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칸트 Day 88.

각성

by 쾌락칸트

각성이란. 사전적 의미로는 '깨어 정신을 차림'이다. 창작물에서는 자신의 숨겨진 힘을 인식한다는 것으로 사용된다. 여기서 각성의 조건이 있었다. 그것은 극한의 신체적 위협이 있어야 한다. 고통만이 정신을 깨어나게 한다. 육체에 정신이 따라간다는 것과 일맥이 상통한다. 창작물의 주인공들은 평화롭고 안전한 일상 속에서는 그저 평범하게 존재한다. 하지만 극한의 상황이 닥치면서 결국 '각성'을 하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난다.


최근에 나는 애니메이션을 상당히 많이 보고 있다. 원래 취향은 아니었는데 우연히 보기 시작했다가 현재는 명작이라는 작품을 5개 정도 보게 되었다. 그냥 재밌고 흥미진진하다로 끝내기는 아쉽다. 나름 시간 투자를 했는데 교훈을 얻지 못하면 시간 낭비가 아닌가. 다행히 내가 본 작품들은 질적으로도 상당히 훌륭했다. 장르로 구분하자면 성장 소년 만화들이었다. 세계관과 플롯은 다 다르지만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는 비슷했다. 그리고 주인공이 각성을 하는 기폭제들도 비슷했다. 그것은 바로 '죽음'이었다.


- '진격의 거인'의 에렌 예거는 거인에 의해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각성하고 진격의 거인이 되었다.

- '체인소맨'의 덴지는 좀비 떼에게 토막살인을 당했지만 포치타가 심장을 줘서 체인소맨으로 다시 살아났다.

- '주술회전'의 이타도리는 료멘스쿠나에게 심장을 뜯겨 죽음을 맞이했지만 다시 살아났고, 고죠 사토루는 토우지에게 쳐 참하게 난도질당하며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반전 술식을 각성하고 더 강한 존재로 되살아났다.

- '귀멸의 칼날'의 탄지로는 무한열차에서 혈과 엔무의 꿈이라는 혈귀술에서 깨어나기 위해 꿈속에서 지속적으로 자결을 감행했고 결국 안무를 퇴치하고 더 강한 존재로 거듭나게 되었다.

- ' 나 혼자만 레벨업'의 성진우는 E급 헌터 시절, 위험한 던전에서 타인을 살리고 자신을 희생하는 선택을 감행했고 죽음 직전 결국 시스템의 선택을 받아 강자로 다시 태어났다.


이 모든 주인공들의 각성은 바로 '죽음'이라는 상태를 경험해야지 비로소 발현되는 것이다. 사실 이런 이야기들의 근원은 가톨릭 세계관에서 온 것이다. 각성 스토리의 뿌리는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다. 결국 죽음이라는 극단의 상태까지 가야지 자신의 숨겨진 힘을 인식하고 발현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범인(凡人)들이 이 정도 극단의 상황에 처할일이 얼마나 있을까. 아마 거의 대부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창작물로 간접 경험을 하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주인공에 몰입을 하다 보면 나 역시 그런 상황에 있는 것으로 착각한다. 하지만 현실의 상황은 절대 그렇지 않다.


인간 세계는 더 안전하고 편한 것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화, AI, 로봇 등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래서 저런 소년 만화의 개고생 심지어 죽음의 위협으로부터의 각성은 그저 판타지일 뿐이다. 사실 고통을 피하고 안전하고 안락함을 추구하면 절대 스스로의 숨겨진 힘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뒤집어서 질문을 해보자. 이 편하고 안락한 세상에서 어떻게 각성을 할 수 있을까. 나름 생각을 해봤는데 그것은 바로 거꾸로 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편함이 아니라 불편함, 빠름이 아니라 느림, 열림이 아니라 닫힘 이런 식으로 흐름의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즉 물결을 거스르는 것이 답이 아닐까 싶다. 그냥 아무런 인식을 하지 않고 흐름을 타는 것이 도태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인식하고 거꾸로 가는 방향, 즉 아무도 가지 않는 길로 걸어가야지 거기에 '죽음'이 있기 때문이다. 굉장히 무서운 선택이다. 그 누구도 하지 않는 선택일 것이다. 하지만 그 선택을 해야지만 '각성'이라는 그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성장을 하게 된다. 이것은 너무나 진리이지만 선뜻하기 힘들다. 그래서 세상에 이름을 남기는 사람이 극소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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