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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름 Mar 06. 2017

해 질 녘 몽마르뜨로부터

@Paris, France


반가운 이름, 폴.

나는 주말마다 새로운 카페를 찾아다닌다. 새로운 공간에서 궁금한 커피를 맛보는 것이 가져다주는 즐거움이 상당하다. 밥집은 맛있으면 질릴 만큼 다시 찾기도 하는데 이상하게 카페는 그렇게 되지가 않는다. 좋았던 그 느낌을 또 받기를 기대하기보다, 새롭게 좋은 느낌을 찾는 편이랄까. 파리에서 눈에 띄면 들렸던 폴. 공항에도 있고 시내 곳곳에 있어서 만만한 느낌인데, 에끌레어가 맛있다. 가볍게 한 입 하고 싶어서 찾게 되던 곳.

 

한산하고 별거 없는데,
그래서 편하고 좋다.
다른 것을 맛볼까-하다가도 결국 에끌레어.
커피 한 잔과 에끌레어 하나면 든든하다.

별생각 없이 처음 골랐던 초코 에끌레어는 굉장히 촉촉하고 맛있었고, 그 뒤로 고정 메뉴가 되어버렸다. 커피는 서울에서 마시는 아메리카노보다 훨씬 진하지만 막 쓰지는 않다. 산도가 강한 커피를 싫어하는데 내 입맛에 잘 맞는 편.

 

 

 

@Moulin Rouge, Paris
@Le mur des je t’aime, Paris

관광객 모드였다. 물랭루주 앞을 지나가고 사랑의 벽 앞을 지나가면서 기념사진 같은 것은 남기지 않았지만, 나는 관광객 루트를 따라 걷고 있었다. 아마 몽마르뜨 언덕은 나 같은 사람들로 더 넘쳐나겠지 하며 계속 걷기만 했다.

  

사실 이 날의 오후 코스는 빡빡했다. 전시를 보고 나면 두 발바닥은 얼얼하고 양 손은 각종 팸플릿으로 무거웠다. 집에 들러 짐을 내려놓고 바로 나왔지만 이미 오후 늦은 시간이었고, 몽마르뜨 언덕을 올랐다가 바토무슈를 타고 반짝이는 에펠탑을 보는 스케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루브르 박물관도 못 가봤고, 루이뷔통 재단도 못 가봤고, 퐁피두 센터도 겉에서만 봤기 때문에- 결국 또 가야 한다는 결론이.


오르막길이 꽤나 길었다.
몽마르뜨 언덕을 향해 느긋하게 걷다보니,
어느 순간 붐비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몽마르뜨 언덕에 다가갈수록 붐비기 시작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케이블카 근처에 가기 전까지 동양인은 별로 없었다. 차가운 해 질 녘 공기에 전체적으로 눅눅한 회색빛을 도는 길목 분위기가 꽤 멋졌다.

 

자꾸만 보게되는 사진.

스펀지밥과 미스터 포테이토 코스튬이 귀여워서 찍었는데, 나와 같은 곳을 보고 배시시 웃는 노부부가 더 귀여워서 자꾸만 보게 되는 사진이다. 파리는 결혼하지 않고 백년해로 하는 동거 커플도 많다고 하니 부부가 아니라 애인 사이일지도 모르겠다.

 

선도 색도 참 깔끔하다.

마레지구와 살짝 닮았지만 더 무심한 분위기다. 그리고 덜 북적인다. 유럽은 정말 더러워-라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내가 다닌 곳곳은 더럽기보다 깔끔했다. 물론 지하철은 예외다. 듣던 대로 지저분하고 눅눅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예전에 뉴욕 지하철역을 내려가면서 느꼈던 불쾌감에 비하면 양호한 편이었다. 생각해보면 서울 대중교통은 꽤나 훌륭하다.

 

다양한 패브릭을 파는 상점에 들러
만지작 거리다 나왔다.

작은 가게 몇 곳을 들어가 보았는데, 귀여운 패브릭 제품을 파는 곳에서 단추를 가져가라고 두었길래 몇 개 챙겨 나왔다. 화장대에 잘 두었는데 언제 쓸 일이 있을까 몰라.

 

너무 귀여운 카드 두 장을 구입, 절묘하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카드를 구입했다. 전시를 보거나 어디 특별한 곳에 가면 꼭 엽서를 구입하는데, 파리에서는 이 연필을 깎고 나온 나무 조각을 붙여 만든 위트 있는 카드로 대신했다. 찌글찌글한 paris라는 글자가 정말 귀엽다.




@La Cure Gourmande, Paris
패키지가 너무 예뻤지만 유혹을 이겨냈다.

그림 같은 사탕가게 라 꾸르 구르몽드는 서울에서도 맛볼 수 있다. 패키지도 그대로이지만 단독 샵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 분위기는 없기에 아쉽다. 제일 눈에 띄는 틴케이스를 몇 번을 들었다 놨다 했지만 결국 빈 손으로 나왔다. 밤에 바토무슈를 탈 때 두 손에 아무것도 들고 싶지 않았다.

 

길바닥이 눅눅해지는 해질녘,
몽마르뜨 언덕에 올랐다.

사진 속에서 보았던 그 스카이라인. 쌀쌀한 해 질 녘이 참 잘 어울렸다. 햇살 쨍한 대낮이었어도 분명 멋졌겠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도 조용한 느낌이었다. 잠시 성당에도 들려보았고 일종의 명인인 축구공 가지고 노는 아저씨도 봤다. 제일 위에서 보니 사람들의 뒷모습이 가득하다. 다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나는 떠나기도 전에 이 도시에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바토무슈 타러 가는 길.

흐린 하늘에도 불구하고 청록빛이 이쁜 센 강. 멀리 에펠탑이 보이고 바토무슈 선착장도 머지않았다.

 

하얀 배와
파란 배를 지나
하나 둘 노란 조명이 켜지는 오래된 건물을 지나쳐,
선착장으로 들어섰다.

선실 내부는 꽤나 시끄러웠다.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가득했고 한국인 몇 명이 있었다. 한강 유람선이 그러하듯이 바토무슈도 대부분 관광객일 테니 당연한 일이지만. 에펠탑 조명이 켜지는 순간, 진짜 귀가 떨어져 나가는 줄 알았다. 지나고 나니 다 추억.

 

다리 밑을 지날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인상깊었던 광고물.
배 뒷편에 가보니 이런 뷰가.

찬 바람을 쐬며 두리번거리다가 배 뒤편에 가보니 흩어지는 물거품과 다리와 가로등 불빛들이 아름다웠다. 잊을 수 없는 순간.

 

드디어 한밤중의 에펠탑, 사진이 다 담지 못한다.

전날 낮에 에펠탑을 가까이에서 보았는데 밤에 보니 또 색달랐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가까워지고 또 멀어졌던 에펠탑. 정해진 시간에 반짝거리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환호했다. 그 순간을 남기고 싶어서 동영상을 촬영하고 있었다.

 

반짝 반짝.

정말 실물의 1/100도 담지 못하는 사진과 동영상. 춥지만 타길 잘했다는 생각이 100번 들었던 바토무슈에서 내리자 추위가 밀려왔다. 오들오들 떨며 택시를 잡아타 집 쪽으로 향했고, 이대로 잠들 수 없다며 간단히 무언가를 먹기로.


이 사진은 택시를 타기 전이었나.
이 곳이 매우 익숙해보이는 사람들,

이 곳은 꽤나 마음에 들어서 한국으로 돌아오기 직전에 커피 한 잔을 또 했다. 그리고 다시 집에 들어가 어마 무시한 캐리어를 끌고 나왔다. 마지막 날 이야기는 마레지구 이야기할 때 하기로 하고. 카페와 레스토랑과 펍을 섞어놓은 듯한 이 곳은 이름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특별히 유명한 곳은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좋았다.

 

무심한 듯한 플레이팅과
향긋한 와인, 마음에 드는 카드, 바토무슈 티켓.

배가 고팠는지 음식도 다 맛있었고, 평소 잘 마시지 않는 와인도 향긋하니 좋았다. 하루가 지나고 밤이 오면 그게 그렇게 좋았다. 낮에는 돌아다니느라 여행을 하는 느낌이라면, 밤에는 그저 낯선 곳에 있는 기분. 다음번엔 한 여름밤의 파리를 거닐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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