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준 작가 & 소설가 위화
* 유튜브 영상의 스크립트입니다. 영상은 아래 링크를 참조해주세요!
안녕하세요. 내가 사랑한 미술관입니다.
모든 독자는 자신의 일상적인 경험과 상상력에 기초해 문학 작품을 읽는다. 만약 이 작품이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였다면, 분명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숨어있던 어떤 생각과 감정을 일깨웠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이 작품에 대한 그의 이해와 감상은 다른 독자는 물론, 작가의 그것과도 전혀 다른 것이다.
나는, 작가로서, 동일한 내 작품이라도 읽을 때마다 다른 느낌을 받는다. 생활이 변했고, 감정도 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작가가 자기 작품의 서문에 쓰는 내용은 사실 한 사람의 독자로서 느낀 바라고 말하고 싶다.
모든 독자는 문학 작품에서 자기가 일상에서 느껴온 것들을 찾고 싶어 한다. 작가나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자기가 느껴온 것 말이다. 문학의 신비로운 힘은 여기서 나온다. 모든 작품은 누군가가 읽기 전까지는 단지 하나의 작품일 뿐이지만, 천 명이 읽으면 천 개의 작품이 된다. 만 명이 읽으면 만 개의 작품이 되고, 백만 명 혹은 그 이상이 읽는다면 백만 개 혹은 그 이상의 작품이 된다.
이는 소설 「허삼관매혈기」로 유명한 중국 소설가 위화가 소설 「인생」의 서문에서 작가와 문학 작품, 독자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 내용인데요. 위화는 소설이 완성되면 작가 역시 한 사람의 독자가 되고, 독자들은 각자의 경험과 상상을 토대로 작품을 읽음으로써 하나의 소설은 독자의 수만큼 다양한 작품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문학'을 그림이나 조각 등 다른 장르의 예술 작품으로 치환해서 읽어도 무방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우리가 우리 자신만이 알 수 있는 경험과 감정을 토대로 어떤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면 '나'라는 필터를 거친 그 작품은 더 이상 그 전의 작품과 같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나'라는 필터를 거쳐서 나만의 고유한 무언가가 된 작품들은 그렇지 못한 작품들보다 훨씬 더 기억에 오래 남아 위화가 말한 것처럼 '신비로운 힘'을 발휘합니다.
예술 작품이 어떻게 '나'라는 필터를 거쳐 나만의 무언가가 될 수 있는 지에 대해서는 작년에 원앤제이 갤러리의 <가볍고 투명한> 전과 일우 스페이스의 <작업의 온도> 전에서 보았던 이희준 작가의 작업을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두 전시에서 본 작업들은 '과거의 선명했던 기억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어떤 모습으로 내 안에 남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이희준 작가는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사진을 편집해 캔버스 위에 배치하고 그 위에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인 여러 도형과 선을 얹습니다. 여러 겹의 레이어가 쌓여 있는 가운데 맨 아래에 놓인 사진들은 흑백에다 부분 부분 잘리거나 확대되어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기 보다는 파편적이고 부수적인 요소라는 인상을 줍니다. 과거의 어떤 기억을 떠올릴 때 흐릿하고 어렴풋하게만 기억나는, 부수적인 요소들과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 이 작업들을 마주하면 가장 크고 굉장히 두텁게 그려져 있는 도형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띄는데요. 과거의 기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사실보다는 당시에 본인이 느낀 감정이나 기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부조처럼 보일 정도로 매우 두껍게 칠해져 있어서 캔버스에서 결코 떼어낼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이 도형들은 기억 속의 가장 지배적인 감정이나 기분을 나타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밖의 작은 도형들과 선들은 그 외의 부수적인 감정들을 의미하는 것이구요.
도형들의 다양한 크기가 여러 감정들의 크기를 표현한다면 다양한 색은 감정의 종류를 의미하는 듯 보입니다. 그래서 밝은 노란색의 동그란 원이 커다랗게 그려져 있는 이 작품은 따뜻한 기억으로 가득한 유년 시절을 떠올리게 하고, 무채색에 가까운 색들과 곡선이 아닌 직선으로 이뤄진 도형들로 가득한 이 작품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수동적으로 살아야 했던 고등학생 시절을 떠올리게 합니다. 가장자리에 하늘색과 노란색으로 작게 그려진 여러 사각형과 선은 그 시절에 이따금씩 느꼈던 자유나 일탈 같은 것들을 보는 것 같구요.
우리는 카메라가 사진이나 영상을 기록하듯이 과거를 기억할 수 없기에 시간이 흐름에 따라 기억 속 배경은 점점 흐릿해지고 섬세하고 복잡했던 여러 감정들은 점점 단순해지는 것 같습니다. 기억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흐르는 세월과 함께 이런 식으로 재조합되어 이제는 이희준 작가의 작품을 닮은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저만의 필터로, 저만의 방식으로 해석한 이희준 작가의 작품은 저만의 작품이 되어 과거의 추억이나 기억을 떠올릴 때면 이 그림들이 한번씩 생각날 것 같습니다.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나만의 관점으로 해석한 작품들이 쌓이다 보면 그로 인해 전시장 밖에서의 일상도 훨씬 풍요로워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술이 가진 ‘신비로운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위화가 말했듯이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데에는 정답이 없고 오로지 우리 각자의 답만 있을 뿐입니다. 이것만 기억한다면 정답을 찾아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 더 많은 예술 작품들과 가까워질 수 있고 그로 인해 삶은 더 풍요로워질 수 있습니다.
전시 서문에서 평론까지 미술계의 글들은 왜 항상 읽기 어려울까 라는 생각에 미술관에서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쉬운 말로 써보고 싶어 영상을 만들기 시작했는데요. 새해에도 저만의 관점과 언어로, 예술에 대해 느끼고 생각한 바를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제 이야기를 통해 여러분에게 예술이 더 친근한 것으로 다가갈 수 있다면 정말 기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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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