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는 너의 내일이란다

스즈메의 문단속, 그리고 대끼와 나. 기독교에 대한 생각

by Albeit


(미리 보기가 될 수 있으므로 주의!!!!)





기회가 되어 늦게나마 '스즈메의 문단속'을 보고 왔다. 스즈메가 재앙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도, 의자로 변해버린 소우타가 의자의 형태로 동분서주하는 모습도 참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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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영화를 보며 내가 제일 곰곰이 생각하게 된 장면은 어린 스즈메가 현재의 스즈메를 만나는 과정이었다. 어릴 적 자신도 기억하지 못하는 상처를 다시 되돌아보게 된 현재의 스즈메는 과거의 스즈메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말이야, 너의 내일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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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의 의미를 어린 스즈메가 알 수 있을까. 만약 알 수 있다면 스즈메는 자신의 미래에 대해 큰 걱정을 하지 않고 어떤 고난이 다가와도 능히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자신은 미래에 저렇게 성장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말이다.



저 이야기를 내게 적용해 보면 어떨까. 우선, 내가 키우고 있는 자그마한 토끼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IMG_1047.JPG?type=w773 이름은 대끼! 귀엽지 않나요??


요 녀석은 자기의 성격이 매우 강한지라 처음에는 안아서 들고 있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내가 들고나가서 풀밭에 풀어주면 그 뒤에는 매우 신나게 뛰놀지언정 그전에 안으려고 외출복을 입을 때마다 어디론가 숨어버리는 녀석이다.


만약 대끼가 자신의 미래(비록 수 분 뒤일지라도)에 대해 조금이나마 인식하려고 한다면 어떨까. 내가 외출복을 입고 자신을 안는다면 그 시점에서는 매우 싫을지라도, 조금만 기다리면 먹을 것이 가득한 풀밭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 같다. 그러면 안기는 과정을 조금은 힘들지라도 버텨내려고 하지 않을까?


하지만 아직까지 그러지 않는 걸로 보아 대끼는 시간에 대한 관념은 아직 부족한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지금 당장, 내가 당면한 현실이 제일 중요하고 그 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나는?


만물의 영장이라고 생각하는 인간. 하지만 그 실제는 자기 자신의 1분 뒤의 미래도 알지 못하고 그저 '내일도 오늘과 같겠거니.'라고 추측만 하는 우매한 동물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비록 미래에 대해 계획을 하고 그 계획이 흘러가도록 노력은 하지만, 그건 우리가 시간을 통제하고 있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시간의 흐름은 정해져 있고, 나는 그 흐름에 거스를 수 없으니 그저 흐름에 몸을 맡기고 어디론가 흘러간다는 말이 더 적당해 보인다. 내가 1분 뒤에 내가 무엇을 하고 있을지 안다라는 말은, 정확히 1분 뒤의 미래를 내가 본 것이 아니라 오히려 1분 뒤에도 이렇게 하고 있을 것이다라는 추측에 가깝다.


나의 시간에서, 누군가 내게 '나는 너의 내일이란다.'라고 말을 해준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고민들은 대부분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어떤 길을 걸어가더라도 목적지가 정해져 있는 등산처럼, 지금 내가 당장 A코스가 아닌 B코스를 골라서 조금 더 빙 돌아갈 수는 있겠지만 결국 정상에 도착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나는 과감하게 한 발자국 더 나아가본다. 대끼의 주인인 내가 대끼를 들고 밖에 나갈 때, 과연 대끼에게 해를 가하고자 데리고 나가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비록 대끼는 주인인 내가 자신에게 불편함을 끼칠 때 그 상황이 싫을지언정(그리고 이후에 이어질 자신의 행복한 식사는 모르겠지만) 주인의 입장에서는 그 불편함이 필수적이다. 그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밖에 데려가서 맛난 풀들을 먹일 수도 없으니깐.


나 또한 나의 삶의 주인인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하물며 토끼의 주인인 나도 대끼에게 좋은 것을 해주기 위해서 대끼에게 약간의 불편함을 제공하는데, 내 삶의 주인 또한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어려운 일들, 고민거리들이 그저 막연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우연하게 일어나는 것들이 아니라 오히려 나중에 내가 겪을 행복한 일들에 대한 사전준비가 아닐까?


시간의 흐름에 대해 막연하게 인지는 하고 있으나 그 시간을 조절할 수 없는 인간. 그리고 그러한 인간의 주인이 있다면 그는 분명 4차원 이상의 존재, 적어도 시간의 흐름에 대해 그분의 뜻대로 조절할 수 있는 분일 것이다. 이런 분이 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아시고 주인으로서 내게 좋은 것을 주시려고 계획하고 계시다면, 나는 지금의 어려움에 대해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내 고난이 추후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는 모르나, 하나님은 모든 것들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임을 믿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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