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재현적 욕망 구현하기
제한 신념이란 자신이 그동안 물질세계에서 경험했던 것을 바탕으로 한계가 설정되어 있는 신념이다. 나 역시 인식은 못했지만 상당한 제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것은 안되고 저것은 이래서 안 된다가 분명한 사람이었다. 그것은 나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성공과 실패의 패턴에서 찾아낸 나만의 기준이었다. 이런 기준이라도 없으면 이 혼란한 세상에서 살아남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명확한 기준은 삶을 명료하게 해 준다. 하지만 반대급부로 나의 가능성에 어마어마한 자물쇠를 걸어서 시도조차 못하게 하기도 한다. 명확한 기준을 선택하면 돌덩이처럼 딱딱한 꼰대가 되고 기준에 유연성을 두면 이 혼돈의 세상 속에서 자멸할 수도 있다. 사실 정답은 없다. 선택의 문제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질문을 바꿔보고자 한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원하는 삶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해 본다. 이것은 수시로 변한다. 나이마다 시기마다 변한다. 하지만 변하는 부분은 겉모습, 즉 외양이다. 아마 나 자신의 욕망과 타인의 욕망이 섞여있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면 본질적 측면에서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그것은 수시로 변하는 외적 욕망의 기저에 깊숙이 존재하는 변하지 않는 그것이다. 그 욕망을 알아차려야 한다. 나에게 그것은 바로 '우아한 아름다움'이었다. 나는 나 자신도 모르게 평생 그것을 추구해 왔었다. 의식의 수면 위로 간간이 드러난 증거들을 모으고 사건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것이다. 내가 좋아하고 선택하고 만족했던 그 모든 것들의 바탕에는 우아함과 아름다움이 있었다. 심지어 그것은 일반적인 통념으로 그렇지 않아 보여도 나의 특별한 필터로 그것을 알아챘다. 한마디로 나만의 우아한 아름다움이라는 명확한 기준이 있었던 것이다.
자, 내가 추구하는, 변하지 않는 가치를 찾아냈다. 이제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그 가치를 구현하는 일이다. 우아함과 아름다움이라는 비재현적인, 감각 너머의 그것을 현실에 재현하는 일이다. 이렇게 목표를 단순하지만 이상적으로 잡는다. 그리고 그것을 구현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에 제한을 두지 않는 것이다. 한마디로 역으로 공격하여 잠재의식에 깔린 제한 신념들을 부수는 것이다. 목표를 달성하는데 필요하지 않은 것들은 제거하고 효과적인 것은 킵하고 발전시킨다. 잠재의식을 차근차근 재프로그래밍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원대한 목표를 정하고 거기에 맞게 잠재의식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어려운 것이 내가 그렇게 될 증거가 없기에 잠재의식을 변화시키는 것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래서 차라리 이렇게 끝에서부터 시작하는 방법이 잠재의식을 변화시키기에 빠르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돌아가서 다시 정리하자면 기준이라는 것을 우아한 아름다움이라는 인생의 목표를 잠재의식에 앵커링 하고 수단과 방법에 있어서는 명료함이라는 제한 신념을 제거하고 유연함이라는 움직임으로 바꾸는 것이다. 물론 무드는 긍정과 풍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