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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주 Sep 09. 2019

대괄호와 네모칸

디자인의 규칙

우리가 물건을 사기 위해 들여보는 작은 네모칸의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다.


대괄호는 텍스트 위주의 사전에서 많이 사용된 기호로 사전에서는 텍스트와 다른 정보를 구분할 때 사용한다. 전문 용어나 분류 같은 것을 구분하여 보여줄 때 사용한다.  요즘은 쇼핑몰에서 자주 볼 수 있다. 그런데 쇼핑몰을 보다가 보면, 상품의 제목에 [대괄호]가 있는 쇼핑몰과 제목에 [대괄호]가 없는 쇼핑몰이 있다.



[대괄호]있는

쇼핑몰



만일 제품 제목이, [예약필수] ★언제나 좋은 제품★(할인20%) ▶옵션 포함♥◀ 이고 비슷한 상품이 연달아 있으면, 중간에 '언제나 좋은 제품'을 읽기 힘들어진다. 모든 상품이 [예약 필수]로 시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상품을 등록하는 사람에겐 편리하지만, 사용자는 불편할 수 있다.



대괄호 같은 특수문자의 사용은 습관이다. 실제 상품을 업로드하고, 판매해서 돈을 만들어야 하는 직군의 사람들은 항상 대괄호가 같은 특수문자를 자주 사용한다. 이 비공개 규칙은 판매 담당자들의 방침에 따라 바뀐다. 시스템이 적절한 규칙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비공개 규칙이 사용된다. 상품이나 제품을 특징을 잘 표현하는 방식이 부족하고, 새로운 방식을 설계하거나 만드는 일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실무자는 시스템을 어떻게든 써야 한다.



[대괄호]없는

쇼핑몰



그런데 대괄호가 없어도 상품을 표현할 수 있다. 대괄호의 제약에서 벗어나면, 더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상품의 제목을 쓰는 곳에 충분히 많은 텍스트를 쓰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상품의 제목을 길게 적어도, 서로 다른 정보를 담은 텍스트를 길게 써도 대괄호 없이 표현할 수 있다. 다른 정보를 다른 형태로 보여줘도 이상하지 않다. 정해진 곳에 정해진 정보가 정해진 방식으로 표현된다. 정보는 레이블이나 아이콘, 배지로 표현될 수도 있다.


제품과 시장이 변하는 속도는 쇼핑몰의 프로그램이나 시스템이 업그레이드되는 속도보다 빠르다. 시스템 개발자는 항상 한 번 만들면, 변하지 않고 오래가는 시스템을 원하지만, 이것이 시장과 연관이 있고, 자주 팔리는 물건을 팔게 되면, 자주 팔리는 형식에 맞게 적응해야 한다.



상품에 맞는 시스템을 설계하면,

세밀한 개선이 가능하다.


시스템은 상품의 특징을 표현하고 시장과 사용자의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규칙을 제공해야 한다. 공개된 규칙,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규칙을 사용하면서 정보를 분리해서 표현하면, 더 많은 정보를 표시할 수 있고, 개선할 수 있다. 공개된 규칙은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보이게 만들어준다. 구분된 정보를 사용하면 많은 상품을 진열하고, 관리하고, 추적할 수 있을 것이고, 여러 가지 테스트로 사용자 경험을 상승시킬 수 있다.



현실의 옷가게에 들어가면, 옷이 잔뜩 걸린 매대 사이를 걷게 된다.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옷의 사진과 꼬리표의 정보를 한 번에 보게 된다. 양쪽 모두 옷을 사지만, 한쪽은 진짜 옷을 만져보거나 입어본 후에 가격과 이름을 알게 되고, 다른 한쪽은 세부 정보를 알거나 입어보기 전에 가격과 이름부터 보게 된다.


비약해서 말하면, 온라인 쇼핑몰에서 실제로 파는 제품은 배송되는 옷이 아니라, 옷의 정보가 표시되는 작은 네모칸이다. 현실에서 많이 파려면, 매장과 옷걸이 같은 것을 개선한다. 온라인에서 많이 파려면, 정보의 형태를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용자에게 이득을 주는 정보는 간결하고 효율적인 정보다. 더 적은 노력으로 원하는 상품을 얻을 수 있고, 그 상품의 이야기와 맥락을 공감하고, 브랜드를 기억하고, 다시 방문할 수 있게 하려면, 공개된 규칙이 필요하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보편적인 네모칸의 형식이다. 이제 디자인을 하라고 하면, 사진의 크기와 비율, 둥근 사각형, 배지나 아이콘의 디자인을 열심히 조정하려고 할 것이다. 각 항목의 크기와 배열 순서가 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곧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친다.

주어진 네모 칸에 뭔가 채우면 될 것 같았는데, 네모 칸, 형식을 넘어설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쉽게 방향을 잃어버린다. 디자인하는 대상과 디자인하는 방법 사이에 맥락이 없기 때문이다.

[대괄호]를 쓰는 것이 상품 마케터나, MD나 담당자의 문제만은 아니다.


디자이너는 디자인을 하면서 계속해서 프레임과 콘텐츠를 반복해서 보게 된다. 그리고 뭔가 다른 점을 발견하고, 그 갈등을 혼자 해결하려고 애쓴다. 그래서 프레임에 집착하거나, 콘텐츠에 집착하게 된다.


문제에서 한 걸음 멀어져서, 디자인과 디자인을 둘러싼 시스템의 규칙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디자이너 역시,

디자이너[대괄호]를 사용한다.


스타벅스의 모든 매장은 비슷하지만, 비슷하지 않다. 이케아의 쇼룸은 모두 다른 것 같은데, 모두 이케아 같다. 국내에 오픈한 두 개의 블루보틀 매장은 똑같이 만든 것 같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다.


그리고 이케아와 스타벅스와 블루보틀은 서로 다르다. 그들은 그들만의 규칙이 있고, 그 규칙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시험하고 적용한다. 그것이 무엇이라고 말하기는 매우 어려운 문제지만, 실제로 우리는 다르다고 느낀다. 설명하기도 어렵고, 재현하기도 어렵다.


이러한 모호함은 고민한 시간의 차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하라 켄야의 책 '디자인의 디자인'을 보면 머리말에 이런 글이 있다.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은, 그것에 대해 정의하거나 상세히 적을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때로는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대상을 전혀 모르는 것으로 가정하고, 그 실체에 도전해 보는 것이 대상을 조금이라도 더 깊이 인식하게 해 준다.


디자이너로 한참을 작업하다 보면, [대괄호]에 갇혀 있다고 느낄 때가 있다. 남들이 파는 제품과 콘텐츠가 내가 파는 제품과 콘텐츠와 같지 않는데, 표현하는 방식은 별 다른 차이가 없을 때가 있다. 시각적인 구성요소는 쉽게 따라 할 수 있다. 똑같이 만드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 부분과 저 부분을 베껴서 만들어도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그냥 이 부분과 저 부분이 엉성하게 붙어 있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 일 뿐이다.


2019년의 트렌드와 2018년의 트렌드는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2009년과 2019년의 트렌드에는 큰 차이가 있다. 묵시적인 규칙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많은 고민이 필요하고, 이러한 고민을 편리하게 하는 도구가 UX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잘 보지 못하는 무언가를 보이는 영역으로 가져와서 가능성을 품은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UX는 개발이나 사용자와 멀어지고, 또 다른 [대괄호]가 되는 것 같다.


디자인 가이드를 넘어선 디자인 시스템의 이야기나, 맥락, 일관성에 대한 이야기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져야한다. 거시적인 변화를 위해 직면한 과제를 꾸준히 해결해 나가야 하는 시기다.




'네모칸 하나 디자인하기'에서 이어지는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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