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민 작가 & 영화 <인사이드 아웃>
* 유튜브 영상의 스크립트입니다. 영상은 아래 링크를 참조해주세요.
안녕하세요. 내가 사랑한 미술관입니다.
여러분은 픽사 애니메이션 좋아하시나요? 저는 픽사와 동시대를 살고 있는 게 큰 행운처럼 느껴질 정도로 픽사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데요.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하나 꼽기 어려울 정도로 여러 작품을 좋아하는데 그 중 하나가 <인사이드 아웃>입니다.
<인사이드 아웃>에는 11살 소녀 라일리와 그녀의 머릿속에서 기쁨, 슬픔, 혐오, 공포, 분노 등의 다섯 가지 감정을 제어하는 캐릭터들이 등장합니다. 기쁨이, 슬픔이, 까칠이, 소심이 그리고 버럭이가 그들인데요. 영화는 이중에서 기쁨이와 슬픔이가 위기에 처하는 감정 컨트롤 타워를 지키기 위해 겪는 모험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들이 살고 있는 컨트롤 타워에는 라일리의 인격을 형성하는 핵심 기억이 구슬 모양으로 저장되어 있는데 각각의 기억 속의 주된 감정에 따라 구슬의 색이 정해집니다. 행복하고 즐거운 기억은 기쁨이의 색인 노란색으로, 슬프고 우울한 기억은 슬픔이의 색인 파란색으로 저장되는 식인데요. 라일리가 이사와 전학으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가던 어느 날, 행복한 핵심 기억을 담고 있는 노란 구슬들을 슬픔이가 자기도 모르게 만지면서 구슬이 노란색에서 파란색으로 바뀌게 되고 기쁨이가 이를 막기 위해 사투를 벌이면서 이들의 모험이 시작됩니다.
모험이 끝날 때쯤 우리는 인생이 행복이나 기쁨만으로 채워질 수 없고 슬픔을 직면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한단계 성장하며 또다른 행복을 찾아 나설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언제나 즐겁고 행복한 인생에 높은 가치를 두고 인생의 어둡고 우울한 면은 터부시하는 세상에서 영화는 쓸쓸하고 외롭고 슬픈 감정이 우리의 내면이 성숙해지는 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보여주며 슬픔이라는 감정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합니다.
우리처럼 슬픔이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지 못해 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필사적으로 노란 구슬을 사수하려 했던 기쁨이의 모습을 보다가 문득 어렸을 때의 기억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초등학생 때 저는 미술을 배우러 화실에 다녔었는데요. 그 전에 다녔던 미술 학원 선생님들과 달리 이곳의 원장 선생님은 흰색과 검정색 물감을 못 쓰게 했답니다. 제가 다른 물감에 흰색 물감을 섞어 밝은 색을 만들려고 하면 물을 많이 섞어서 색을 옅게 하라고 하셨고 검정색을 쓰려 하면 어두운 물감을 여러 가지 섞어서 검정에 가까운 색을 만들면 된다고 하셨는데요. 그 이유는 흰색이나 검정색을 쓰면 그림이 탁해져서 였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우리들 손에서 나오는 그림이 언제나 맑고 순수한 색감을 가지길 원하셨던 것 같은데 그 모습이 <인사이드 아웃>에서 라일리에게 행복하고 즐거운 기억만 주고 싶어하는 기쁨이의 모습과 겹쳐 보이더라구요.
<인사이드 아웃>이 우리가 터부시했던 슬픔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줘서 어둡고 아픈 기억들을 위로해줬다면 김수민 작가는 어렸을 적 저의 미술 선생님이 원하셨던 그림과는 반대되는, 불투명하고 탁한 색감을 가진 그림을 통해 제게 비슷한 위안을 주었습니다. 저는 2019년 연말에 갤러리 레스빠스71에서 열린 전시 <수면 위로 떨어지는 눈꽃>에서 김수민 작가의 작품을 처음 보게 되었는데요. 전시된 그림들은 흰색과 검정색을 조금씩 섞은 것처럼 전반적으로 색감이 탁한 편이었는데 채도가 높아 맑고 투명한 색감을 가진 그림보다 더 아름답고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이유는 그 색감들이 실제 우리 인생의 빛깔과 더 가깝게 느껴져서였던 것 같습니다.
흰색과 검정색 물감을 쓰지 않고 그리는 그림처럼 또는 기쁨이가 영화 초반에 바랬던 것처럼 인생이 언제나 맑고 투명한 색감을 띄며 행복과 기쁨만으로 채워질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는 인생이라는 그림에는 슬픔이의 파란색처럼 흰색과 검정색이 조금씩 섞여 들어갈 수밖에 없고 그림은 점점 탁한 색감을 띄게 되죠. 김수민 작가의 그림은 제게 그림이든 우리 인생이든 꼭 항상 맑고 투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불순물처럼 여겨지거나 우리 사회에서 터부시되는 것들을 다시 돌아보게 하고 더 나아가 그것들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김수민 작가의 그림과 영화 <인사이드 아웃>은 접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흰색과 검정색을 따뜻하게 녹여낸 그림과 슬픔을 직면하고 받아들이는 영화 속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림이든 인생이든 조금은 탁하고 가끔은 불행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저도 여러분도 완벽하게 행복하지 않아도 괜찮은 날들을 보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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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