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PER BOX_64
너의 모습이 오른쪽으로 갈 때에
나는 너를 잡을 수 없었다.
나는 가야 할 길로 출발해야 했고
너는 그런 나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때론, 놓치는 것도 마음에 간직해야만 한다.
BGM_ Be good or be gone-Fionn Regan
그렇게 일 년이 지났다.
계절은 고독하게 네 번을 보내버렸다.
해는 삼백육십 다섯 번 떴고
달은 삼백육십 다섯 번 졌다.
내리쬐는 햇빛이 그렇게도 싫었고
차가워진 비가 나뭇잎을 떨어뜨리는 게 야속했고
내리쬐는 햇빛의 따뜻함이 필요했고
차가워졌던 비를 녹일 새순의 푸르름이 간절했다.
최선의 방법으로 그것들을 보려 했으나
최선의 방법으로 그것들은 지나갔고
나는 최대한으로 달려다 뒤돌아 보려 했으나
그런 나를 기다려 줄 자비 따윈 없었다.
전속력으로 다만 뛰어갈 뿐이었다.
그렇게 한 차례의 시간을 흘려보냈다.
세상은 지나간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남겼고
새로운 것들에 대한 낯섦을 선사했다.
지나간 시간들에 야속함이 생기다가도
그리움으로 다가온 행복의 그늘에 숨을 수 있어 고마웠다.
새로운 것들에 대한 야속함이 생기다가도
낯섦보다 더한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아 고마웠다.
잊으려 노력할수록 기억나는 것이
생각의 이치이고
지난 것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
시간의 이치이다.
그리 생각하련다.
지나 보낼 수 있었던 것에
당신이라는 존재가 함께였고
새로움에 느낀 낯섦이
당신이 남긴 흔적이라 느껴졌고
생각과 시간의 이치가
당신으로부터 생각되었다는 것.
사람은 "이별"이라는 것에 참으로도 많은 감정을 소비하도록 만들어진
"그 순간의 감성적인 존재"인가 봅니다.
그리고 새것에 대한 경각심이 정말로도 자연스레 가져지는
"그 순간의 열정적인 존재"인가 봅니다.
무심하리만큼 시간은
어디로 증발된 것처럼 지나가 있고
오늘의 제 모습을 보며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문득 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주변을 돌아보니
지나감에 미련 둘 새도 없이
그새 새로운 것들로 가득 차 있었고
이미 지나온 것들을 그저 추억만 할 수 있다는 것이
조금은 어색하게만 느껴집니다.
한 해가 시작한 지 벌써 10달이 지났다니,
참으로 믿기지 않지만
그간 제가 가졌던 모습들을 찬찬히 돌아보며
스쳐간 시간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나는 이것들을 했었고
누구와 만났었고
어떤 일을 했고
어떤 모습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는지,
어떤 행동들로 나를 채웠고
어떤 것들이 나를 자극했었고
어떤 생각들을 현실화했고
어떤 마음을 믿는 대로 행했는지,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변명 같은 시간에
생각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습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바쁘다고 핑계를 댈 만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감정과 함께요.
후회가 되기도 하지만
후회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으니까
깔끔히 그 후회는 접어 넣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다짐은 다시 하면 되니까
오늘도 잘 살았다는 말이 나오도록
지금이라도 이런 생각을 했으니까라고 생각하며
하나의 또 다른 다짐을 새겨 놓습니다.
지나 보낸 것도 이렇게 생각이 나는 것 보면
마냥 지나치게끔 만들지는 않았나 봅니다.
이게 또 다른 다짐을 만들고 있고
오늘도 하나의 생각을 하게 만들었으니까요.
또 문득 든 생각이,
참 웃긴 게
계절이 지나면
우린 정말 자연스레 반으로 잘린 옷을 입고 다니고
긴 옷을 입고 다니고
윗도리를 챙겨 나간다는 거예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낯섦에 이미 적응한 변온동물들처럼
전혀 낯설지 않게 받아들입니다.
어쩌면 이것도 축복 아닐까요.
새로움에 대한 경각심이 그렇게나 많은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그 이상의 감정을 가지지 않아서 다행인 것 말이에요.
어떤 그 무언가를 그리워할 수 있고
한 번씩은 그 그리움에 푹 빠져 있으면서
새로운 것에 대한 낯섦을 그리움으로 승화시키는,
그런 것 말이에요.
붙잡는 다고 붙잡히는 게 아니기에
우리는 이렇게 간단한 도피처를 마련하고
그 어떤 것을 위로받으며 살아가는 모습이
저는 참으로 축복이라 생각합니다.
결코 그 도피는 나쁜 도피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
새것에 대한 적응이라고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 나쁘지 않은 도피를
즐기면서 살아가면 되는 거죠.
떠오르는 그 어떤 것들에 대한 그리움들이
결국은 새로움을 적응하는 모습이기도 하니까요.
PS : 시에서 쓰인 "당신"이라는 표현은 제삼자에 대한 존칭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지만, 제삼의 어떤 것에 대한 존칭이라고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