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칸트 Day 70.

소비에 대하여

by 쾌락칸트

오늘은 많이 돌아다닌 날이었다. 컨디션이 그다지 좋지 않아서 중간중간 쉬어가면서 이동을 했는데 의외로 많은 장소를 방문했다. 동네 가정식 집에서 아침을 먹고 바로 도쿄 미드타운 산토리 미술관으로 향했다. 에도시대의 에킨이라는 화가의 병풍 작품 전시였다. 기모노와 사무라이 스타일의 극치를 보여주는 작품들이었고 내용은 정말 치정극 그 자체였다. 상당히 자극적이었는데 매체가 거의 없었던 그 당시에 거의 막장 드라마와 같은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너무 어둡고 잔인하고 기묘해서 오래 보고 싶지는 않았다. 작년 도교 국립 신미술관의 전시처럼 이 전시도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라서 아쉬웠다. 너무 노골적인 일본 스타일은 내 취향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사실 모든 전시가 다 만족스러울 수는 없긴 하다.


그리고 도쿄 미드타운 바니스 뉴욕 블루 보틀에서 커피를 마셨다. 요즘 해가 짧아져서 오후 4시만 되어도 어두워졌다. 좀 더 일찍 도쿄를 올 걸 싶었다. 오늘의 원래 계획은 다이칸야마를 가려고 했지만 급 어두워져서 그냥 가까운 근처 긴자로 향했다. 어차피 쇼핑 때문에 긴자는 왔어야 했다.


일본에 와서 평소에 안 하던 짓 하기를 도장 깨기로 실천하고 있지만 그래도 쇼핑은 아닌 것 같다. 긴자에 도착해서 수많은 쇼핑센터와 샵들을 돌아보는데 어질어질했다. 정말 이 물건들이 다 필요한 것일까 싶다. 유니클로에 갔는데 한국보다 저렴하다고 해서 다들 엄청 많이 사는 것 같았다. 나도 몇 벌 집어보고 텍스프리까지 받으려고 했는데 금액을 맞추다 보니 원래 예정에 없었던 것까지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리고 계산하려고 카운터로 가는 순간 갑자기 다 이게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그냥 입던 거 입으면 되지 고작 1-2만 원 아끼겠다고 예정에도 없던 옷까지 사는 게 말이 안 된다 싶었다. 심지어 공항에서 텍스프리 현금받겠다고 줄 서는 거 생각하면 아찔했다. 그래서 계산 직전에 과감하게 내려놓고 매장을 나왔다.


더 최악은 돈키호테였다. 고박사가 간에 좋은 약 부탁해서 사려고 매장에 들어갔다가 경악을 했다. 정말 말도 안 되게 물건이 많았고 사람들은 미친 듯이 장바구니에 쓸어 담았다. 박리다매의 물건들이 저렴한 것은 알겠다. 하지만 그것을 다 모아놓으면 금액이 어마무시하게 올라간다. 비싼 것을 하나 사기보다 싼 것을 여러 개 사서 쟁이는 인간의 습성은 참 오묘하고 신기하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나도 순식간에 홀려서 구매를 할 뻔했다. 금액이 싸고 비싸고 가 아니다. 다들 그냥 머니게임을 즐기는 것 같다. 조금 더 싸게 살 수 있는 방법으로 구매를 하면 희열을 느끼는 것이다. 거기에 들어간 에너지와 시간의 가치는 무시하고 말이다. 그냥 안 사면 되지 않는가. 꼭 무엇을 사야 하는 것은 아니다.


몇 년 전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남기고 간 어마무시한 물건들을 처분하면서 인간의 소유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상점에 진열된 물건은 순간 반짝거리지만 그것을 소유하는 순간 빛을 잃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쓰레기 통으로 던져진다. 거의 대부분 비슷한 운명일 것이다. 그래서 어느 시점부터 나는 물건을 살 때 진짜 많은 고민을 하고 사게 되었다. 일단 '사지 않는다'가 내 마음속에는 디폴트로 자리 잡고 있다. 만약 사더라도 먹거나 사용 후에 사라지는 것을 주로 구입하려고 한다. 반면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게 되는 종류의 물건들은 정말 신중을 기해서 구입하려고 한다. 이 정도의 각오가 없다면 나 역시 물건을 사재 끼다가 다 쓰지도 못하고 눈을 감을지도 모른다. 내가 사라졌는데도 남아있는 물건들- 그들이 쓸쓸하게 쓰레기통으로 가는 것을 상상하면 마음이 아릿하다. 그냥 예술만 남기고 깨끗하게 살다가 깨끗하게 사라지는 삶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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