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여기 있다> & 김애란 작가 <잊기 좋은 이름>
* 유튜브 영상의 스크립트입니다. 영상은 아래 링크를 참조해주세요.
안녕하세요. 내가 사랑한 미술관입니다.
다큐멘터리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여기 있다>는 2010년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 행위 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동명의 전시를 중심으로 그녀의 예술 세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전시를 준비하고 마무리하기까지의 전과정을 가까운 거리에서 담은 영상이라 예술가로서 뿐만 아니라 한 개인으로서의 아브라모비치의 모습도 많이 담겨있는데요. 이미 세계적인 예술가의 반열에 올라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작업에 임하는 태도나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전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여기 있다>는 젊은 예술가들이 재현한 기존 작품 5점과 아브라모비치가 직접 전시 기간 내내 선보인 신작 1점 등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전시 기간 내내' 진행되는 작품이라고 하면 매일 정해진 시각에 예술가가 등장해 관람객들 앞에서 일정 시간 동안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는데요. 아브라모비치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여기 있다'라는 글자 그대로 2010년 3월 9일부터 5월 31일까지 매일 미술관이 문을 여는 순간부터 닫는 순간까지 쉬지 않고 퍼포먼스를 선보였습니다.
테이프로 경계선이 그어진 네모난 공간 한가운데 테이블과 의자 한 쌍이 놓여있습니다. 한쪽 의자엔 아브라모비치가 앉아있고 맞은편 의자에 관람객이 앉으면 관람객과 예술가는 한동안 서로를 마주봅니다. 관람객이 자리를 뜨면 다른 관람객이 와서 그녀 앞에 앉습니다. 계속 새로운 관람객을 맞이하는 내내 아브라모비치는 거의 움직이지 않습니다.
큐레이터를 포함해 많은 이들이 그녀의 건강과 전시가 무사히 끝날 수 있을지에 대해 걱정했을 정도로 매일 7시간이 넘도록 움직이지 않고 앉아있는 것은 수행을 넘어 고행에 가까운 일인데요. 이미 예술가로서 전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었던 터라 기존의 작업을 가지고 쉬운 방식으로 회고전을 치를 수도 있었을 텐데 60이 넘은 나이에 누구보다 치열하게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고 끝내 전시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아브라모비치의 모습을 보니 가슴이 뭉클하기도 하고 그녀의 열정을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브라모비치는 고통을 수반하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설명하면서 고통을 넘어서는 순간, 아름다움과 무조건적인 사랑이 느껴지고 몸과 주변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신성해지는,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마음의 상태로 접어들게 된다고 하는데요. 그녀는 어떤 작업을 하느냐보다 어떤 마음 상태로 작업에 임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며 마음의 상태가 곧 행위 예술의 핵심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아브라모비치는 맞은편에 앉은 낯선 이들의 마음을 다 이해하는 것 같은 눈빛을 보여주는데요.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도달한 어떤 마음의 상태가 그녀의 눈빛에 담겨 맞은편에 앉아 있는 관람객들 뿐만 아니라 영상 밖의 저에게까지 전달돼서 정말 오랜만에 아 이런 게 예술인가 라는 생각까지 들더라구요.
거리를 두고 떨어져 앉아 어떤 이야기도 주고 받지 않지만 많은 것들을 서로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처럼 보이는 아브라모비치와 관람객들의 모습을 보니 김애란 작가가 '이해'에 대해 이야기한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다음은 수필집 「잊기 좋은 이름」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이해'란 타인 안으로 들어가 그의 내면과 만나고, 영혼을 훤히 들여다보는 일이 아니라, 타인의 몸 바깥에 선 자신의 무지를 겸손하게 인정하고, 그 차이를 통렬하게 실감해나가는 과정일지 몰랐다. 그렇게 조금씩 '바깥의 폭'을 좁혀 가며 '밖'을 '옆'으로 만드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그 이해가, 경청이, 공감이 아슬아슬한 이 기울기를 풀어야 하는 우리가 할 일이며, 제도를 만들고 뜯어 고쳐야 하는 이들 역시 감시와 처벌 이전에, 통제와 회피 이전에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인지도 몰랐다. 그때 우리가 누군가의 얘기를 '듣는'다는 건 수동적인 행위를 넘어 용기와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 될 것이다.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작은 것까지 낱낱이 알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가까이서 많은 대화를 나눠야 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요. 김애란 작가는 타인의 내부로 들어가 영혼을 훤히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그의 바깥에 있는 자신의 위치를 받아들이고 바깥의 폭을 좁혀 나가는 것이 '이해'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 이야기가 아브라모비치와 관람객들이 보여준 이해와 공감의 방식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요.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든 얼마든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아브라모비치는 아무 말 없이 그저 눈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상대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보여줄 수 있는지 몸소 보여줍니다. 이를 위해 그녀가 얼마나 큰 용기를 가지고 부단히 노력하며 자신을 희생했는지 떠올려 보면 우리가 너무 쉽게 누군가를 '이해'하고 무언가에 '공감'했다고 이야기하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렇게 초월적이고 열정적인 예술가의 면모를 보여주면서도 아브라모비치는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냅니다. 오랜 연인이자 파트너였던 울라이와 결별한 뒤 모든 걸 잃었다는 생각에 우울하고 공허했던 기분을 자신의 외면을 꾸미면서 해소했고 그 이후로 패션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돈과 명예는 예술가로서 어떤 지점에 도달하면 딸려오는 부작용이나 부산물이라고 하면서도 자기는 그 부산물을 좋아한다고 말합니다. 전시가 시작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육체적으로 점점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수행자 같은 태도로 작업에 임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와는 다른, 어떤 경지에 오른 대단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패션과 돈, 명예를 사랑하고 자신의 예술을 위해 고통을 감내하는, 우리와 그렇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니 아브라모비치가 더 가깝고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제게 행위 예술은 회화나 영상 등의 다른 예술 장르보다 더 어렵고 낯선 것이었는데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니 행위 예술이 더 가깝게 느껴지고 이런 게 예술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브라모비치의 작업에 감동 받아서 정말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저와 비슷한 분들이 계시다면 왓챠에 올라와 있으니 서비스가 끝나기 전에 꼭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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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