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은 과연 힘일까

어두운 터널을 걸어가는 재활 환자들에 대한 고찰, 혹은 격려

by Albeit

환자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가끔씩 뇌졸중으로 고생하고 있는 자신의 미래에 대해 암담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 그 분들에게 '지금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뇌졸중 환자들 중 상위 50% 안에 들어간다.'고 이야기하면서 보행이나 일상생활동작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이를 믿는 분들도 계시고, 여전히 우울감에 빠져서 지내는 분들도 보인다.


어느 날, 어느 환자가 자신의 상태에 대해 알려달라고 하기에 시간을 내서 한 시간 동안 같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 분은 뇌경색 이후 한쪽 팔다리가 불편하였는데 과연 자신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 대략적으로 알기를 원하였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그저 확률에 기반하여 환자분은 앞으로 걸을 가능성이 많이 높고, 일상생활도 불편하지만 어느 정도 수행이 가능할 것이고 등등의 이야기 뿐이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나서 환자분이 이런 말을 해주었다.


'선생님께서는 경험이 많으시니, 저와 같은 사람을 보고 대략적인 예측이 가능하시겠지만 저로서는 그런 이야기를 들어도 믿어지지가 않고, 미래가 겁이 나네요.'


이 말을 듣고 나서 진료실에 와서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과연 저 말은 내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가. 왜 저 환자는 대략적인 자신의 앞날에 대해 알려줬음에도 불안해 하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나서 생각이 든 것은, '과연 아는 것은 힘일까?' 라는 의문이었다.


201610061141291276393.jpg 프랜시스 베이컨

우리에게 '아는 것은 힘이다.'로 잘 알려진 프랜시스 베이컨. 그는 어떤 결과에 대한 원인을 알면 그 대상을 이해하고 다룰 수 있으며 이는 인류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주장하였다. 이 내용을 차분히 생각해보려고 한다.


#1-1.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흔히 어떤 것을 안다고 할 때, 그 '앎'이란 무엇일까. 대상을 하나하나 분석해서 그 기원부터 이해하는 것이 안다는 것일지, 혹은 그 대상의 미래가 예측이 가능할 때에 안다고 하는 것일지 곰곰히 생각해본다.


우선 그 대상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를 빠짐없이 아는 것이 '앎'은 아니다. 내가 바나나를 안다고 할 때 나는 그 바나나가 어떤 씨앗의 형태로 땅에 심어져서 어떻게 자라나고, 온도와 습도가 몇 도일때에 바나나가 열려서 내 앞에 도달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저 '바나나라는 것은 대략적으로 어떻게 생겼고 어떤 맛을 갖고 있다.'정도의 지식을 갖고도 충분히 바나나를 '안다'고 말할 수 있다.


비슷한 예로, 우리가 동네에 흘러가는 천을 '안다'라고 할 때, 그 천의 기원이 어느 산골짜기에서 시작되어 어느 지역을 흘러가고, 어떤 유속으로 우리 동네를 지나가는지에 대해서는 큰 흥미가 없다. 그저 '내 동네에 지나가고 있는 천'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 천을 '안다'라고 할 수도 있다.


결국 '안다'는 것은 내가 그 대상에 대해서 그 구성요소를 빠짐없이 다 알고, 그 대상이 나중에 맞이할 미래에 대해서도 파악하고 있을 때에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대상을 한 번이라도 경험하고 나서 내가 그 것을 '안다'고 말하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은가 생각한다. 물론 앎의 깊이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적어도 대상의 경험 유무에 따라 앎과 알지 못함이 나뉜다. 가볍게 보면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대상을 파악하는 것도 앎의 일부고, 직접 내 몸으로 체득한 것 또한 앎의 일부다.


#1-2. 힘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힘이란 무엇일까. 단순히 물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동력원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힘을 '내가 어떤 상태로 가고자 하는 에너지'라고 생각한다. 그 힘은 내가 무언가를 움직이고자 하는 에너지일수도, 아니면 내가 현재의 상태 그대로 가만히 있고자 하는 에너지일수도 있다.


#1-3. 아는 것이 힘이다.


종합해보면, 내가 어느 대상을 경험하고, 그 경험 이후에 나 자신을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 것인지, 혹은 그 자리에 가만히 있을 것인지 결정하는 것에 대해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정리할 수 있다.


이렇게 어려운 이야기가 된 이유는 한국 속담에 '모르는게 약'이라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왜 어느 한쪽에서는 많이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어느 쪽에서는 많이 아는 것이 좋지 않다고 하는 것일까. 그리고 내 환자들은 왜 대략적인 미래를 알려줘도 불안해 했던 것일까.


#2-1. 모르는 것이 약이다.


나 또한 '모르는 것이 좋았을걸.'이라고 생각한 적 있었다. 과거 본과에서 임상과목들을 배우던 때였다. 다양한 질환과 임상증상들을 보고 신나서 공부하던 중에 갑자기 명치 주변이 뻐근해졌다. 순간 드는 생각은 '명치가 아프면 심장? 위? 아니면 췌장 문제인가? 내 나이를 볼 때 심장은 아닌 것 같은데? 아니지, 젊은 사람도 변이형 협심증이 올 수도 있지 않나?'라는 수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갑자기 나의 증상 하나하나가 교과서에 나오는 큰 질병들에 속속들이 대입되어 내 자신이 지금 당장 병원에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불안감이 머리를 들기 시작했다. '의대생 증후군'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심리상태였다. 결국 명치 주위의 뻐근함은 오랫동안 앉아있음에 대한 주변 근육들의 긴장으로 귀결되었지만, 이 날의 심리는 아직도 생생하다.


#2-2. 모른다는 것은 내가 그 대상을 겪어보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내가 만약 위에서 의심했던 질환들을 다 겪어본 사람이라면 어떨까(물론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랬다면 단순한 명치의 통증을 놓고 불안감에 빠져있기보다는 약을 먹어보던지, 직접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던지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질환을 겪어보지 못했고, 교과서에 나온 몇 마디의 임상양상에 나를 끼워맞추면서 비교만 하고 있었다. 책을 통해 그 질환을 안다고 생각했지만, 진짜 그 질환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차라리, 임상 의사로서 그 질환을 가진 환자들을 많이 지켜보았다면 오히려 저런 감정이 없었으리라고 본다. 결국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나의 경험 부족이 나의 불안감을 키웠었고, 정말로 '모르는 것이 약'이었다.


#2-3. 약이라는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가 모르는 것이 약이라고 할 때, 약은 무엇을 의미할까. 일반적으로 약은 어떤 대상을 나쁜 상황에서 이전의 건강했던 상황으로 돌려주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에 약이란 어설픈 지식을 얻고 나서 불안해진 나의 마음을 이전의 평안했던 상태, 그 지식을 몰랐던 시절로 돌려주는 것을 의미한다.


#2-4. 어떤 때에 아는 것이 힘이고, 어떤 때 모르는 것이 약일까?


간단히 말해서, 내가 A를 한번이라도 겪었을 때에(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A에 대해 아는 지식이 늘어날 수록 도움이 된다. 이 경우 아는 것이 힘이다. 그러나 내가 A를 겪지 않았을 때에 A에 대해 아는 지식은 실제로 내게 와닿지 않으며 이 경우 모르는 것이 약이 된다.


예를 들면,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내가 현재 북한과 남한 사이의 긴장감에 대해 알수록 이에 대해 대비하려고 할 것이다. 둘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 및 국제 정세에 대해 파악할수록 더욱 자세한 정보를 알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반대로, 유럽에 거주하고 있으며 한국이라는 나라에 한 번도 오지 않은 외국인이 한국에서 근무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어떨까? 그는 아마도 세계에서 최고로 불안한 나라로 대한민국을 꼽으면서 절대로 가고 싶지 않다고 불안해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겪어보지 않은 대상에 대한 정보가 들어올수록 나는 불안하다. 차라리 몰랐으면 아무런 생각이 없었을 텐데 미지의 정보를 알게 되니 이 것이 과연 옳은지 불안해진다. 그러나 이러한 기억은 그 대상을 한 번 경험하게 될 때에 바뀌게 된다. 내가 과거 불안해했던 것들이 사실은 별 것이 아니었음을 인지하게 되는 순간 그 대상에 대한 정보들이 갱신될수록 나는 환호한다.



#3-1. 내 환자는 왜 불안했을까.


내 환자의 경우 뇌경색을 처음 겪었고, 발병한 지 1달 남짓 지난 시점에서 열심히 회복 중이었다. 그러나 그가 이론적으로 뇌경색을 알고 있었을 리는 만무하고, 뇌경색 환자들을 많이 겪어보지도 못했을 뿐더러 직접 뇌경색을 겪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과거에는 뇌경색을 경험할 일이 없었고, 현재에는 뇌경색으로 힘겹게 지내고 있는 사람에게 이론적으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봤자 과거 의대생 증후군을 겪은 나와 같이 그 분에게 더욱 불안감만 키워주게 된다. 이론적으로는 뇌경색의 예후에 대해 수많은 가능성이 존재하지만 결국 그 환자가 겪을 미래는 오롯이 그 환자의 것이기 때문에, 그 많은 가능성들을 다 겪을 일은 없기 때문에 내가 확률에 기반하여 설명을 한다고 해도 정말 와닿지 않았을 것 같다. 오히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그가 자신이 겪었던 뇌경색을 되돌아보면서 '아, 의사 선생님의 말이 맞았어.'라고 생각하는 시점이 된다면 조금이나마 나의 설명이 와닿지 않을까.


#3-2. 나는 내 환자들에게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면 할수록 내 환자들에게 문자적인 의학 지식을 전달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겠구나 싶다. 그들에게 의학 지식을 심어준다고 해서 마음에 안정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겪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만 더욱 더 커진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 환자들이 오지 않은 미래를 차분히 견뎌낼 수 있도록 옆에서 지지와 격려를 해주는 것이 아닐까. 그러면서 환자들이 고통의 터널을 지나 내가 말한 미래에 올 때에 그 기쁨을 같이 나누는 것이 의사로서의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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