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화 작가 <살어리 살어리랏다> @ 갤러리 P21
* 아래 유튜브 영상의 스트립트입니다. 영상은 아래 링크를 참조해주세요!
안녕하세요. 내가 사랑한 미술관입니다.
이 그림은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의 <차 마시는 여인>입니다. 어느 것 하나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일상의 한 순간을 다룬 이 그림에 대해 알랭 드 보통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샤르댕은 소박한 순간의 가치를 알아보고, 그 특질에 우리의 주의를 집중시키기 위해 그의 천재성을 발휘했다.
이렇게 예술에는 파악하기 어려운 일상의 진정한 가치에 경의를 표하는 힘이 있다. 이 작품은 주어진 상황(항상 좋지만은 않은 직업, 중년의 결함, 좌절된 꿈, 사랑스럽지만 짜증을 잘 내는 배우자에게 충실하려는 노력 등)에 최선을 다하며 우리 자신에게 보다 공정하라고 가르친다. 예술은 이룰 수 없는 것을 미화하는 행위와 정반대의 작용을 할 수 있다. 예술은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인생을 이끌어야 할 때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일깨워줄 수 있다.'
'예술은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인생을 이끌어야 할 때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일깨워줄 수 있다'는 마지막 문장은 오늘과 같은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 큰 의미로 와닿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 갤러리 P21에서 열린 최정화 작가의 개인전 <살어리 살어리랏다>는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큰 위안이 된 전시였습니다. 최정화 작가는 '살어리 살어리랏다'라고 노래하며 무릉도원을 꿈꾼 고려인들처럼, 평범한 일상을 그리워하는 현대인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고 하는데요.
작품 <生>은 흙(土)에서 싹(屮)이 돋아나는 모습의 상형문자에서 한자 날 생 '生' 자가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네온 사인으로 제작하여 작가가 벼룩시장에서 구입해 사용하던 스카프 위에 올린 작업입니다. 최정화 작가는 이 작품을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꺼져가는 생명력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마음에서 만든 '부적'이라고 말합니다.
또다른 작품 <연금술: Infinity>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플라스틱 그릇과 유기를 연달아 붙여 뫼비우스의 띠 형태로 만든 작업입니다. 예술과는 거리가 먼 일상의 소재들로 만들어진 작품은 뫼비우스의 띠가 안과 밖의 경계를 허무는 것처럼 예술과 예술 아닌 것을 구분짓는 경계는 무엇인가? 질문을 던지는 듯합니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Cosmos>였는데 정면에서 보면 평범하고 오래된 가구인데 옆으로 돌아가 보면 그 안에 형형색색의 반짝이는 구슬이 가득해서 다른 차원에 있는 또다른 우주를 보는 듯했습니다. 우리도 겉으로 보기엔 특별할 것 없는, 비슷비슷한 사람들이지만 각자의 내면에는 이 오래된 가구처럼 자신만의 고유하고 아름다운 우주를 품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습니다.
최정화 작가는 관람객들이 자신의 작품을 보며 ‘이게 예술이야? 예술이 이래도 돼?’라는 의문을 넘어 ‘나도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성공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익숙하고 하찮은 물건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일이 예술이며, 그건 예술가만이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죠. 이러한 최정화 작가의 예술관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더 단조롭고 무료한 일상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작지 않은 위안을 줍니다. 익숙하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발견한 아름다움이 차곡차곡 쌓여 최정화 작가의 작품처럼 반짝거릴 수 있다면,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지나고 있는 듯한 이 시간을 우리는 좀더 단단한 마음으로 견딜 수 있지 않을까요?
최정화 작가는 동명의 전시를 오는 10월 22일부터 2021년 2월 14일까지 경남도립미술관에서 선보입니다. 일상 속 사물들이 예술로 재탄생하는 모습을 보며 미술관이나 갤러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상 곳곳에 숨어있는 예술을 발견해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