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 마그리트 <연인 II> 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 유튜브 영상의 스크립트입니다. 영상은 아래 링크를 참조해주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W1pxErO7Kw0
안녕하세요. 내가 사랑한 미술관입니다.
알랭 드 보통의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남자 주인공이 한 여자와 연인이 되었다가 이별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소설에는 연인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주인공의 심리가 자세히 묘사되어 있는데요, 어느 날 주인공은 연인과의 대화에서 발견될 수 있는 오류에 대해 생각합니다.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한다' 말할 때, 그 '사랑'이란 서로 다른 것을 의미할 수도 있고, 같은 책을 읽어도 각기 다른 부분에서 감동 받는다면 결국은 다른 책을 읽은 것 아닌가 라는 생각도 하죠. 주인공은 그런 생각을 하며 '어느 것이 가닿을지도 모르면서 허공에 수백 개의 포자를 방출하는 민들레가 된 느낌'을 받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처럼 가장 가까운 사이인 연인과의 관계에서 소통의 오류나 단절을 발견할 때, 우리는 다른 상대보다 더 큰 실망감과 외로움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연인 II>에는 입맞추는 연인의 모습이 담겨 있는데 그 모습이 보통의 연인들과는 조금 다릅니다. 두 사람 모두 머리와 얼굴이 천에 가려진 채로 입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 모습은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연인 사이에서 발견되는 단절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이 그들을 덮고 있는 천을 발견하고 벗어 던지지 않는다면 이들은 서로의 진짜 모습은 보지 못한 채 서로의 입술이 아닌 그들을 가리고 있는 천에다 영영 입을 맞추게 될지도 모릅니다.
지난 6월 대안공간루프에서 열린 전시 <멜팅팟 속으로>에서 이 그림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을 볼 수 있었는데요. 이집트 출신 예술가 무하마드 테이무어의 영상 작품 <집>에는 마그리트 그림 속 연인처럼 머리에 천을 뒤집어 쓰고 있는 남녀가 나옵니다. 두 사람은 약혼한 사이인데 이들의 대화를 잘 들어보면 서로의 말에 답하는 게 아니라 각자 엉뚱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대화 중 일부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누가 하늘의 구름을 지웠을까?
나는 기꺼이 인샬라
5분 전이었어
너는 일본인이야?
그때쯤 10층에서 멀어지고 있었으므로 모르겠어
이렇게 두 사람은 서로의 진짜 얼굴을 보지 못하고 서로의 목소리에도 귀기울이지 않은 채 각자 본인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있습니다. 이 모습은 관람객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 자신을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연인의 진짜 얼굴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그의 목소리에 얼마나 귀 기울였는지 질문을 던지죠.
이와 관련해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글 중 하나인, 김연수 작가의 글을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소설 「세계의 끝 여자친구」 작가의 말에서 발췌한 내용인데요.
우린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존재한다. 따라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이 행위 자체가 우리의 인생을 살아볼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만든다.
사랑하는 사이일지라도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마그리트의 그림처럼 혹은 테이무어의 영상처럼 우리는 천 아래에 가려진 서로의 진짜 얼굴을 영영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의 주인공도 연인에게 그녀가 말하는 '사랑'이란 과연 어떤 의미인지, 그녀는 같이 읽던 책의 어느 부분에서 왜 감동받았는지 물었다면 소설의 결말은 달라졌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누군가를 사랑하는 만큼 노력하는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영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