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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정한 Sep 09. 2015

잊고 지낸 것이 있다.

PAPER BOX_4

버스 정류장에서

저녁 하늘을 걷는다는 것은

낮에 걷던 회색의 아스팔트를 다시 걷는 것.

그래서 저녁의 거리엔 추억을 상기시키는 별빛이 많이 비치는 건가 보다.


잊고 지낸 것이 있다.

                                                                         J PARK

익숙한 길.

오늘도 그 거리를 걸으며

마치 제자리에 놓인

나의 물건을 찾듯

두리번거린다.


가로등 불빛

2분 28초마다 바뀌는 횡단보도

시장 골목에 있는 구제매장

국수집.

성탄절이 다가오는

교회 앞 밝은 거리

짜장면집.

옆에 있는 이웃 할아버지의 주차장


내뱉는 숨결 한 번에

주위의 낯익은 풍경들


발걸음을 늦춘다.


새벽길에 지나가던

고양이 한 마리가

자기도 그렇다고

두리번거린다.


익숙한것들이있어줘서고맙다

옆에가만히그자릴지켜줘서고맙다


길을 걷다가 문득 낯선 기분이 들어 주변을 둘러 봅니다.

참 오랫동안 걸어온 길인데

그 날 따라 유난히도 새로운 느낌이 들더군요.

주택에 살면서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집까지 들어가는 길을 "오늘도 걷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몇 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우정처럼

우뚝하니 서 있는 익숙한 건물들

조용히 지나가는 낯익은 움직임

햇빛처럼 두근거렸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잠잠하고 점잖게 물들고 있는 심장을 데려 옵니다.


그러다 문득 생각합니다.

고맙다는 생각을요.

몇 년의 세월 동안 제가 기댈 곳을 만들어 주고

때론 한풀이를 할 수 있는 친구가 되어주고

비를 피할 수 있는 우산이 되어주고

조용함에 젖어들 수 있는 사랑스러운 공간이라서 말이에요.


사소한 것들이 사람의 마음을 더욱 움직이게 하는 것 같습니다.

가만히 서 달빛의 심장소리를 느끼며

멀어져가는 자동차의 경적소리와

한껏 정오의 목청소리에 들떴던 귀를

가만히 씻어내며 아름다운 충전을 하게 됩니다.


사소하게 소박합니다.


PS:낮의 일들을 기억하며 밤의 회색빛 아스팔트에게 말을 겁니다.

가로등불이 별이 돼 주는 아스팔트,

"별 하나의 추억과 별 하나의 동경과 별 하나의 어머니, 어머니."-윤동주 시인(詩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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