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치아노 <바쿠스와 아리아드네>
많고 많은 런던의 미술관과 갤러리, 그 안의 더 많은 그림들 중에서 나는 왜 이 그림이 그렇게도 좋았을까. 무엇 때문에 이 그림 앞을 그렇게나 오래 떠나지 못했을까.
이탈리아의 화가 티치아노는 1520년경 술의 신 바쿠스와 크레타 섬 미노스 왕의 딸 아리아드네의 사랑을 소재로 <바쿠스와 아리아드네>를 그렸다. 숲의 요정들과 함께 시끌벅적한 행렬을 이끌고 오던 바쿠스는 아리아드네를 보고 첫눈에 반해 마차에서 뛰어 내린다. 바쿠스는 결혼 선물로 아리아드네에게 7개의 보석이 박힌 왕관을 선물했다. 세월이 흘러 그녀가 세상을 떠나자 바쿠스는 그녀를 향한 사랑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왕관을 하늘에 던져 별자리 북쪽왕관자리를 만들었다.
그림 맨 왼쪽 위에 별자리가 그려져 있는데 별들이 박혀있는 하늘이 너무 아름다워 그림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낭만적인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과 정말 잘 어울리는 파란색 하늘이라고 생각했다. 서울에서는 여름이 끝나가고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쯤 비슷한 색감의 저녁 하늘을 볼 수 있다. 그런 하늘을 올려다 볼 때마다 나는 이 그림을 떠올리고, 영원에 가까운 시간동안 그 자리에 있을 북쪽왕관자리를 생각하고, 아리아드네에 대한 사랑의 징표를 별자리로 남긴 바쿠스의 지고지순한 사랑에 마음이 설렌다.
영원한 사랑을 꿈꾸면서도 세상에 그런 게 있을까 의심하곤 하는 내게, 이 그림은 세상에는 그런 게 있다고 보여주는 것만 같다. 존재 자체를 의심하던 무언가를 생생하게 펼쳐 보이는 그림이라 나는 그 앞을 쉽게 떠나지 못했나 보다.
언젠가 영원한 사랑을 만나게 된다면 그날 하늘은 꼭 티치아노의 <바쿠스와 아리아드네> 속 하늘처럼 파란색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