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샤-리사 아틸라 <수평-바카수오라> & 강홍구 <녹색연구-서울-공터>
* 유튜브 영상의 스크립트입니다. 영상은 아래 링크를 참조해주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gtVlpgCwC0
저는 평소에 푸른 은행잎이나 파란 하늘 같은 자연을 보며 그들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위안을 얻곤 하는데요. 그 순간을 간직하고 싶은 마음에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는데 두 눈으로 보는 것만큼 잘 찍히지 않아 항상 사진의 한계를 느낍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는 <수평의 축> 전시에서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한 작가의 작업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핀란드 출신의 에이샤-리사 아틸라의 <수평-바카수오라>는 가문비 나무를 영상으로 기록한 작품입니다. 작가는 나무의 실제 크기와 모양을 최대한 구현하기 위해 나무를 수평으로 눕히고 여섯 부분으로 나누어 영상을 제작했습니다. 제작 과정에서 작가는 가문비 나무를 이미지의 변형 없이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실제로 이 작품을 보면 햇빛과 바람, 구름에 따라 가문비 나무의 색깔과 모양이 시시각각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렇게 단 한순간도 고정되어 있지 않은 무언가를 영상에 그대로 담고자한 것부터가 인간의 욕심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맨 왼쪽 영상 나무 밑에 서 있는 사람을 보면 나무가 얼마나 큰지 가늠할 수 있어서 작가의 시도가 더 무모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반면에 이러한 재현의 한계를 역이용한 작품도 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도보로 5~10분 정도 떨어진 원앤제이 갤러리에서는 강홍구 작가의 개인전 <녹색연구-서울-공터>가 열리고 있습니다. 가기 전에 인스타에서 이런 전시 전경을 보고 초록으로 가득 찬 작업들이 마음에 들어서 단순히 도시의 자연을 소재로 한 회화나 사진일거라 예상하며 전시를 보러 갔답니다. 그런데 작품들을 실제로 보니 제 예상과 달리 반전이 있었습니다. 작품들은 도시의 자연을 담은 단순한 그림이나 사진이 아니라, 사진과 회화를 섞어 놓은 것이었습니다. 주로 재개발로 사라지는 동네를 흑백 사진으로 담고 그 위에 채색을 한 것이더라구요. 실제 동네의 모습은 흑백 사진으로 담기면서 한번, 그 위에 색이 입혀지면서 한번 더 변형됩니다. 실제 모습이 두 번에 걸쳐 변형되는 것이죠. 관람객은 작가의 주관적인 덧칠과 흑백만 남은 사진 아래에 있었을 원래 모습은 어땠을까 호기심을 가지고 본래 모습을 상상하게 됩니다.
'예술로 어떤 대상을 재현해낼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에이샤-리사 아틸라와 강홍구 작가는 상반된 방식으로 자신의 작품에 풀어냈습니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고자 한 에이샤-리사 아틸라의 <수평-바카수오라>와 대상을 작가의 주관대로 편집한 강홍구 작가의 작품 중 어느 쪽이 여러분이 생각하는 ‘예술’에 더 가까운가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는 <수평의 축> 전시는 5월 24일까지, 원앤제이 갤러리의 <녹색연구-서울-공터> 전시는 5월 31일까지 계속됩니다. 전시 기간도 비슷하고 위치도 가까우니 두 전시를 함께 비교해 보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