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주기도를 시작하다 -2
나는 어린 시절부터 기도의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이었다. 묵주기도로 은혜를 크게 받은 것은 정말 사실이었다. 그런데 나는 배은망덕했다. 주님께 그렇게 약속을 하고서도 은혜를 받고 쌩까버린 죄인이었다. 그런데 한술 더 떠서 나는 최근 5년 동안 성당에 가지 않았다. 냉담이었다. 하지만 아예 안 간 것은 아니었다. 엄마 아빠의 기일에만 갔었다. 그것은 엄마와 아빠가 돌아가시면 연미사를 넣어달라는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억지로 갔다. 나는 상처를 받았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에 나는 신을 부정했다. 그리고 2년 전에 아빠까지 돌아가셨다. 나는 무너졌다. 더 이상 신앙생활을 할 이유가 없어졌다. 그렇게 냉담은 지속되었다. 묵주기도의 은혜는 은혜고 엄마 아빠를 그렇게 빨리 데려가신 하느님이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젠더 이슈, 유사 과학, 흑백 논리 등 가톨릭의 시대착오적인 부분만을 피상적인 관점에서 비판하며 종교를 부정했다. 그렇게 2년이 지났다. 하지만 내 안에는 계속 무엇인가 남아있었다.
어느 날 예수님 관련 조던 피터슨의 글을 읽었다. 예수님의 행보를 책임과 희생의 관점에서 쓴 글이었다. 그는 예수님이 죽음을 순수히 받아들이 이유가 우리의 죄를 책임지고자 하는 희생의 행위라고 하였다. 여기서 갑자기 '책임'과 '희생'이라는 단어에 내 마음이 떨리기 시작했다. 모태신앙이지만 성경을 제대로 읽어 본 적은 없었다. 그냥 예수님의 생애는 너무 많이 들어서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이다. 예수님은 책임과 희생의 아이콘이었던 것이다. 내가 짓지 않은 죄까지도 기꺼이 책임지는 존재인 것이다. 나는 이제야 가톨릭의 본질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여러 생각이 들었다. 내가 냉담을 한 것은 결국 하느님을 탓한 것이다. 내 책임일 수도 있는데 나는 무조건 나를 희생자로 생각하며 종교를 부정할 것을 합리화했다.
결국 고해성사를 보고 5년 만에 성당 미사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리고 매주 새벽 미사에 참석하며 기도를 시작했다. 나를 위한 기도를 했다. 하지만 이번 기도는 예전과는 달랐다. 내가 강해지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으니깐. 책임을 지고 희생할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기도했다.
그렇게 성당을 나가기 시작하면 기도의 시간이 많아졌다. 누군가 미사를 참석하는 것도 명상 중에 하나라고 했다. 나는 명상을 종교적으로 접근하는 게 맞을 것 같았다. 명상도 마침 관심을 가지고 있던 주제였다. 그러다 <의도의 힘>에서 자파명상이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다. 신의 이름을 반복적으로 구술하는 명상인데 신과 연결된 힘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우리가 아는 불교의 염주, 가톨릭의 묵주 같은 도구를 사용하며 기도문을 반복 구술하며 기도를 하는 것도 자파명상에 속한다고 한다. 갑자기 묵주기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왕 자파명상을 할 거면 내가 해본 묵주기도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프랑스에 15년 전에 구입했던 묵주를 꺼냈다.
처음부터 각 잡는 것은 피하고자 했다. 마치 파일럿 프로그램처럼 최대한 가볍게 기도를 시작했다. 묵주 앞단의 주의 기도, 성모송 3번 그리고 영광송을 읊조렸다.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은 처음 구간인 주의 기도, 성모송 10번, 영광송을 바쳤다. 그다음 날은 2개의 구간을 했고 지속적으로 1개의 구간을 추가하면서 기도를 지속했다. 묵주 기도를 오랜만에 하다 보니 예전에 엄마와 지냈던 시간들이 많이 떠올랐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전 묵주기도에 대해서도 생각이 났다. 갑자기 성모님께 너무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간청을 드리고 그것이 이루어지니 모르쇠 한 것이다. 약속드렸던 봉사도 안 했다. 그리고 26년이 지났는데 그동안 묵주기도를 한 번도 안 드린 것이다. 심지어 냉담도 5년이나 했다. 양아치도 이런 양아치가 없었다. 하지만 이런 죄인도 용서해 주시는 성모님인 것이다. 그동안 들어주셨으니 이번에도 들어주시겠지라는 염치없는 마음으로 돌아온 죄인이었다. 나의 죄가 너무나 컸다. 이것을 만회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반성했다. 다시 돌아왔고 이제는 어린 날처럼 기도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나보다는 타인을 배려하고 말하기보다는 들으며 책임과 희생의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