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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주 Feb 02. 2017

조용한 변화

업데이트와 리뉴얼, 브랜딩에 대한 생각

어느 날, '우주소년 아톰'이라는 TV 애니메이션을 본 적이 있다. 그 중에서 어떤 과학자가 매일 밤 어떤 로봇 몸체를 버리는 이야기가 기억난다. 과학자는 로봇을 만들어 아들처럼 키우고 있었고, 아들이 로봇이라는 것을 들키지 않게 하기 위해 매일 밤마다 몰래 로봇 몸체를 바꾸었다.


20세기에 본 에피소드지만, 21세기의 사람들은 모든 것이 매일 변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거리에서 늘 새로운 상점이 생기고, 사라지는 것처럼 웹과 앱 서비스도 조금씩 변한다. 많은 시간과 자원을 들여서 만들어진 프로젝트는 모두의 기대 속에 서비스가 공개되거나 론칭되지만, 프로젝트는 행복한 동화가 아니라 '그 후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로 끝나지 않는다. 프로젝트가 완성 순간부터 '변화'가 요구된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계획하거나 실행하는 입장에서 선택할 수 있는 변화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고전적인 방법인 리뉴얼이다. 리뉴얼은 분기 혹은 일정 주기별로 디자인을 모두 바꾸는 작업이다. 두 번째는 리뉴얼보다는 조금 짧은 주기로 자주 할 수 있는 업데이트다.



네이버가 어떻게 변했는지 일일이 기억하기 힘들지만, 네이버가 어떻게 생겼는지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네이버는 사람들의 머리 속에 기억되고 회상되는 모습을 2000년 이후로 꾸준히 만들어왔다


몇 년 전까지는 '사용자 경험'이 변화의 가장 큰 압력이었지만, 이제는 '브랜딩'이 요구되는 추세다. UX처럼 BX란 전문용어가 점점 익숙하게 보이고, 새롭게 스타트업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요구하는 인재상도 UI/UX 디자이너 타이틀에 '브랜딩'을 함께 해나가실 분이라는 문구가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스타트업이나 작은 팀의 디자이너가 사용자 경험과 브랜드를 동시에 챙기는 것은 어렵다. 그 두 단어의 의미가 너무 크고 추상적이기 때문이다. 디자이너는 신도 아니고 예언자도 아니다. 디자이너는 위대한 사람이 아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디자이너와 디자인을 '포장'과 '칠'에 대한 편견이 있다. 그러나 이제는 포장과 칠을 함부로 할 수 없다. 사용자는 급격한 변화에 지치고 있기 때문이다


사용자에게는 예상할 수 있는 익숙한 변화가 필요하다. 새롭지만, 편안하고 사용자의 기억을 훼손하지 않는 변화가 필요하다. 사용자의 욕구와 감정에 기반한 경험도 중요하지만, 일관되고 신뢰할 수 있는 경험도 중요해졌다.



지금은 작고 서툴게 시작해도, 매일의 조용한 변화로 꾸준히 완성시키는 디자인이 필요한 시기다. 네이버와 페이스북의 지금은 그들이 처음 시작했을 때와 비교하면 매우 다르다. 리뉴얼과 업데이트가 계속되면서 전반적인 변화가 있더라도 아이콘과 폰트, 색상, 그리드는 지속적으로 개선되며 변화했다.


구글과 네이버나 애플같은 변화는 한 두명의 천재나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변화는 협업이 가능하고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규칙과 시스템에서 나온다. 디자이너는 꾸준히 고된 작업을 지속적으로 하는 사람이다. 형식적인 문서를 버리고, 디자인에 사용한 도구들로 가이드라인을 활용해야 한다. 사용자 경험이나 브랜드는 멀리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대단한 지식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대단하게 보이려고 하거나, 남들이 생각하는 디자이너의 모습에 맞추려고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형식적인 리뉴얼과 업데이트 일정에 밤새기보다는 의미 있는 변화가 누적되어 업데이트와 리뉴얼로 표현되야 한다.


디자이너에게 그럴듯한 명분이나 거대한 담론을 실현하길 요구하지 않는 팀이 많아져서, 깊은 울림을 가진 조용한 변화가 많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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