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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사랑한미술관 Feb 22. 2021

촉감, 시선, 숨결 만으로 온전한 세계에 대하여

한강 작가 <희랍어 시간> & 허우중 작가

* 유튜브 영상의 스크립트입니다. 영상은 아래 링크를 참조해주세요.

https://youtu.be/Mq-cpchpp6U


안녕하세요. 내가 사랑한 미술관입니다.

여러분은 소설 좋아하시나요? 저는   전까지만 해도 소설을  읽지 않았습니다. 책을 읽다가도 결국은 누군가가 지어낸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면  이야기가 무의미하게 느껴져서  이상 읽고 싶지가 않았기 때문인데요. 그러던  한강 작가의 소설 「흰」을 읽게 되었는데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장들이 정말 놀라웠습니다. 아기였을  세상을 떠난 언니를 위해 소설을 씀으로써 자기만의 방식으로 언니를 애도하는 작가의 모습도 인상적이어서  소설로 인해 누군가가 지어낸 이야기도 충분히 의미가 있을  있다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소설을 조금씩 읽기 시작했고  중엔 한강 작가의 또다른 소설 「희랍어 시간」도 있었습니다.  소설은 같은 책을 여러  읽으며 아름다운 문장들을 하나 하나 음미하고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얼마나 재밌는 일인지 깨닫게 해준 소설인데요. 소설엔 언어에 대해 매우 예민한 감각을 지닌 여자가 등장합니다. 그녀는  생생하고 예민한 감각 때문에 언어에 공포를 가지게 되고 결국엔 말을 잃게 됩니다. 그녀가 말을 잃은 이유를 명료하게 이해하기란 매우 어렵지만 이를 짐작할  있는 단서들은 소설 곳곳에서 찾을  있는데요.

그녀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자신이 입을 열어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의 말이 소름끼칠 만큼 분명하게 들린다는 것이었고, 토하고 비명을 지르고 싶을 만큼 자신의 혀와 손에서 뽑아져 나오는 거미줄 같은 문장들이 수치스럽다고 느낍니다. 말을 잃기  그녀는 자신이 사용하는 말들이 신음이나 낮은 비명, 숨죽여 앓는 소리, 으르렁거림, 잠결에 아이를 달래는 흥얼거림, 킥킥 터지는 웃음, 어떤 입술들이 포개어졌다가 떨어지는 소리 등에 가깝기를 바랬습니다.  말하려는 내용을 시선으로 완전하게 번역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처럼 말없이 상대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했죠. 시선만큼 즉각적이고 직관적인 접촉의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느꼈고, 그에 비해 목과 , 입술 등을 움직여야 하는 언어는 훨씬  육체적인 것이었고 그녀는 그것을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그녀는 학창시절에 이미 한번 말을 잃은 적이 있는데  2외국어 시간에 어떤 불어 단어를 듣는 순간 말을 되찾았던 경험이 있습니다. 낯설고 생소한 외국어를 배워보면 이번에도 말을 되찾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희랍어 수업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수업의 강사로 , 오래 전부터 시력이 점점 나빠지는 병을 앓고 있는 소설의 또다른 주인공인 '' 만나게 됩니다.

둘은 어떤 대화도 나누지 않지만 시선을 주고 받거나 작은 몸짓을 통해 서로에게서 자신과 닮은 모습을 발견하고 어떤 사건을 계기로 정서적인 교감을 나누게 됩니다. 이를 묘사한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정말 섬세하고 감각적으로 아름다워서 처음에 제가  소설에 반하게  가장  이유였습니다.

 소설과 닮은 그림으로 스페이스  갤러리에서 열린 < EDGE> 전과 일우 스페이스의 <작업의 온도> 전에서 보았던 허우중 작가의 회화 작품들을 소개해드리고 싶은데요. 화폭에는 회색 바탕 위에 기하학적인 선과 도형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바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지 회색이 평면적으로 균일하게 칠해져 있지 않고 새털이나 솜털 같은 작은 붓질이 빼곡히 겹쳐 있는 것을   있는데  흔적들이 소설  '' '그녀' 주고 받는 촉감이나 시선, 숨결 같이 아주 작고 연약하고 바스러질 것만 같은 것들을 연상시키더라구요.

바탕 위에 그려진 기하학적인 여러 선과 도형들은 머나먼 옛날 제대로  형태를 가지기 전에 언어가 가졌을 법한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침묵 속에서 어어, 우우, 하는 분절되지 않은 음성으로만 소통하던 인간이 처음  개의 단어들을 만들어낸 , 언어는 서서히 체계를 갖추어나갑니다.' 라고 언젠가 소설  수업 시간에 '' 했던 이야기가 떠오르면서 그림에서 어어, 우우, 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기도 합니다.

멀리서 보면 서로 이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선과 도형들은 가까이서 보면 이렇게 허술하고 아슬아슬하게 어긋나거나 끊어져 있습니다.  부분은 '' '문학 텍스트를 읽는 시간을 견딜  없었어. 감각과 이미지, 감정과 사유가 허술하게 서로서로의 손에 깍지를   흔들리는  세계를, 결코 신뢰하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나는 어김없이  세계의 것들에 매혹되었지.'라고 문학의 세계를 묘사하는 장면이나 심리치료사가 '그녀' 언어에 사로잡혔던 이유를 '언어가 세계와 결합되는 회로가 아슬아슬하다는 ' 그녀가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 독일에서의 학창시절을 회상하며 희랍어의 복잡한 문법체계가 본인에겐 고요하고 안전한 방처럼 느껴졌다고 하듯이 제게는  소설이 고요하고 아름다운 방처럼 느껴져서 '' '그녀'   이해하고 싶고 그들과  방에서 오래 머무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같아요. 허우중 작가의 그림은 제가 아끼는  이야기를 회화라는 또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것만 같아 함께 소개해드리게 되었습니다.

「희랍어 시간」은 서사가 뚜렷하지 않고 주인공들의 사연이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아서 읽기 쉬운 소설은 아닌데요. 모든 내용과  안의 의미를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너무 흔하고 일상적인 것이어서  번도 제대로 생각해보지 않았던 '언어'라는 소재를 얼마나 섬세하고 감각적인 문장들로 다뤘는지에 집중해서 읽으신다면 훨씬  마음에 와닿으실  습니다.

영상이 마음에 드셨다면 좋아요와 구독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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