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PER BOX_59
桐千年老恒藏曲
梅一生寒不賣香
오동은 천년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고
매화는 일생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적적하니 비가 오는 날이었다.
깨끗하지 않은 구름들이 한가득 뭉쳐 있었고
"오늘"이라는 말을 쓰기 싫은 하루였다.
초입의 여름 치고는 텁텁하지만은 않았다.
숨통 트이는 먼지들의 세수
도로를 점령한 아지랑이 열기가
졸라맨 그려진 교과서 한 장 지우개로 지우듯
다만 미련 조금 남은 지우개똥 같은 날이었다.
그리고 모든 것은 제자리에 있었다.
비가 온다고, 열기가 식은 여름이어도
분주함에 그치지만은 않은
각개전투의 현장. 그 바쁨이었다.
휴가해도 마음을 놓진 않는다.
날씨가 하루를 말했고
제자리를 유지하는
세상이 오늘을 지켰다.
사소한 사람들의 간단한 다짐이
다양한 날들의 사소한 인사를 지켰다.
나무는
사계를 보내며 털갈이는 해도
그 자리만은 순수 굳건히 지키며
꽃과 나뭇잎들이 낙엽해도
새 생명을 불러일으킨다.
마음의 인사도 그렇다.
변화를 표방하며 모양새를 가꾸나
속내의 깊은 사심과 눈치 볼 수 없는 믿음이
인사의 의미를 더해준다.
휴일의 두근댐으로 휴가를 보내지만
쉴 틈으로 채우기엔 너무나도 값진 날이다.
소중하고 마음 단단해지는 하루다.
똑딱 똑딱
또옥딱 또오옥딱 불가능한
째깍시간이 째깍째깍거리듯
헤매고 허우적대기엔 아까운 날이다.
기다려온 휴일이지만
기다림을 만끽하기엔 나무의 조용한 가꿈이
꽃과 나뭇잎들의 숭고한 희생이
특별한 공휴를 생각게 한다.
기억하고 마음 담아야 하는 날이다.
십 시
일동 차렷
묵념
6월 6일 현충일.
조금은 늦었지만, 그날의 생각을 기록합니다.
휴일과 휴가.
저는 이 두 단어에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休日 쉬는 날
休暇 쉬는 때
그래서 주말은 휴일에 가깝다고 여기고,
공휴일은 휴가에 가깝다고 저는 정의하죠.
군대에 있는 한 친구가 연락을 달라고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짬을 내서 연락을 했죠.
간만의 연락이라 이런저런 안부를 묻다가
문득 오늘이 현충일이란 게 생각이 났습니다.
군대에서 현충일은 아주 중요한 날이지 않냐
행사는 어떤 거 어떤 거 하냐 이렇게 물었더니,
오늘 그냥 쉬는 날이라고
아침까지 푹 자다 쉬고 있다고 답을 하더군요.
(물론 모든 곳이 이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구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 나눈 후에
휴가 때 보자며
이만. 하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게, 참 여러 가지 생각이 들더라고요.
원래, 존재라는 것은
기억으로 변모하긴 하지만
기억할 수 있는 마음이 있기에,
기억으로 남을 수 있는 애정이 있기에
명목이 변해도
계속해서 존재할 수 있다고.
그리고 그 기억을 통해
많은 이들이 존재를 함께 공감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믿는 저에게
어쩌면 하나의 큰 공동체에서
사소하게 넘긴 그 날의 기억이
조금은 마음아팠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휴일'로 보낸다는 것이
정말 아무렇지 않다는 게
조금은 야속하기도 했습니다.
평범한 속에
황금연휴라는 이름으로
하루의 명명을 다시 한다는 것이
새삼, 죄송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저 또한 매 십 시에 묵념을 해 왔던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그 날의 의미에 함께 동참하지 못했다는 것에,
다시 한 번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6월 6일.
'오늘'이라는 이름보다
'현충일'이라는 이름으로
그래서 부르고 싶습니다.
'쉬는 때'는 즐기고
그 '때'가 만들어진 의미는 생각하고.
그렇게 앞으로도
모두가 휴가를 보낼 수 있으면 합니다.
PS : 무거운 글을 쓸 때엔, 사실 조금 두렵기도 합니다.
저 역시 부족하고 완전하지 않은 사람이라서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