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 뒤의 미래를 알 수 있다면

외상으로 인한 환자들을 보면서

by Albeit

사람은 누구나 앞일을 알고 싶어 한다. 시간이라는 개념은 우리가 소유할 수도, 만질 수도 없기 때문이다. 가질 수 없는 시간에 아주 조금이라도 닿아보고자 사람들은 점을 치고, 사건들에서 패턴을 분석하고, 혹은 종교를 믿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현재의 과학으로서는, 어떤 노력을 한다고 해도 시간이라는 개념을 제어할 수가 없다. 인간은 3차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4차원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4차원에 속해있는 한, 시간을 내 마음대로 조절하는 것을 불가능하다. 우리는 마치 미래의 사건을 예견하고, 예측하는 듯 행동하지만 실제로는 1분 뒤에 내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고 자신 있게 대답한다면 방금 전까지의 내가 건강하고 아무런 일이 없었기 때문에 별거 아니라고 생각되는 1분이라는 미래에도 지금의 내가 지속되리라고 판단하는 것에 불과하다. 참으로 오만한 생각이다.


왜 이 이야기를 하는가. 재활의학과 의사로서, 내가 보는 환자들 중에는 뇌졸중 외에도 사고로 인한 뇌손상 혹은 척수손상을 입은 자들이 있다. 이분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드는 생각이 있다.


'과연 이분들은 자신이 사고가 나는 그 시점에서 1분 전에,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고 있었을까.'


일순간의 행동으로 인해, 혹은 순간의 부주의로 인하여 크나큰 사건이 벌어지고, 그로 인해 내가 나중에 일정 시간을 불편하게 살아가리라는 것을 알았다면 나는 과연 어떻게 행동할까. 아마 그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일상적으로 하던 활동들 속에서 그런 조짐이 보였다면? 과거 전공의 시절, 내 환자 중 한 분은 평소에 바위 위에서 다이빙을 좋아했다.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다이빙을 수백 번, 수천번 하였고, 그중 마지막 다이빙이 하필이면 좋지 않은 결과를 일으켜서 사지마비가 되었다. 우리는 이런 분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객관적으로 볼 때에 다이빙은 참 위험하다. 다칠 위험도 크고, 목이 아니더라도 떨어지다가 다른 부위가 다칠 위험도 매우 크다. 주변에서도 다이빙을 하는 그 사람을 말리지 않았을까? 적어도 한 명은 그에게 '다이빙 조심해.'라는 충고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분은 그런 충고를 무시했고, 그 결과 경추손상을 얻게 되었다. 이 환자에게 다이빙을 하지 말라는 충고는 그저 웃어넘길만한, 한 귀로 흘려 넘길만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것을 무시한 결과가 이렇게 흘러가게 되었다.


이를 내게 적용해서, 나의 삶에서 저 '다이빙 조심해.'와 비슷한 의미를 가진 충고를 내가 무시했던 적이 있었나 생각해 본다. 내가 지금 웃으면서 흘려 넘기고 있지만 나의 미래에 매우 크나큰 영향을 주게 될 충고 혹은 나의 습관은 어떤 것이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자동차 사고로 인한 외상 또한 비슷할 수도 있다. 피곤하면 자고 가라는 충고를 듣지 않은 채 '난 괜찮아.'라며 졸음운전을 하다가 사고가 났던 꽤 젊으셨던 외상성 뇌손상 환자분. 그는 아마 사고가 나는 시점에서 어떤 생각을 하면서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을지 궁금하다.


물론 모든 사건 사고를 나의 탓으로 돌린다던지, 혹은 사고가 나지 않게 하기 위해 집 밖을 나가지 말아라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저런 주제넘은 이야기는 내가 감히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된다. 나는 그저 나의 환자들과 이야기하면서 그들에게서 내가 한번 즈음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것들에 대해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길을 걷는 사람이 세 명 있으면 그중에 한 명은 내 스승이라고 했던가. 나는 요즈음 길을 걷는 사람 한 명에게도 내가 배워갈 점이 있는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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