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우리의 지구> & 가브리엘 아세베도 베랄데 <Escenario>
* 아래 유튜브 영상의 스트립트입니다. 영상은 아래 링크를 참조해주세요!
안녕하세요. 내가 사랑한 미술관입니다.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우리의 지구> 시리즈 중 '밀림(Jungles)' 편을 보았습니다. 전 세계 여러 곳의 밀림에 서식하는 다양한 종류의 생물을 보는 것도 흥미로웠지만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밀림을 밀어낸 자리에 기름야자 나무가 빼곡히 심어져 있는 장면이었는데요. 기름야자에서 추출하는 팜유는 다른 식물성 기름에 비해 생산 효율이 높아 과자, 아이스크림, 라면 등의 식품 뿐만 아니라 세제, 비누, 샴푸 등 다양한 물건에 광범위하게 활용됩니다. 팜유 소비량이 늘면서 다큐에 따르면 27만 제곱 킬로미터의 원시림이 파괴되고 그 자리가 기름야자 나무 단 1종으로 채워졌다고 하는데요. 이러한 단일 작물 재배는 밀림에 서식하는 수많은 생명에게 엄청난 위협이 되어 오랑우탄의 경우 지난 40년간 그들의 서식지를 75%나 잃었습니다.
자본의 논리에 의해 다양한 생명의 보고인 밀림이 세상에서 가장 생산성이 높은 작물 1종으로 채워지는 장면을 보니 생각나는 작품이 있었습니다. 지난 여름 갤러리 챕터투 야드에서 열린 전시 <Black Humour>에서 본 가브리엘 아세베도 베랄데의 영상 작품 <Escenario>인데요. 영상에는 무대와 무대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무대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눈을 감거나 눈을 가리고 있습니다. 그러다 눈을 뜨면 뒤쪽으로 가 줄을 서서 누군가 자신의 눈을 확인해주기를 기다립니다. 검사를 받은 대부분은 무대 앞으로 돌아가고 일부는 무대 위로 올라가는데 이들이 무대에 오르면 누군가가 강렬한 빛을 쏴서 이들을 기절시킵니다. 무대 위의 사람이 기절하면 무대 아래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합니다. 기절한 사람은 무대 아래로 내려가고 사람들은 일련의 과정을 끝없이 반복합니다.
얼핏 보면 가벼운 만화처럼 보이는 첫인상과 달리 이 작품은 무언가에 길들여져 아무 저항 없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눈을 멀게 하는 사람들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눈이 먼다'는 것은 단순히 '시력을 잃는다'는 의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권력이나 시스템 등에 의해 보이지 않는 테두리에 갇혀 자유롭게 생각하지 못하거나 마음껏 상상할 수 없는 사람들도 큰 맥락에서 보면 영상 속 사람들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들이 차차 자신만의 색깔을 잃고 권력이나 시스템이 원하는, 획일화된 인간의 형태에 점점 가까워지는 모습은 다큐멘터리 속 다양성을 잃고 단 1종의 작물로 채워지는 밀림을 떠올리게 합니다.
밀림도, 우리 사회도, 다양한 종의 생물과 다양한 생각, 감정을 가진 사람들로 채워져야 건강한 지구,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있겠죠. 저도 앞으로는 물건을 살 때 성분에 팜유가 들어가는지 확인해보고 사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또 한번씩 가브리엘 아세베도 베랄데의 작품 <Escenario> 속 사람들을 떠올리고 그들의 모습에 제 자신을 비춰 봐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됩니다. 여러분도 팜유는 조금 덜 소비하고 자신만의 색깔은 조금 더 짙어지는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