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세옥 화백 <사람들> & 김수영 시인 <겨울의 빛>
* 유튜브 영상의 스크립트입니다. 영상은 아래 링크를 참조해주세요.
안녕하세요. 내가 사랑한 미술관입니다.
지난 1월 20일은 국내에서 첫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나온 지 1년 되는 날이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제대로 한 것도 없는데 벌써 1년이 되었나 싶기도 하고 지난 1년이 너무 길게 느껴져서 아직 1년밖에 안되었나 싶기도 한데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집단 감염이 터지고 주변에 방역 수칙 안 지키는 사람들을 볼 때면 정말 화가 나고 허탈한 기분이 들기도 하죠. 하지만 3차 대유행이 정점을 지나 조금씩 진정되고 있는 걸 보면 방역 수칙을 잘 지키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생각에 많은 이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더 열심히 거리두기를 하고 마스크를 잘 써야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3차 유행이 끝난다고 해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완전히 종식되기 전까지 확진자 수는 계속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할 것 같은데요. 쉽게 끝나지 않을 긴 싸움에서 우리는 물리적으로는 혼자지만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할 것 같습니다. 코로나 시대에 연대하는 방법은 모두가 흩어지는 것이니까요.
코로나 시대 운명 공동체가 되어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우리의 모습을 화폭에 담은 듯한 화가가 있습니다. 얼마 전 별세하신 서세옥 화백인데요. 1949년 등단한 서세옥 화백은 당시 지배적이었던 일본화풍에서 탈피해 조선 문인화와 서양의 추상 화풍을 접목시킨 '수묵 추상'이라는 독자적인 화풍을 개척했습니다. 1970년대부터는 대담한 붓질과 먹의 농담만으로 인간 군상을 표현한 <사람들> 연작을 선보였습니다.
지난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서세옥 화백의 기증 작품 특별전을 통해 <사람들> 연작을 포함한 그의 작품들을 볼 수 있었는데요. 작품 속 인물들은 최소한의 선과 점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연작들의 공통점은 인종, 성별, 나이, 국적 등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모두 그물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인물들이 홀로 존재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손을 잡거나 옆 사람의 어깨에 기대어 있는 모습은 혼자서는 살 수 없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야만 온전히 살아갈 수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특히 요즘처럼 모두의 연대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에서는 서로 연결되어 있어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우리의 공동체적 운명을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서세옥 화백이 <사람들> 연작을 통해 사람들 간의 연대를 표현했다면 김수영 시인은 비슷한 메시지를 시 <겨울의 빛>에 담았습니다.
<겨울의 빛> - 김수영
1
희미한 불빛을 깜박거리며
땅끝으로 오는 배가 있다
그 불빛으로 뒤꽁무니에 매달린
다른 멍텅구리배를 밝히면서
갈퀴바람 떠도는
먹구름 다 모인 바다 한가운데서
가장 캄캄히 드러나는 작은 등불
더 환하고 단단하게 반짝거린다
이 세상 파도와 어둠이 있는 한
천둥번개 폭풍우 속에서
흐린 얼굴도 의지가 되는 것
어둠을 향해 뻗어가는 뿌리의 힘
2
무너진 지붕과 터진 벽을 막아
불을 피운다
불 옆에 있으면
그을음 없는 작은 불꽃들 모여
큰 불 하나보다 따뜻이 바람을 이겨내는 게 보인다
궂은 날씨 속에서 파도 치는 밤바다 위를 배들은 작지만 환한 서로의 불빛에 의지하며 육지를 향해 나아갑니다. 무너진 지붕과 벽을 고치고 피운 불 속에는 작은 불꽃들이 바람을 이겨내는 모습이 보입니다. 배들은 길고 긴 터널 속에서 서로에게 의지하며 터널의 끝을 향해 걸어가는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고, 불꽃은 작고 연약한 존재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 서로 연대하는 모습이 얼마나 가치 있고 감동적인지 보여줍니다.
끝을 알 수 없어 더 힘들고 지치는 시간의 연속이지만 우리는 모두 보이지 않는 끈으로 이어져 있고 서로에게 희미하지만 단단한 등불이 되어 이 시간을 함께 견디고 있다고 생각하면 좀더 기운이 나고 위안을 얻게 되는 것 같습니다. 서세옥 화백의 그림과 김수영 시인의 시가 여러분의 지치고 힘든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주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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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