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PAPER BOX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정한 Sep 29. 2016

기념품

PAPER BOX_63

부다페스트 중앙시장

벼리 기(紀)

생각할 념(念)

물건 품(品)

어떤 뜻깊은 일이나 훌륭한 인물 등을 오래도록 잊지 아니하고 마음에 간직함, 그 물품.

BGM_More Than Words-Extreme


기념품


그 나라의 감성을 기념하기 위해 공예품을 사고

그 도시의 향취를 기념하기 위해 먹을 것을 사고

그곳의 자취를 기념하기 위해 사진을 찍고

그 시간의 기분을 기념하려고 앉을 곳을 찾고

그 순간의 느낌을 기념하기 위해 글을 쓰고

그동안의 생각을 기념하기 위해 추억을 회상하고

그간 겪은 수많은 일들을 기념하기 위해 이야기하고

그를 기억하며 기념품을 사고

그것을 줄 수 있다는 것에 잠시 동안 행복해하고

그러다 내가 당신을 언제부터 기념하도록 애정 했는지

내가 당신을 생각하는 데 있어

당신이란 존재에 나는 기념품인지

그 작은 것들에 몇십 분을 고민하던 나의 감정이

그저 헛된 수고는 아닐 것이라고

그렇게 중얼대다

그저 또 넘길 수만은 없는 당신을 위한

어제도 보고 오늘도 고민했던

그 기념품을 내일은 꼭 살 것이라 다짐한다.


그래서 기념품이다.

내가 당신을 생각했다는 증거

그만큼 내가 당신을

기념으로 남길 수 있다는 증거.



여행을 하다 문득 기념품이란 말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싶었습니다.

어딜 가든 여유가 넘쳐나는 공원에 앉아

한 자 한 자 끄적여봅니다.


기념(紀念)이라는 말의 한자 의미는

벼리 기, 생각할 념을 씁니다(때론 기록할 기(記)를 쓰기도 합니다).

벼리는 고기 잡는 그물의 코를 뀌어 그물을 잡아당길 수 있게 한 동아줄을 말합니다.

또 다른 뜻이 있는데,

인간이 필수적으로 지켜야 할 기본적인 도덕과 규범이라는 자의(字意)로 쓰이기도 하죠.

그 외에 적다, 쓰다 등의 뜻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생각을 쓰다

생각을 적다

저는 기념품의 의미를 이렇게 풀이해 봅니다.


어디로 여행을 떠나게 되면

참으로 당연하게도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을 생각하며

또는 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며

기념품을 사게 됩니다.


혹은 기념을 할 만한 사진과 동영상을 남기고

여행이 끝나고 추억을 되새기며

그날의 일들을 회상하기도 하지요.


그러다 생각이 좀 좁아집니다.

나는 당신에게 줄 기념품을 샀는데

당신은 그걸 받으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내가 그것을 줬던 것을 기억이나 할까

그때에 내가 주며 했던 말들을 기억할 수 있을까

그는 이런 일들로 오래도록 생각할까

난 그의 기념품일까


한동안 그렇게 생각하다

내 생각에 그의 기념품을 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여행이 되었다면

그걸로 만족하련다 혼자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마냥 괜찮다는 소리는 아닙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기념할 만한 사람이라면

어떤 존재로 살아간다는 것인지

어떠한 마음을 나의 사람들에게 주고 있는 것인지

아직은 알 수 없는 혼잡한 생각들에

흔들리고 있으니까요.


자리에서 일어나

공원 주변을 둘러보는 중에

손을 잡고 따스한 눈길로

서로를 바라보며 산책로를 걷는 커플을 발견합니다.

그러다 또 하나 생각이 듭니다.

세상은 나를 기념으로 생각할까


키스를 그린 구스타프 클림트

변신의 저자 프란츠 카프카

음악의 신동 모차르트


세상의 기념으로 남은 수많은 사람들

내가 이런 멋진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어떤 모습으로 삶을 준비해야 할까

좁아졌던 생각에 조금은 몸을 펴고

나에 대해 고민해 봅니다.

그리고 현재의 나를 기념해 봅니다.

나의 모습에 당신이란 이름을 새길 수 있는지

한 번의 생각을 더 해보며

조금은 자만에 찼던 나를 내려놓고

나의 현재를 바라봅니다.


PS : 세상의 기념품,

어쩌면 너무나도 허황되고 큰 꿈이라고들 나를 생각하겠지만, 그리고 명예욕에 굶주렸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일부엔 그런 마음이 있을 수 있으나 그것보다는 많은 다른 마음이 제 속에 차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인정과 명예를 가지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내가 좋은 사람으로 남는다는 것. 나를 좋은 모습으로 남긴다는 것에 더 초점을 두고 있으니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해를 지워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