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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주 Jan 21. 2019

선택과 통제, UX의 딜레마

넷플릭스, 밴더스내치

블랙미러는 현재 기술 문명을 비판하는 시리즈다. 특히 스크린과 관련된 미디어나 데이터를 다루는 기술이 인간의 삶에 끼치는 악영향을 매우 비판적이고, 냉소적으로 보고 있다.


블랙미러란 검은 거울로, 부서져서 꺼진 화면을 뜻한다.


이번 블랙미러의 작품은 인터렉티브한 영상으로 영상을 보는 사람이 2가지 선택을 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영상에 영향을 미친다. 약 4시간에 가까운 영상이다.


여기서 영상 미디어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보는 사람도 있지만, 이 작품은 여전히 냉소적이다.




미디어의 발전과 '선택'


1단계, 책



우리가 보통의 책을 볼 때, 선택은 '책을 본다'와 '책을 보지 않는다'이다.

그리고 책을 본다를 선택하면 그 때부터는 페이지만 넘기면 된다.


그런데, 그 중에서 어드밴처 북이라는 것이 생긴다. 지금은 이런 책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어드밴처 북은 일정 분량을 읽고, 페이지 번호와 선택지가 나온다. 선택지를 선택하면, 선택지에 쓰여진 페이지로 이동한다.


예를 들면...

문이 보입니다.

이 문을 열려면, 5페이지로. 열지 않으려면 10페이지로 가세요.

 

이런 식이다. 이런 식으로 작품 내에 등장하는 가상의 책이 밴더스내치이다. 주인공인 프로그래머는 아주 초창기의 게임 프로그래밍 기술로 이 작품을 디지털화하려고 한다.


2단계, 컴퓨터 게임



스테판은 '밴더스내치'를 디지털화하려고 하고, 거기서 이상한 일이 발생한다. 그리고 밴더스내치의 작가가 이상한 환각에 시달리고, 결국 미쳐버렸다고 한다. 밴더스내치의 작가인 데이비스가 광기에 빠진 이유는 선택의 딜레마에 빠졌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삶이 누군가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고 믿게 되었다.


스테판은 게임을 개발하면서 자신의 삶도 누군가가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여러가지 분기를 통해서 하나의 분기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의 경험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삶이 실험이며, 통제라는 것을 알게 된다.


3단계, 인터렉티브 영상



스테판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고, 이 게임의 개발에 대한 영화를 인터렉티브하게 만들려는 또 다른 미디어 기획자가 나타나게 된다. 이 사람은 스테판이 동경하던 천재 프로그래머의 딸이었다. 현대적인 환경에서 밴더스내치를 만들던 기획자는 데이비스와 스테판이 느낀 어떤 것을 느끼고 당황하게 된다.




선택과 '통제'


3명의 제작자, 작가와 개발자와 기획자는 독자와 게이머와 시청자를 통제하려고 했다. 하지만 누군가를 통제하려는 과정 속에서 제작자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내가 다른 사람들을 통제할 수 있다면, 내가 다른 사람들을 통제할 수 있는 것처럼, 다른 사람이 나를 통제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릴 통제하는 주체는 무엇일까?'


서로 다른 시간대에 제작자들이 하려던 것은 통제가 아니라 선택의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만들려던 것은 재미를 위해서 2가지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는 간단한 게임이었다. 하지만 그걸 통해서 보게 된 것은 선택이란, 곧 통제라는 것이다.


블랙미러는 더 끔찍한 것을 보여준다. 이 모든 통제가 실제로는 통제하기 위한 통제라는 것이다. 게임처럼 별 의미 없는 것을 그냥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게 가상의 저작물이 아니라, 우리의 실제 삶이라는 것이다.




디자인의 '선택과 통제'


디자인 팁을 구글에서 검색해보면, 여러가지 글이 나온다. 그리고 여러가지 팁이 나온다. 대체적인 이야기는 사용자를 끌어들이고, 그들에게 Task를 주고, 수행하도록 한 후에 만족감 혹은 기타 긍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계속해서 서비스를 사용하게 하는 내용이 많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기반에는 비지니스가 있다. 스테판이 크리스마스 전까지 게임을 완성해야 하는 것과 비슷하다.


사용자의 경험을 디자인한다. 사용자의 맨탈 모델을 만든다. 사용자의 퍼소나를 분석한다. 후엔 A/B테스트를 하고, 그 결과를 사용자들이 만든 대다수의 로그와 분석한다.


블랙미러가 냉소하는 것은 이 모든 과정을 만드는 시스템이다. 사람들을 선택하게 만드는 제품을 만드는 제작자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우리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제품들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우리는 실제로 갖가지 광고와 리뷰, 미디어를 통해서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다. 보통의 사람들은 UX가 윤리적이라고 생각하지만, Dark UX라고 검색해보면, 도박 심리를 자극하거나, 인지과정의 헛점을 이용해서 원하는 선택을 하게 하려는 방식을 비판하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선택에 대해서


배리 슈워츠가 쓴 '선택의 심리학'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현대인의 선택 과잉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 선택을 극대화하려고 한다. 가능한 모든 선택지를 살펴보고 가장 좋은 선택을 하려고 한다.

- 선택의 기회비용을 계산하고, 그 과정의 손실을 혐오한다.

- 적응의 이중심리. 좋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해도 곧 그 선택에 적응하고 더 나은 선택을 하려고 한다.


하지만 결국 선택에 의한 선택을 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소비를 하게 되고, 그 결과 더욱 큰 딜레마에 빠진다는 것이다.


또 다른 책 중에 '게임의 명수'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이언 M. 뱅크스의 SF소설로 시스템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 이 책의 재미있는 점은 페이스북의 창업자인 마크 쥬커버그가 뽑은 책이라는 점이다.


'게임의 명수'에는 유토피아가 나온다. 인간은 일할 필요가 없다. 컬쳐라는 이 가상의 미래는 자기 자의 재능을 개발하거나, 즐거나, 여행을 다니면서 평생을 지낼 수 있다. 모든 노동과 일은 AI와 로봇이 한다. 하지만 이 행복한 세계의 이면에는 인간의 선택, 자유의지, 운명, 신이 사라진 세상이 있다.


이 세상의 인간을 보호하고 통제하기 위해 '컬쳐'를 유지하는 AI는 아주 오랫동안 인간의 쓰는 언어부터 통제하고 있다. '좋아요'를 만든 창업자가 보기엔 아주 재미있는 소설이었을 것이다. UX Writing이라는 분야를 가끔 볼 수 있는데, 일관된 언어와 문구를 통해서 사용자 경험을 모델링할 수 있다고 한다. 글을 통제할 수 있다면, 사용자의 생각과 환경을 통제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영화 큐브에는 큐브 시스템의 문을 만든 디자이너가 큐브에 갖혀 있는 장면이 나온다. 블랙미러, 밴더 스내치는 같은 아이러니에 대해 말한다는 생각이 든다.




선택의 쇠사슬을 만드는 사람들


보통 앱이나 서비스, 시스템을 만드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끌어들이고 선택을 유도한다. 재미있는 부분은 선택을 만드는 사람이, 누군가 먼저 만든 선택을 보고 배운다는 점이다. 밴더스내치에서 작가의 선택을 프로그래머가 재현하고, 프로그래머가 만든 선택을 기획자가 재현하려고 한다. 그런 방식으로 선택의 쇠사슬은 점점 더 길어진다.


예를 들면, 지금의 쇼핌몰에는 장바구니가 있다. 지금의 우리는 장바구니를 디자인해서 페이지에 넣는다. 그리고 '찜하기'를 만들었다면, '조르기'를 만들었다면, 그 선택은 계속 채택되면서 다시 재현한다.


사실 대부분의 서비스는 그런 방식으로 발전한다. 어드밴처 북의 선택으로 게임을 만들고, 그 게임의 사례를 인터렉티브 영상으로 만드는 것처럼 아주 새로운 것은 만들지지 않는다. 반복된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선택을 요구하는 사람은 그 무게에 대해서 한 번쯤은 생각해봐야 한다.

급속도로 성장하는 스타트업이 거창한 업데이트를 한다고 할 때마다 두려운 이유다.




무거운 이야기를 끝내고, 사족으로 적게되면 밴더스내치는 80~90년대 서브 컬처와 음모론을 잘 담고 있다.

약물에 의한 세뇌와 통제에 대한 이야기는 MK울트라 프로젝트에 닮아있다.

스테판이 천재 프로그래머의 집에서 작은 종이 조각을 입에 넣는데, 이건 LSD를 판매하는 방식 중 하나이다. 소량의 LSD가 우표 뒤에 발려져 있는 형태로 유통되기도 했다. 우표 뒷면의 LSD를 혀에 대면,(예전에는 우표 뒷면에 풀이 발라져 있었고, 침을 발라서 이 풀을 녹여 봉투에 붙일 수 있었다.) LSD가 1시간 정도 후에 약효를 낸다. LSD 체험자들은 LSD가 현실과 시간의 경계를 넘는 느낌을 준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불법이다.

아타리 쇼크라는 게임업계의 사건이 있다. 한 게임 회사가 무모한 마케팅을 하고 결국 형편없는 게임을 출시한 후, 망해버린 사건이다. 이때 만들어진 대량의 게임팩들은 사막에 묻어버렸다고 한다.

중간에 천재 프로그래머가 말하는 평행우주에서의 선택의 딜레마는 가능한 선택이 모두 가능한 무한한 우주가 있다면 그 중에는 반드시 최악의 선택으로 만들어진 우주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윤리적인 선택의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예를 들어 내가 자살해도, 다른 우주에는 내가 살아있는 우주가 있으므로. 자살은 무의미하다.)

팩맨 게임에는 으스스한 루머가 있는데, 이 게임이 우주정거장에 갇힌 우주인이 홀로 살아남아 동료들의 영혼에 쫓긴다는 망상 속에서 고통스러워 한다는 것이다. 알약을 먹으면 잠시동안 유령을 잡아먹을 수 있는 이유라고 루머는 말한다.

밴더스내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또 다른 괴물이다.


웹이나 서비스에서 네러티브가 있는 영상의 사용은 제한되지만, 인터렉티브한 선택은 게임에서 훨씬 더 발전된 형태로 만들어지고 있다. 바이오 쇼크,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 페이블, 모던 워페어 등 게임에서는 인지하지 못하는 선택이 전반적인 게임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고 윤리적인 딜레마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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