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PAPER BOX

잊고 지낸 것이 있다.

PAPER BOX_4

by 진정한
6th Story FIX.jpg 버스 정류장에서

저녁 하늘을 걷는다는 것은

낮에 걷던 회색의 아스팔트를 다시 걷는 것.

그래서 저녁의 거리엔 추억을 상기시키는 별빛이 많이 비치는 건가 보다.


잊고 지낸 것이 있다.

J PARK

익숙한 길.

오늘도 그 거리를 걸으며

마치 제자리에 놓인

나의 물건을 찾듯

두리번거린다.


가로등 불빛

2분 28초마다 바뀌는 횡단보도

시장 골목에 있는 구제매장

국수집.

성탄절이 다가오는

교회 앞 밝은 거리

짜장면집.

옆에 있는 이웃 할아버지의 주차장


내뱉는 숨결 한 번에

주위의 낯익은 풍경들


발걸음을 늦춘다.


새벽길에 지나가던

고양이 한 마리가

자기도 그렇다고

두리번거린다.


익숙한것들이있어줘서고맙다

옆에가만히그자릴지켜줘서고맙다


길을 걷다가 문득 낯선 기분이 들어 주변을 둘러 봅니다.

참 오랫동안 걸어온 길인데

그 날 따라 유난히도 새로운 느낌이 들더군요.

주택에 살면서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집까지 들어가는 길을 "오늘도 걷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몇 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우정처럼

우뚝하니 서 있는 익숙한 건물들

조용히 지나가는 낯익은 움직임

햇빛처럼 두근거렸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잠잠하고 점잖게 물들고 있는 심장을 데려 옵니다.


그러다 문득 생각합니다.

고맙다는 생각을요.

몇 년의 세월 동안 제가 기댈 곳을 만들어 주고

때론 한풀이를 할 수 있는 친구가 되어주고

비를 피할 수 있는 우산이 되어주고

조용함에 젖어들 수 있는 사랑스러운 공간이라서 말이에요.


사소한 것들이 사람의 마음을 더욱 움직이게 하는 것 같습니다.

가만히 서 달빛의 심장소리를 느끼며

멀어져가는 자동차의 경적소리와

한껏 정오의 목청소리에 들떴던 귀를

가만히 씻어내며 아름다운 충전을 하게 됩니다.


사소하게 소박합니다.


PS:낮의 일들을 기억하며 밤의 회색빛 아스팔트에게 말을 겁니다.

가로등불이 별이 돼 주는 아스팔트,

"별 하나의 추억과 별 하나의 동경과 별 하나의 어머니, 어머니."-윤동주 시인(詩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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