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동화
이 안에서의 시간이 지날수록 바깥에서의 자유로운 일상이 미치도록 그리워졌다.
평소에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일상의 모든 것들은 행복이었다.
아무리 소리를 질러봐도 밖에 들리지 않는다면 공연히 기운만 뺄 뿐이라는 생각이 들자 그냥 하늘만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위를 계속해서 올려다보니 평소에 알던 것 이상으로 우물의 깊이가 상당하다는 게 느껴졌다. 돌벽이 아주 높았다. 문득 이 우물의 깊이가 얼마나 될지 궁금해졌다. 솔직히 그 전에는 우물의 깊이는 물론 우물 자체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가늠하기 쉽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상황이 돼 보고 나니 한 가지 분명한 건 우물의 깊이는 위에서 내려다볼 때보다 아래에서 올려다볼 때 그 진짜를 실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안에 있으니 그간 밖에서 헛되이 살아온 날들이 너무나도 후회된다. 만약 이 안에서 먹을 것이라도 풍족하게 먹어가며 오래도록 살 수 있는 삶과 밖에서 쫄쫄 굶어가며 단 며칠만 살 수 있는 삶을 고르라면 후자를 고를 것이다. 이 안에서 이렇게 사는 것은 사는 게 아닐 것이다.
청개구리 한 마리가 돌아다닌다. 땅 위에서 우물 안으로 뛰어 들어온 건지 아니면 땅 속과 연결되어 있는 돌벽의 틈새로 들어온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정말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
이 안에서 보니 왜 이리 반가운지 모르겠다. 심지어 팔짝팔짝 뛰어오르는 저 힘찬 모습을 보니 조금이나마 의지가 될 지경이다. 청개구리가 이토록 아름다운 존재인지 나는 몰랐다.
예전에 어디선가 본 적 있는데 우리나라 사람이 좋아하는 동물 순위의 상위권에 청개구리가 있었다. 그런 인기 있는 친구와 지금 함께 있다고 생각하니 설레기까지 할 지경이었다.
나는 이 안에 갇혀있는 동안은 청개구리와 쭉 함께이고 싶었다. 청개구리의 등장 이후로는 외로움이 절반은 줄어든 기분이다. 이 녀석을 보고 있노라면 지금의 처참한 상황도 잠시 잊는다.
청개구리 이 녀석은 언제든지 돌 틈새로 빠져나갈 수도 있어 보였다. 나는 붙잡아서라도 함께 있고 싶었으나 만일 바깥으로 나가고자 한다면 녀석의 자유를 향한 선택을 존중해 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