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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사랑한미술관 Oct 11. 2020

내가 아니면 누가? 지금 아니면 언제?

드라마 <그리고 베를린에서> & 김승영 <그는 그 문을 열고 나갔다>

* 유튜브 영상의 스크립트입니다. 영상은 아래 링크를 참조해주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66Ogsv9fNiU




안녕하세요. 내가 사랑한 미술관입니다.


얼마 전 넷플릭스 4부작 드라마 <그리고 베를린에서>를 보았습니다. 작가 데보라 펠드먼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드라마는 뉴욕의 하시디즘 공동체를 탈출해 베를린으로 떠나는 여성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하시디즘은 유대교의 한 분파로 공동체 구성원들은 외부 세계와 거의 단절된 채 매우 엄격한 규율을 지키며 살아갑니다. 남자들은 옆머리를 기르고 털로 만든 희한한 모자를 쓰고 여자들은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고 노래를 부를 수도 없으며 결혼하면 삭발을 하는 등 21세기 뉴욕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일들이 벌어집니다.  


주인공 에스티는 크고 작은 규율 속에 답답함을 느끼며 결혼을 통해 본인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으리란 희망을 품고 중매 결혼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녀의 기대와 달리 결혼 후 그녀는 그저 '애 낳는 기계' 취급을 받고 계속 임신에 실패하자 남편은 그녀에게 이혼을 요구합니다. 결국 그녀는 자유를 찾아 공동체를 탈출해 베를린으로 향합니다.  


드라마를 보며 억압, 자유 같은 단어들을 생각하다 보니 몇 년 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 전시 <달은, 차고, 이지러진다>에서 보았던 김승영 작가의 설치 작품 <그는 그 문을 열고 나갔다>가 떠올랐습니다. 전시장 가운데 문이 달린 커다란 철제 박스가 놓여있고 그 안에서 쾅쾅쾅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약간 무서울 정도로 소리는 매우 크게 끊임없이 반복되었는데 그 안에 갇혀 있는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처럼 들렸습니다. 조심스레 다가가 그 문을 열어 보았는데 문을 여는 순간 쾅쾅 울리던 소리가 멈추고 문 안에는 거울에 비친 제 자신이 있었습니다.


드라마 <그리고 베를린에서>와 김승영 작가의 작품을 나란히 놓고 보면 철제 박스는 하시디즘 공동체의 엄격한 규율을 상징하고 에스티는 거기서 탈출하고자 쾅쾅 소리를 내며 문을 두드리는 존재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에스티가 본인의 의지와 힘으로 공동체를 떠나는 점과 작품 속 문을 열면 관람객이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게 되는 설정은 '어느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만이 우리를 더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공통된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합니다.


여러분을 억압하고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하시디즘 공동체의 규율과는 다른 형태지만 본질은 비슷한, 다양한 종류의 억압과 차별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들로부터 여러분을 해방시킬 수 있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여러분 자신 뿐입니다. 에스티가 드라마에서 인용한 탈무드의 한 구절로 이번 영상은 마무리하겠습니다.  


탈무드가 말하죠.

'내가 아니라면 누가'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나서리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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