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것
어제 우연히 인도 점성술의 라후(rahu)와 케투(ketu)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독교 세계관에는 없는 전생과 카르마라는 인도 불교 철학에서 나온 개념이다. 자신의 별자리 차트를 보면 12개의 하우스가 있는데 거기에 자신의 라후와 케투 기호가 있는 곳이 자신의 운명 하우스이다. 라후는 이번 생의 과제 그리고 케투는 전생의 카르마라고 한다.
이 라후와 케투의 위치는 정확히 서로 반대 방향에 있다. 문제는 현생의 인간은 한쪽만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번 생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전생의 카르마가 해결이 안 되어 괴롭고 전생의 카르마에 시달리면 이번 생의 과제에 집중을 하지 못해서 인생이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는 인생을 의미 있게 살아가려면 이 라후와 케투를 수용하여 초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도 정반합의 원리와 같다.
나 같은 경우 라후는 11 하우스 케투는 5 하우스에 있었다. 11 하우스에 라후가 있는 사람은 네트워크를 통해 대중성을 확보하여 물질적 부의 풍요를 이루는 것이 이번 생의 과제이다. 그리고 5 하우스의 케투는 전생에 창조와 낭만 그리고 자아 중심적인 것에 몰두한 카르마이다. 나는 이것을 보고 뭔가 직관적으로 나의 삶을 설명한다고 느꼈다. 이 라후와 케투의 관점에서 보면 많은 것이 이해가 되는 지점이 많았다. 나는 가톨릭인지만 교회법이나 교리를 떠나 열린 마음으로 이 개념을 이해하기로 했다. 국가, 종교, 이념, 사상을 넘은 인간의 모든 것은 초월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대략 유학 시절의 20대까지 나는 상당히 자아 중심적이었으며 창작과 낭만을 중시했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30대는 혼돈 그 자체였다. 아마 이번생의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무의식적 요구가 느껴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방황을 하며 수많은 이직을 감행했다. 정신이 나갈 것 같은 기분이 자주 들었다. 아마 라후(현생)와 카르마(전생)의 본격 충돌의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40대에 들어오면서 나는 신기하게도 나만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작았지만 지만 현재는 뭔가 단단한 연결성을 가진 공동체가 되어있다. 그리고 사업을 시작했다. 나만의 독창적인 아이템으로 말이다. 비록 현재는 그것이 아닌 다른 사업을 준비 중이기는 하지만. 새로운 사업에서 네트워크는 중요하다. 물론 이전 사업에서도 나의 커뮤니티에서 큰 힘을 받았다. 이 커뮤니티는 창작과 자아실현이 주목적이다.
이 여정을 살펴보면 11 하우스의 라후와 5 하우스 케투의 특징이 확실히 드러남을 알 수 있다. 진짜 운명이라는 것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타고난 것을 무시 못한다라는 말도 적용되는 지점이다.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대로 살아간다는 말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카르마를 해소하는 것이다. 나의 카르마는 아마도 자아 중심적이고 창작과 낭만 중심이라 이타심, 포용력 그리고 대중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고립되고 단절된다는 것이 그 결과이다. 이것을 해소하는 방법은 반대로 하면 된다. 타인을 존중하고 판단하지 않으며 널리 이롭게 하는 창작으로 물질적인 번영을 이루는 것이다.
이전에는 불교의 카르마 개념을 알지도 못했지만 신비롭게도 나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인식이 이 방향으로 정렬되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어떤 힘이 나를 이끌어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한 요즘이다. 그리고 현재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빈도수가 많아지고 있고 매 순간 새롭게 인식되어 간다. 이 라후와 케투의 이야기를 통해 내 삶은 이렇게 이번 생의 의도를 이루기 위한 방향으로 조금씩 나아지고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랑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