽힘 상태에서 움직임을 지속했다. 관성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살이 찐 상태의 움직임에서 탄탄한 멋진 몸의 움직임으로 애매모호하게 전환된 것이다. 사람들이 나에게 방법을 물어보면 나는 개념화하여 딱 부러지게 이래저래 해서 성공했다고 말은 했지만 실제적으로는 절대 정제되거나 분절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냥 움직임만 있었다. 나의 경험은 신유물론의 수행성과 놀랍도록 일치한다.


그래서 이원론적 사고에 갇혔던 내가 이것을 누구에게 전달하고 하면 재현적으로 정제해서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실제로 벌어진 사건들과 그것이 진행되었던 것은 무작위적이고 애매모호하며 복잡했다. 멋진 몸을 생각하고 행동을 해서 깔끔하게 나온 결과가 아니었다. 그냥 행동들이 중첩되고 반복되어 멋진 몸을 가진 주체로 전환되었고 나는 그 차이를 인식한 것뿐이다. 놀라웠다. 생각과 행동 그리고 결과에 대한 나의 인식이 얼마나 편협하고 분절적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은 그냥 뭉쳤다 흩어졌다 하는 움직임일 뿐이었다. 그래서 그냥 생각을 하되 매몰되지 말고 그냥 러프하게 방향만 잡고 움직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 움직임들이 뭉쳐서 어느 상태로 전환되고 그렇게 원하던 것은 애매모호하게 현실이 되는 것이다. 결국 바라는 것이 있어도 대충 품고, 지금의 현재에 초점을 맞추며 그 방향에 맞는 움직임만을 열심히 생성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이건 놀라운 발견이 아닐 수 없다. 뭔가 대단히 자유로워진 감각이다. 역시 사람은 끊임없이 배우고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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