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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사랑한미술관 Dec 06. 2020

전시회 보는 맛 세 가지

엄마도 맨날 물어봐요. 미술관은 대체 무슨 맛에 가는 거니?

* 유튜브 영상의 스크립트입니다. 영상은 아래 링크를 확인해주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_oQVTqznG-E



안녕하세요. 내가 사랑한 미술관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양한 취미를 가지고 있죠. 제 취미는 책 읽기, 산책하기, 전시회 가기 등인데요.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취미는 전시회 보기입니다. 그런데 전시회 보기란 그닥 인기있는 취미가 아니라서, 전시회 보는 걸 좋아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고상한 취미를 가졌다거나 미술관은 너무 어려워서 잘 안가게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들 하더라구요. 이런 반응은 저와 가까운 사람들이라고 예외는 아니어서 틈만 나면 미술관에 가는 저를 보고 대체 무슨 맛에 그렇게 미술관에 가는 거냐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요. 이번 영상에서는 제가 대체 무슨 맛에 전시회를 보러 다니는지, 무엇이 저를 계속 미술관과 갤러리로 향하게 하고 그토록 열심히 작품들을 들여다보게 하는지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전시회를 좋아하는 여러가지 이유 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름다운 작품을 만났을 때의 기쁨인데요. 여기서 말하는 '아름다움'이란 굉장히 주관적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색감을 가진 그림을 발견하거나 형태가 마음에 드는 조각을 마주하면 한없이 그 앞에 앉아 작품을 바라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데 왜 그런 색감이나 형태를 좋아하는지는 정확하게 설명이 안되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감정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항상 아쉬움이 남기도 합니다.


얼마 전 갤러리 현대에서 열렸던 최민화 작가의 개인전 <Once upon a time>에서 본 작품들을 그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최민화 작가의 작품은 이 전시를 통해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지금껏 보지 못했던 방식으로 표현된 우리 신화 속 인물들과 파스텔 톤의 부드러운 색감의 조화가 정말 새롭더라구요. 소재도 참신했지만 색감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마치 책을 읽듯이 구석 구석 꼼꼼히 캔버스를 들여다보게 되었는데요. 그림의 색감은 아무리 고해상도로 사진을 찍거나 프린트를 한다 해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없기에 원작을 마주하는 그 순간에만 원작의 색감 그대로를 눈에 담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원작을 실제로 보아야만 느낄 수 있는 부분과 전시회를 통해 마음에 드는 새로운 작가를 발견할 때 느끼는 기쁨 때문에 전시회를 계속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전시회를 좋아하는 두번째 이유는 작품에 담긴 예술가의 시선 덕에 평소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던 이슈나 주제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2017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의 소장품 기획전 <하이라이트>에서 보았던 작품 <위대한 동물 오케스트라>를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음악가이자 생물음향학자인 버니 크라우스는 45년동안 15,000 종이 넘는 다양한 동물들이 내는 소리를 녹음해왔습니다. 그는 세계 곳곳을 누비며 녹음한 이 소리를 런던의 스튜디오 '유나이티드 비주얼 아티스트'와 협업하여 영상으로 시각화했습니다. 어두운 전시장에 여러 동물들이 내는 다양한 소리가 흘러 나오고 각각의 소리를 시각화한 영상이 전시장 벽과 바닥을 채웁니다.


버니 크라우스는 같은 장소에서 시간 차를 두고 여러 번 녹음 작업을 했는데 과거에서 현재로 올수록 점점 더 적은 수의 동물 소리만 들리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몇 십년 사이에 그만큼 많은 동물들이 멸종했기 때문인데요. 생태계 파괴가 심해짐에 따라 많은 생물들이 멸종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오케스트라'라고 부를 만큼 다양한 동물들의 소리가 들렸던 장소가 점점 적막해지는 것을 보고 있자니 세계 곳곳의 생태계가 얼마나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는지 실감이 나더라구요. 지금의 제가 조금이라도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분리수거를 더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는 데에는 이 작품을 비롯해 환경 문제를 다룬 여러 작품들의 영향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예술가와 그들의 작품은 제가 평소에 무관심하거나 소홀하게 여겼던 다양한 주제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고 그 경험을 통해 저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 세번째 이유는 미술관이나 갤러리의 조용하고 정돈된 공간이 풍기는 특유의 분위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방을 흰색으로 칠해 흔히 '화이트 큐브'라고 부를 정도로 작품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단순하고 깔끔하게 꾸며진 전시장 내부 인테리어와 관람객이 붐비지 않는 조용하고 한적한 전시장에서 느낄 수 있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상이나 현실 세계와는 동떨어진 다른 차원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하는데요. 가끔은 그렇게 일상과 거리를 두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아지고 위안이 되기도 해서 전시회를 계속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전시회를 좋아하는 이유를 듣고 보니 생각보다 별로 특별할 것 없다는 생각 드시지 않나요? 미술관이나 갤러리의 문턱이 너무 높게 느껴졌던 분들이 계시다면 이번 영상이 그 심리적인 거리를 좁힐 수 있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요즘 코로나 확산 사태가 심각해져서 전시회 못 간지 꽤 되었는데요. 하루 빨리 확산 사태가 진정되어서 여러분과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관람객으로 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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