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에만 걸리면, 다행이지.
가끔 디자이너 암 걸리는 짤이라는 이미지가 페이스북에 돌아다닌다. 지하철 5호선의 안내표지판이다. 이상한 점을 설명하면, 왕십리와 광화문은 똑같은 3글자인데, 정렬이 맞지 않는다.
이런 경우는 실제 디자인 업무에서 자주 일어나는 케이스다. 서비스가 오래되고, 회사가 커지면,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사업이나 서비스의 성장에 따라서 업데이트되지 않는 가이드라인이 이런 문제의 원인이 된다. 가이드라인은 있지만, 재교육되지 않으면,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는데, 그 이상한 일들이 서비스의 노화를 측정할 수 있는 지표가 된다.
웹사이트를 관리하거나 앱을 관리하는 디자이너가 회사에서 이런 피드백을 겪게 되면, 간단하게 디자인을 고칠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이 디자이너라면, 고민이 생길 것이다. 이렇게 고치는 건 쉬운 일이지만, 정말 이렇게 끝내도 될까? 여기서 끝내도 될까? 그러나 그 고민을 실행하기는 정말 어려울 것이다. 지하철이 잘 움직이는데 표지판 디자인을 바꾸는 게 효율적인가? 표지판의 디자인을 바꾸면, 승객의 탑승 효율이 더 좋아지는가?라는 질문을 받을 것이다. 아마도... 디자인의 변경이 사람들이 지하철을 갈아타는데 큰 도움은 안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5호선 타는 곳에서 시간을 낭비하는 고객의 흐름이 정확히 측정되는 경우가 드물고, 있다고 해도 매우 극소수일 것이기 때문이다. 갈아타는 곳을 찾아가는 행동은 습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이 디자이너라면, 직접 실행을 해서 더 나은 방법을 시도해보지 않으면 안 된다. 더 나은 방법을 항상 고민해봐야 한다. 그게 효율적이지 않더라고, 하찮아 보이는 표지판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디자이너에게 두 가지 상반된 요구사항을 원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내가 상상한 바로 그 디자인', 두 번째는 '내가 뭔지는 아직 모르지만, 내가 그걸 생각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디자인'.
아마 요즘 만들어지는 길안내 표지판은 이것과 비슷한 규칙으로 디자인되어 있을 것이다. 예전의 디자인의 규칙은 모든 텍스트는 가운데 정렬이고, 화면을 꽉 채운다는 규칙을 기본으로 화살표 역시, 텍스트와 같은 규칙으로 배치했다. 하지만 화살표와 텍스트는 다른 형태의 정보라서 함께 배치하면서도 분리시킬 수 있다. 텍스트의 언어별 표현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런 규칙의 변화가 간단해 보인다. 하지만 운영되는 서비스에 반영되지 않는다고, 돈이 생기는 일이 아니라고 하면서 덜 고민하면, 새로운 지하철이 생겼을 때, 디자인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