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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사랑한미술관 May 18. 2022

악기 연주하듯 감상하는 그림

제이슨 마틴 <수렴> & 메리 코스 <Seen and Unseen>


* 유튜브 영상의 스크립트입니다. 영상은 아래 링크를 참조해주세요.


악기 연주하듯 감상하는 그림 | 제이슨 마틴 | 수렴 | 메리 코스 | Seen and Unseen |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 | 페이스 갤러리

https://youtu.be/NrpDc2MgPSc



안녕하세요. 내가 사랑한 미술관입니다.


몇 년 전에 비해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과 한남동 일대에 크고 작은 갤러리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그중 하나가 2021년 가을 문을 연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인데요. 계속 가봐야겠다고 생각만 하다가 제이슨 마틴의 개인전 <수렴>이 열리고 있던 지난 4월에서야 방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진으로 봤을 때 제이슨 마틴의 작업은 제 취향이 아니어서 큰 기대 없이 전시를 보러 갔었는데요. 전시장에 들어서서 처음 작품을 마주할 때만 해도 사진으로 봤을 때처럼 큰 감흥이 없었습니다. 물감을 두껍게 쌓아 올려 만든 질감에 파스텔 톤의 단조로운 색감을 가진, 특별할 것 없는 회화였기 때문인데요. 그런데 고개를 돌려 옆에 걸려있는 작업들을 보니 뭔가 달랐습니다. 정면에서 보는 그림은 화면 전체가 거의 같은 색으로 보여서 단조로운 느낌을 주는 반면 측면에서 보는 그림은 부분적으로 조금씩 다른 색을 띠고 물결 치듯 칠해진 물감의 입체감도 더 뚜렷하게 보여서 완전히 다른 작품처럼 느껴졌습니다.


전부 같은 색으로 칠한 것처럼 보이던 그림이 보는 각도에 따라 오묘하게 다른 색을 띠는 것은 제이슨 마틴이 사용하는 특별한 재료 때문입니다. 마틴은 회화에 많이 사용되는 캔버스나 리넨 대신 알루미늄 위에 그림을 그립니다. 알루미늄이 가진 금속성이 빛을 포착하고 반사하면서 관람객은 보는 각도에 따라 조금씩 다른 색깔과 입체감을 가진 작품을 보게 되는 것이죠.


제이슨 마틴이 화폭의 재료를 바꿔서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느낌을 주는 그림을 그린다면 화폭 위에 새로운 재료를 더해 비슷한 현상을 만들어내는 작가도 있습니다. 제이슨 마틴의 전시와 비슷한 시기에 이태원의 페이스 갤러리에서 열린 메리 코스의 개인전 <Seen and Unseen>에서 소개된 작업들인데요. 처음에 이태원과 한남동 일대에 갤러리들이 많이 생겼다고 말씀드렸는데 페이스 갤러리는 새로 문을 연 곳은 아니지만 2021년 봄 원래 위치의 맞은편에 있는 좀 더 넓은 공간으로 이전하면서 전시 규모가 더 커졌습니다.  


메리 코스의 개인전은 두 개 층에서 열렸는데 2층에 전시되어있는 작업들은 화면을 직선으로 단순하게 나누고 각 구역을 흰색, 검정, 노랑, 빨강, 파랑 등의 기본적인 색으로 칠한 것들이었습니다. 이 작품들을 볼 때는 물감 위에 반짝이는 모래알 같은 게 잔뜩 붙어있단 사실만 알아챘을 뿐 특별한 인상은 받지 못했습니다. 3층에 걸려있는 작업들을 보고서야 메리 코스 작품의 진가를 알 수 있었습니다.


3층에 전시된 그림들은 전부 흰색으로만 칠해져 있었는데 2층의 그림과 달리 노랑이나 빨강 같은 유색이 섞여 있지 않다보니 작품이 빛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더 잘 볼 수 있었습니다. 직선으로 분할된 여러 개의 면이 서로 다른 양의 빛을 반사하면서 보는 각도에 따라 화폭을 가로지르는 패턴이 드러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합니다. 이는 메리 코스가 교통 표지판이나 차선 도색에 사용하는 재료인 유리 마이크로스피어를 자신의 작업에 활용했기 때문인데요. 코스는 이 안료를 아크릴 물감과 섞어 바르거나 물감 위에 얇게 흩뿌립니다. 빛을 포착하고 반사하는 유리 마이크로스피어의 특성 덕분에 메리 코스의 그림은 빛을 담은 것처럼 눈부시게 빛납니다. 작품을 직접 보니 2021년 메리 코스를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한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의 전시 제목이 왜 <빛을 담은 회화>였는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제이슨 마틴과 메리 코스의 작품은 빛에 민감한 재료인 알루미늄과 유리 마이크로스피어를 사용함으로써 어디서 빛을 비추고 어느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른 그림이 됩니다.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동시에 같은 작품을 보아도 그들은 색과 입체감, 광채가 조금씩 다른 작품을 보게 됩니다. 이렇게 같은 무언가를 앞에 두고도 사람마다 다른 것을 보는 것은 이들의 그림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데요. 사실 세상 모든 일이 이렇게 각자의 위치, 관점에 따라 사람마다 다르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이슨 마틴과 메리 코스의 작품은 우리가 무언가를 인식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보게 합니다.  


이들이 작품을 통해 던지는 철학적인 질문도 좋았지만 저는 전시장에서 작품 주위를 왔다 갔다 하며 제가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작품이 어떻게 다르게 보이는지 보는 것이 정말 좋았습니다. 연주자가 악기를 연주하듯이 제 움직임에 따라 조금씩 다른 색을 띠고 다르게 빛나는 그림들을 보니 작품과 공명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황홀하기까지 했는데요.


제이슨 마틴과 메리 코스는 작품을 감상하는 데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빛을 끌어들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빛을 활용하기 위해 사용한 재료와 그것을 사용한 방식은 전혀 다릅니다. 이렇게 여러 작가나 작품들이 가지는 공통점이나 차이점을 발견하다보면 한 가지만 놓고 볼 때보다 좀 더 풍성하고 입체적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데요. 여러분도 여러 작품들을 서로 비교해가며 전시를 보신다면 전시나 작품이 좀더 흥미롭게 느껴지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영상이 마음에 드셨다면 좋아요와 구독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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