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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주 May 06. 2017

UX 디자이너의 자리

직업은 쉽게 사라지지도 않고, 쉽게 만들어지지도 않는다.

어떤 사람은 나를 기획자에 가까운 디자이너 혹은 UX 디자이너에 가까운 디자이너라고 평가한다. 어쩌면 디자인을 아주 잘하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소셜 미디어를 보면 UX 디자이너들은 가끔씩 큰 회의감을 느끼는 것 같다. 나 역시 비슷한 고민을 했고, UX가 뭔지에 대해서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내가 가진 UX 디자이너에 대한 입장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http://blog.froont.com/brief-history-of-web-design-for-designers/


나는 3류 웹디자이너로 시작했다. 포토샵으로 디자인하고 HTML의 TR, TD를 수없이 치면서, 의문이 생겼다. 메뉴는 '회사 소개'부터, 회사의 비전과 슬로건을 그래픽 위에 써놓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팻말 바꾸듯이 웹사이트를 리뉴얼했다. 유럽의 역사 깊고 고풍적인 도시는 좋아하면서 오래된 동네는 밀어버리는 재개발처럼 리뉴얼이 진행되었다. 프로젝트 규모는 작았고, 프로그램보다는 마크업이 중요하던 시기였다.


웹은 아주 빠르게 발전했다. 리뉴얼 때마다 새로운 플래시 무비가 늘어나고, 사람들은 끈질기게 로딩을 기다렸다. 한쪽에서는 웹사이트 로딩은 5초 이내로 제작하라고 하는데, 16초나 되는 로딩을 잘 기다리는 이유는 잘 알 수 없었다. 잘 만든 사이트가 비주얼 디자인이 잘 된 사이트인지, 최신 기술을 적용한 사이트인지, 내용이 좋은 사이트인지, 자료가 많은 사이트인지 알기 힘들었다. 여러 가지 기준으로 굿사이트를 평가하기는 전문가는 많았지만, 막 개봉한 영화를 비평하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비평가와 대중의 평가는 항상 달랐다.


어느 날, Web2.0을 표방한 웹사이트 기획을 위한 강연을 듣게 되었다. 그 강연에서는 강연을 하시는 분은 이상한 방식으로 기획을 시작했다. 사용자를 파악하고 사용자의 행동을 분류하여 사용자에게 유용한 방식으로 정보 구조를 만들고, 디자인하는 것이었다. 새로웠다. Web 2.0, 실행할 수 있는 웹사이트/인터넷에 대한 이야기가 잦아들고 있던 시기였다. UX는 모든 면에서 충격적이었다.



UX는 빠르게 발전하는 웹이 변화에 따른 결과였다. UX는 반짝반짝 빛났다. 아이폰 3Gs가 출시되고, iPad가 출시되었다. UX 디자인에 대한 책도 많이 나오기 시작했다. 외국의 번역서가 많이 나왔고, 국내의 좋은 회사들의 UX 파트나 관련 업무를 하던 사람들도 책을 냈다.


그러나 UX 디자인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다른 목소리도 커졌다. UX 디자인은 매우 훌륭한 방식의 프로세스라고 생각했지만, 그만큼 더 많은 자원을 필요로 했다. 모든 절차에 적지 않은 시간과 고급 인력이 필요했고, 결론을 내리는 시간은 오래 걸렸으며, 그 결론마저 모호한 경우가 많았다. UX 디자이너는 회사의 목적과 UX 디자인이 추구하는 사용자 중심이라는 아이디어 사이에서 고민했고, 무용론이 나돌았다.


https://solarbotics.com/product/60005/

하지만 세상은 변하는 방향을 달라지지 않았다.


1. 기술의 발전 속도는 빠르다.

2. 한 사람의 가치와 능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


두 가지는 서로 맞물려 있다. 이 세상의 누군가 빠르게 발전할 수 있는 기술의 혜택을 사람들이 이용하기 쉽게 만들고 있고 그런 사람들이 많은 회사들이 세상에서 점점 더 많은 부분을 가져간다. 가끔 소셜미디어에서 UX 디자인에 대한 무용론을 이야기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이용하는 소셜미디어, 소셜미디어를 실행시키는 스마트 디바이스 모두 디자인된 사용자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사용자 경험의 질을 아주 약간만 올리려고 해도 회사 전반의 변화가 필요하다. 변해야 하는 사람이 UX 디자이너뿐이라면, 회사가 사용자에게 전하는 메시지도 불분명해지면서 사용자 경험도 떨어진다. 


그러나  대부분은 UX 디자이너가 처음 소개될 때부터 UX 디자인이 필요하게 된 과정이 아니라 멋진 결과만 수용하려고 했다. 쿨하거나, 힙하거나, 트렌디하거나... 얼핏 보면 쉬워 보이는 UX 디자인을 그냥 쉬워 보이는 형태로 받아들이려고 했다. 그래서 UX 디자이너를 택한 사람들의 고민이 깊은 것 같기도 하다.


서투르지만, 기획과 UX 디자인 양쪽 모두에 살짝 발을 담가본 경험으로 사용자 경험 디자이너를 말한다면, UX 디자이너는 꼭 필요하다. 다만 정말 UX 디자이너를 필요한 회사가 적을 뿐이다. 회사에서 필요한 기획을 해서 시장에 공급할 사람이 필요하면, 기획자를 고용하면 된다. 회사의 개성과 매력, 사용자를 단편적인 소비자로 보지 않는다면 UX 디자이너를 고용하면 된다. 한두 번 시도 후 효과가 나지 않거나 시도조차 해보지 않고 UX가 쓸모없다고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기존의 기획 과정의 단점은 잘 찾지 않으면서 UX의 단점은 지적하며 쓸모없다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http://daniel-salgado.com/what-is-ux/


대부분의 사람들이 장기적인 가치에 투자한다.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사람들도, 주식을 사는 사람들도, 아이를 기르는 사람들도 모두 장기적인 안목으로 투자한다. 가치 있고 오래갈 수 있는 제품을 만들기 위한 노력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과도한 합리성을 요구하거나 단기적인 목표가 중요한 회사보다는 넓은 시야와 유연한 생각을 가진 조직에 적합한 직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UX 디자인에 대해, 사용자의 경험에 대해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이나 회사가 결국 살아남을 것이다.


UX에 대한 고민이 들 때, 더 고민한다면, UX 디자이너 이상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고민 그 자체가 아니다. 어떤 직업도 쉽게 생기지 않고, 어떤 직업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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