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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사랑한미술관 Jun 22. 2022

반짝 반짝 빛나는

이지연 작가 <얼룩 무지개 숲> @더레퍼런스 & 나희덕 시인 <밤길>


* 유튜브 영상의 스크립트입니다. 영상은 아래 링크를 참조해주세요.


반짝 반짝 빛나는 | 이지연 작가 | 얼룩 무지개  | 더레퍼런스 | 나희덕 시인 | 밤길 |

https://youtu.be/eCLeAzKo6KI




안녕하세요. 내가 사랑한 미술관입니다.


몇 년 전 여름, 퇴근길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사람들이 한쪽 창문에 붙어서 열심히 밖을 내다보며 사진 찍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무슨 일 때문인가 하고 보니 창밖으로 엄청 크고 선명한 무지개가 보이더라구요. 허리를 숙이고 고개를 돌려가며 열심히 무지개 사진을 찍던 어른들의 모습이 귀여워서 오래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습니다.


비 온 뒤 뜨는 무지개가 갖는 희망적인 이미지에서 출발해 빛이 인간에게 주는 긍정적인 의미와 아름다움을 작품으로 풀어낸 예술가가 있습니다. 2021년 12월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더레퍼런스에서 개인전 <얼룩 무지개 숲>을 가진 이지연 작가인데요. 전시장에는 동그란 모양의 얇고 투명한 필름 수천 장으로 만든 작품이 두 점 있었습니다. 하나는 막대 끝에 필름을 끼워 거대한 민들레 홀씨 같은 구 모양으로 만든 작품이고 다른 하나는 기다란 금속 막대의 양쪽에 필름을 연달아 붙이고 수천 장의 필름을 전시장 가운데 수직으로 빽빽하게 설치해 전체적으로는 육면체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구 모양의 작품은 작품 전체가, 육면체 형태의 작품은 각각의 금속 막대가 천천히 회전하면서 각각의 필름은 빛을 비춘 기름막이나 비눗방울처럼 무지갯빛을 띄는데 수천 장의 필름이 만들어내는 찬란한 빛이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필름을 단 막대들은 얇고 가벼워서 작은 바람에도 쉽게 돌아가고 그 움직임에 따라 필름은 계속해서 다른 빛깔을 띕니다. 필름을 한 장 한 장 들여다 보면 필름 전체가 아니라 가운데 얼룩 무늬에서만 무지갯빛이 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반도체에 새겨져 있는 나노 단위의 패턴을 복제해내는 기술을 활용해 제작한 구조색 필름 덕분입니다. 구조색은 화학적 색소가 아닌 미세구조가 만들어내는 물리적인 현상으로 카멜레온의 화려한 피부색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빛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필름의 미세구조 덕분에 <얼룩 무지개 숲>은 시시각각 다른 색깔을 띄며 황홀하게 반짝입니다. 천장에서 수직으로 내려오는 형태로 설치된 작품의 경우엔 작품 주위를 더 가까이서 거닐며 다양한 각도에서 감상할 수 있어서 필름 위에서 끊임없이 변하는 빛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게 되더라구요.


무지개가 뜨면 사람들이 하던 일을 잠깐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과 제가 이지연 작가의 작품 <얼룩 무지개 숲>이 만드는 다양한 무지갯빛을 오랫동안 바라본 것은 빛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과 빛을 생각하면 떠올리는 밝고 희망적인 이미지를 선망하기 때문인 것 같은데요. 우리가 빛에 끌리는 이유를 이와 반대되는 관점에서 본 시가 있습니다. 바로 나희덕 시인의 시 <밤길>인데요. 먼저 시 일부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밤길

- 나희덕

ㅡ엄마! 저기 보석이 있어요.

ㅡ빛난다고 다 보석은 아니란다.

   저건 깨진 유리 조각일 뿐이야.


폐차장 앞은

별을 쏟아놓은 것처럼 환하다.

빛에 이끌려 무작정 달려가려는 아이와

그 손을 잡아당기는 나의 손,

손이 자란다는 것은 무엇일까.

내 손은 언제부터 알게 된 것일까,

유리는 유리일 뿐이라는 쓸쓸함과

한번 깨어지고 나면 더이상 유리일 수도 없다는

두려움을. 예리한 슬픔의 파편을.

(중략)

생각해 보면

모든게 보석처럼 빛나던

한 세계의 광휘, 내게도 있었다.

그러니 누가 붙잡을 수 있으랴.

상처를 모르는 손이 그리로 달려가는 것을.

제 슬픔의 빛을 빌려

어둠을 살아가는 저 유리 조각들을

보석이 아니라고 그 누가 말할 수 있으랴.

어떤 손이 어떤 손에게 속삭일 수 있으랴.


나희덕 시인의 시 <밤길>은 화자의 아이가 폐차장 앞의 깨진 유리 조각들이 반짝이는 것을 보고 보석이라 부른 것에서 시작합니다. 어린 아이는 유리 조각이 위험하다는 것을 모른 채 반짝임에만 이끌려 유리 조각 쪽으로 다가가려 하고 화자는 그런 아이가 다칠세라 아이의 손을 잡아 당깁니다. 그러면서 '유리는 유리일 뿐'이고 '한번 깨어지고 나면 더 이상 유리일 수도 없다는' 사실을 본인은 언제부터 알게 된 것일까 생각하다가 곧 자신에게도 자신의 아이처럼 '모든게 보석처럼 빛나던/ 한 세계의 광휘'가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그리고는 마지막에 '제 슬픔의 빛을 빌려/ 어둠을 살아가는 저 유리 조각들을/ 보석이 아니라고 그 누가 말할 수 있'겠냐며 유리 조각들도 보석일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유리가 깨지고 산산조각이 나는 것은 날카롭고 위험한, 부정적인 감정이 들게 합니다. 유리뿐만 아니라 무엇이든 깨지고 부서지고 나면 이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기에 아쉬움, 후회, 슬픔 같은 감정들을 동반하죠. 그런데 시 <밤길>에서 시인은 유리 조각이 보석처럼 반짝거리는 것은 유리가 깨져 산산조각 났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봅니다.


이지연 작가와 나희덕 시인은 사람들이 빛나는 무언가에 끌리는 현상을 소재로 하지만 사람들이 빛에 반응하는 이유는 서로 다르게 보았습니다. 이지연 작가는 빛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과 빛이 가진 긍정적인 이미지가 사람들의 마음을 끈다고 보았고 이를 <얼룩 무지개 숲>을 통해 극대화시켰습니다. 반면 나희덕 시인은 폐차장 앞 유리 조각을 보는 아이와 어른의 상반된 시선을 다루며 무언가가 깨지고 부서지면서 남긴 흔적이나 상처가 빛을 받아 반짝이면서 사람들의 손을 끌어 당긴다고 보았습니다.


저는 <얼룩 무지개 숲>이 만들어내는 찬란한 무지갯빛도 좋았지만 빛 하면 항상 긍정적인 이미지만 떠올렸던 터라 나희덕 시인이 반짝임 뒤에 감춰져 있는 상처와 아픔에 주목한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지연 작가의 작품 제목 <얼룩 무지개 숲>에서 '얼룩'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얼룩은 보통 없애고 지워야 하는 부정적인 것으로 치부되는데 바로 이 얼룩 무늬에서 무지갯빛이 만들어집니다. 이렇게 보니 이지연 작가의 작품도 나희덕 시인의 시처럼 부정적인 것에서 연유한 광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얼룩 무지개 숲>이 수천 장의 얼룩으로 인해 빛나고 <밤길> 속 유리가 산산조각 남으로써 반짝이는 모습을 떠올려 보면 보석처럼 빛나는 사람들의 인생 뒤에도 얼마나 많은 얼룩과 파편들이 있을까 생각하게 되는데요. 이들은 무지개와 유리 조각에 관한 이야기에서 출발했지만 결국엔 우리 자신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들이었습니다.


영상이 마음에 드셨다면 좋아요와 구독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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