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生)의 모든 순간들은 선물이다.
어제 갑자기 작은 조각 같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내가 두 살 때였다. 그 당시 우리 가족은 부산에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아빠는 엄마와 나를 데리고 바람을 쐬러 태종대로 드라이브를 갔었다. 태종대는 바다가 보이는 산과 괴석으로 어우러진 멋진 전망을 자랑하는 명승지다. 아빠는 가장 높은 곳에 차를 주차하고 볼일을 보러 나갔다. 그 당시 동생을 임신한 엄마는 차 안에서 딸기를 먹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순간적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이제 걷기 시작한 나는 호기심이 가득 차서 차 밖으로 나간 것이다. 엄마와 아빠가 잠시 소홀해진 아주 순간적인 틈이었다. 볼 일을 보고 나온 아빠가 차로 왔는데 내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놀래서 나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아빠는 절벽 쪽으로 굴러 떨어져 내려가는 나를 본 것이다. 아빠는 순간적으로 자기 몸을 날렸다. 그 순간 아무런 고민과 갈등은 없었다. 오로지 딸을 구하겠다는 아빠의 영혼만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무게가 더 나가는 성인의 몸이 아기보다 훨씬 빨리 떨어진다는 것을 아빠는 계산했다. 아빠는 나보다 더 빠른 속도로 굴러내려 갔다. 그리고 절벽 중간에 두꺼운 나뭇가지를 붙잡았다. 다행히 나의 가벼운 몸은 천천히 굴러 내려왔고 아빠는 결국 나를 낚아챘다.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아빠는 나를 안고 가파른 괴석을 기어올라 땅으로 올라왔다. 엄마는 너무 놀래서 펑펑 울고 있었다. 엄마를 바라보면 아빠가 한 첫마디는 "성모님이 구했다!"였다. 아빠의 직관으로 나온 말이었고 그것은 맞았을 것이다. 신의 사랑으로 나의 작은 목숨은 구해졌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거의 기적 같은 이야기이다. 물론 나는 기억이 전혀 없다. 엄마가 자주 이야기 해주셔서 나에게 마치 동화나 전설 같은 이미지의 잔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런데 갑자기 왜 나에게 이 이야기가 떠올랐을까.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이야기가 새삼 새롭게 느껴졌다. 만약 그때 아빠가 절벽에서 몸을 날리지 않았다면? 절벽 중간에 나뭇가지가 없었다면? 나는 이 세상에 없었을 것이다.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인식하니 갑자기 모든 것들이 달라져 보였다. 이후 나의 모든 인생의 순간들은 사실 주님의 선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감사한지 몰랐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모든 희로애락에 반응하며 살아왔다. 즐거운 순간도 있었지만 좌절하고, 화를 내고, 원망하고, 미워하고, 질투하고, 자책하고, 비난하는 부정적인 순간들로 삶을 채웠다.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감사할 줄 모르고 사랑을 당연하게 여긴 교만한 인간이었다. 후회가 밀려왔다. 너무나 죄송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 값진 시간들을 그렇게 보냈다니.
하지만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갑자기 눈앞의 모든 것들이 다르게 보였다. 현재가 반짝거렸다. 모든 게 아름다워 보였다. 그리고 지난날을 되돌아봤다. 그것은 축복이 가득 찬 삶이었다. 아주 어릴 때여서 기억이 없었지만 주님은 부모님의 입을 통해서 끊임없이 나에게 말해주셨던 것이다. "너는 특별한 일을 할 아이이기에 내가 살렸다. 너에게 다시 주어진 앞으로의 삶을 아름답게 살아내어라. 그리고 너의 의도를 완성해라."라고. 이제야 나는 주님의 메시지를 이해하게 된 것이다. 그래도 이제야 알게 된 것이 어디냐 하고 긍정적으로 바라보기로 한다. 지나간 시간을 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앞으로 펼쳐진 시간들은 주님의 말씀처럼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 왜냐하면 이제 기억이 났기에, 다 알았기에. 그리고 믿음과 확신이 있기에.
다시 살아 돌아온 자의 생(生)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잃을 게 없다. 이제는 모든 것이 무조건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