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기업에 대한 오래된 선입견 #1
2016년 8월정도로 기억이 납니다. 글을 적는 시점이 2024년이니 벌써 8년전 이야기지만 8년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내용이기도 해서 이번에는 조금은 예민할 수도 있고 많은 사람들의 반박을 들을만한 이야기를 꺼내볼까 합니다.
아시는 분들도 있지만 저는 삼성SDS라는 국내 1위 IT서비스기업에서 9년정도 일을 했습니다. (2008 ~ 2017) 기본적으로 IT서비스기업이라고 하면 많은 분들은 SI 회사 정도로 기억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대부분 그렇기도 합니다. 채용 플랫폼에서 IT서비스기업이라고 적혀있으면 SI/SM 을 하는 회사라고 이해해도 아주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SW분야에서 SI 라고 하면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만큼 일이 험하고(=힘들고), 또 근무 분위기가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IT회사와는 사뭇 다른경우들이 많기 때문일 겁니다.
아무튼 P군을 만난것은 2016년 8월 무더운 여름으로 기억합니다. 저 역시 S기업 증권사 내부시스템 구축 프로젝트를 한창 진행하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P군이 제가 일하는 곳 근처에 와서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는 카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던것으로 기억합니다.
P군은 웹/앱 개발자를 양성하는 교육과정을 6개월간 이수하고 취업의 전선으로 나와있는 상태였습니다. 여러곳의 회사에 지원을 하면서 지내고 있다는 P군은 2년간 다른 업종에서 일한 사회적 경험과 더불어 6개월의 교육과정을 통해 얻은 기술을 가지고 당당한 SW개발자로 일해보고 싶은 꿈이 있는 친구였습니다.
그런데 SW를 개발하는 여러 회사에 지원할 때 마다 번번히 고배를 마시다 보니 점점 자신감도 떨어지고 지원하는 회사에 대한 눈높이도 점점 낮아지게 되다 보니 SW개발자 지옥이라는 SI기업에 가야할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처음 만나는 저에게 자신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꺼내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P군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살펴보고 물었습니다.
"왜 SI기업에 가야 할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나요?"
P군이 답했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SI기업은 IT업계에서 평가가 좋지 않다고 하더라구요. 경력을 뻥튀기 해서 당장 인력이 급한 프로젝트에 던져놓고 고생만 시키고 배우는것은 없다고 하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저는 뭔가 뜨악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SI업계에는 아주 오래전 부터 들려오는 소문이 있습니다. SI를 하는 회사는 '인력 장사 업체' 라고 표현 하고 SI를 하는 사람은 '인력 시장의 인력' 이라고 말이죠.
사실 이 내용은 심각하게 비하되고 자조섞인 표현이지만 저는 어느정도 이해가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SI라는 산업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SI라는 사업은 주로 특정 기업/기관/단체 에서 필요한 SW를 제작하여 납품하는 형태의 사업입니다. SI사업을 통해 만들어지는SW의 특징은 발주를 한 기업/기관/단체가 요구하는 사항을 만족하는 대단히 고객맞춤형 제품 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SI사업은 발주한 곳에서 가지고 있는 문제를 SW로 해결하기 위해 SI를 하는 회사를 상대로 발주가 됩니다.
예를 들어 A라는 기업은 직원이 30명 남짓한 커머스 기업이라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30명 정도의 인원의 인사정보(직원정보, 연봉, 성과, 근태 등)을 관리하는 것은 사실 혼자서는 조금 어렵지만 2-3명의 전담 직원이 있다면 사람이 관리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A기업은 지금까지 인사담당직원 몇명이 엑셀파일로 직원들의 인사정보를 관리했습니다.
그런데 사업이 너무 잘되다 보니까 사람이 더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신규 채용 인원을 늘렸습니다. 신규 인력으로 20명이 입사했습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듯이 2-3명의 인사담당 직원들이 엑셀파일로 인사정보를 관리하게 됩니다. 하지만 점점 제대로 관리하는데 한계를 느끼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업은 어떻게 대응할까요?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결국 사람이 충원되어 일을 분담하게 해야 할것입니다. 따라서 A 기업은 인사팀 직원을 더 채용하게 됩니다. 이제 5명의 인사담당 직원이 50명을 관리하게 됩니다. 그런데 기업의 사업이 더 커지고 더 많은 투자가 일어나면서 직원들이 70명을 넘어서게 됩니다. 심지어 이쯤 되면 신규 채용을 급하게 많이 하다보니 거의 없던 퇴사 직원도 많고 이로 인해 새로 입사하는 사람도 많아집니다. 당연히 인력관리 입장에서는 관리해야 하는 부분이 점점 늘어나게 됩니다. 결국 일이 힘들어지는 인사담당 직원들도 퇴사와 입사를 반복하게 됩니다. 그런 과정이 반복될 수록 업무의 인수인계도 안되고 인사정보를 엑셀로 관리하는 부분에서 점점 문제가 생겨납니다. (엑셀이 최신화가 안된다거나 잘못되어 있다거나 등등)
이렇게 기업을 운영하다보면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기업은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SW를 도입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하게 됩니다. 이럴때 A기업 맞춤형 인력관리 SW를 제작해줄 회사가 필요해지게 되고 이런 SW를 제작하는 회사가 SI기업이 됩니다.
이때 SI기업 B사가 계약을 통해 A기업의 맞춤형 인력관리SW를 만들어주게 됩니다.
중요한 악순환은 사실 여기서부터 시작합니다. A기업은 사실 SW를 전문으로 하는 기업이 아니다보니 자신들이 원하는 SW를 만드는데 들어가는 비용을 정확하게 계산하기 힘들고, B사에서 제시하는 필요 금액을 어떻게든 줄이고 싶어하게 될겁니다. 반면 B사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금액을 받고 싶어 할 것입니다. (이 상황은 우리가 시장에서 물건을 흥정하는것과 조금은 비슷합니다. 서비스를 더 받거나 가격을 더 깎거나)
그렇게 서로 실랑이를 벌이다가 B기업이 당초 SW를 개발하는데 필요하다고 제시한 금액보다는 적은 금액으로 최종 계약을 맺게 됩니다. B사 입장에서는 당연히 원래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했던 비용보다 적은 수입으로 SW를 만들어야 하게 되었고, 결국 SW를 만드는데 들어가는 비용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SW개발자의 인건비를 절약할 방법을 모색하게 됩니다. 그때 나타나는것이 바로 '하청' 구조입니다. B사는 원칙대로라면 자신이 만들어야 하는 SW개발 내용 중 일부를 조금 더 저렴하게 개발해줄 수 있는 다른 회사(C사)에게 넘기는 것입니다.
그럼 C사는 동일한 SW를 B사보다 저렴하게 개발해야 하기 때문에 더 적은 비용으로 SW를 개발할 수 있는 인력을 찾게 됩니다.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C사 역시 가장 쉽게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이 만들어야 하는 SW의 일부를 더 저렴하게 개발해줄 수 있는 회사(D사)에게 넘기는 것입니다. 이런식으로 하청에 재하청에 재하청 등등 끝도 없는 하청의 구조가 생겨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이상한 구조는 대부분의 SI사업에 등장하게 됩니다 ㅠㅠ
결과적으로 A기업의 인력관리SW는 B사 직원들이 만들어야 하는 SW임에도 돈의 논리에 의해 B사에서 높은 임금을 받는 SW개발자 대신에 C,D,E 사의 비교적 낮은 임금을 받는 개발자들로 대체가 되어 개발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하청, 재하청을 넘어서는 하청으로 내려가면 만나는 SW기업은 SW를 만드는 기업이라기 보다는 SW개발자를 인력 풀로 가지고 있는 회사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회사는 다른 회사에서 저렴한 임금으로 개발자가 필요하다고 하면 자신이 갖고 있는 SW개발자 인력 풀에서 가장 잘 부합하는 인력을 찾아 요청한 회사로 파견 보내서 SW개발을 하도록 합니다.
아무래도 임금이 낮은 SW개발자라는 것은 숙련도가 낮은 SW개발자를 의미하는 것이고, 그렇게 숙련되지 못한 개발자들 여렷이 만드는 SW의 품질은 어떻게 될까요? 깊게 생각해보지 않아도 좋은 품질의 SW라고 보기엔 어려울 것입니다.
이런 과정속에서 낮은 임금으로 SW개발자를 인력풀로 갖고 있는 회사에 소속된 SW개발자는 누구일까요?
네, 아마 이글을 보시는 분들이 예상하셨겠지만 앞에서 P군이 말한 그런 인력풀을 관리하는 회사에 소속된 SW개발자 입니다. 대부분 실무 경력이 거의 없거나, 혹은 적은 경력만 갖고 있는 경우가 많고 대부분 짧은 기간 동안 학원을 통해 SW개발의 기초만 배워 취업의 전선에 뛰어든 사람들이 대부분 입니다. (국가에서 제공하는 SW개발자 양성 단기 교육과정을 수료하면 이런 회사로 취업을 중개하기도 합니다.)
이런 SI업계의 실상을 P군은 자신이 받은 교육과정 중에서나 혹은 그 이후에 주변 사람들을 통해 듣게 되었고 결국 저에게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았던 것입니다.
저는 가슴이 막막했습니다. 현실을 모르는 바가 아니기 때문에 마냥 괜찮다는 장미빛 이야기만 할수는 없었으니까요. 그렇다고 인력풀만 관리하는 회사로 입사하라고도 말할 수 없었습니다.
P군의 고민에 저 역시 한참을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P군에게 현실적인 이야기를 포함해서 제 생각을 이야기 했습니다.
우선 SI기업이 모두 안좋은 회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 드렸습니다. 그리고 SW개발자가 되기에 6개월 과정의 시간은 많이 부족다는 것도 알려 드렸습니다. 6개월이라는 시간동안의 공부로 (괜찮은)SW회사에서 신입SW개발자로 채용되기에 노력 시간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이해시켜야 했습니다.
그리고는 말했습니다.
"당장의 취업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선택의 여지가 얼마 없지만 좋은 SW개발자가 되고 싶다면 부족한 자신의 역량을 높이는데 집중할 필요가 있어요. 좋은 회사에 SW개발자로 입사하는 친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정도로 말이죠. 그정도의 노력이 없으면서 마냥 좋은 회사로 입사하는것은 쉬운일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SW분야만큼은 노력에 대한 결과가 반드시 뒤따라주는 분야이기 때문에 분명 노력하시 시간은 배신하지 않을거에요"
라고 말이죠.
P군은 의미를 알듯 말듯한 미소를 보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고 무더운 거리로 나갔습니다. 아마 열심히 노력헀다면 지금쯤이면 원하는 회사에서 원하는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