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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름 Dec 18. 2016

긴자의 낮, 다이칸야마의 밤

@Ginza & Daikan-yama, Tokyo



명동의 낮과 밤, 홍대의 낮과 밤, 가로수길의 낮과 밤은 사뭇 다르다. 이미 익숙해진 동네는 낮이나 밤이나 비슷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그렇지 않은 동네는 낮과 밤이 많이 다르다. 같은 간판도 달라 보이고, 밤이 되면 나오는 포장마차 따위가 있을 수도 있고, 밤이 되면 문을 닫는 상점도 있을 수 있고, 그래서 길가를 거니는 사람들도 달라 보인다. 도쿄 신주쿠는 가장 번화한 동네답게 낮이고 밤이고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신주쿠의 낮에는 수많은 회사원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바쁘게 걷고 뛰어다니며, 밤이 되면 회식이나 저녁 약속으로 한껏 풀어진 표정이다. 서울과 마찬가지로 도쿄도 동네 따라서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같은 동네여도 낮과 밤이 또 많이 다르다.

 

2016년 나는 도쿄에 두 번을 다녀왔다. 한 번은 퇴사 직후인 1월, 한 번은 여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9월. 1월의 이야기를 다 풀어내고 나면 9월의 이야기를 풀어내게 되겠다. 쿠사츠 온천에 다녀온 다음날, 엄청나게 걸었다. 낮에는 긴자, 밤에는 다이칸 야마를 걸었다.


@Ginza, Tokyo

도쿄 긴자. 청담동 명품거리와는 사뭇 다른 긴자의 대로변, 신사동 가로수길과는 또 사뭇 다른 긴자의 골목길을 걸었다. 백화점에 별 관심이 가지 않아 미리 알아둔 이토야(Itoya), 도버 스트리트 마켓(Dover Street Market), BbyB를 들렀다. 도버 스트리트 마켓은 공사 중이라 애꿎은 유니클로(도버 스트리트 마켓과 몇 개의 층과 연결된 건물)만 들렸는데, 다행히 9월 다시 도쿄에 갔을 때에는 갈 수 있었고 일본에서만 싸게 구입할 수 있다는 꼼데 가르송에서 득템도 했다. 이 날 긴자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이토야와 BbyB였다.


이토야로 향하는 길.

길을 건너 이토야로 향했다. 사무용품 위주라고 하지만 각종 지류와 엄청나게 많은 필기류, 여행용품 등이 있다는 이토야. H가 강추했던 곳인 만큼 빨리 가보고 싶은 마음에 다른 매장은 전부 그냥 지나쳤다.


내부를 기대하게끔 하는 이토야의 간판.
@G.Itoya, Ginza

간판부터 심상치 않았다. 클립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고 잃어버리기 쉬운 문구용품 중 하나인데, 이토야의 간판을 본 순간부터 빨간 클립은 즉 이토야-가 되었다. 이토야는 무려 100년이 넘은 문구 브랜드로 메인 매장이라 할 수 있는 G.Itoya와 고급 필기도구를 판매하는 K.Itoya로 나뉘어 있다. 오랜 시간을 보낸 곳은 긴자의 대로변에서도 눈에 띄는 G.Itoya.


전면 윈도우를 통해 들여다 보이는 매장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매장 크기에 비해 좁은 문을 통해 들어가자 수없이 많은 카드들이 눈에 띄었다. 층별 안내도를 보니 카페와 실내 농장을 합쳐 총 12층이었고, 맨 위층에서부터 내려가며 둘러보기로 했다.


12F - CAFE

11F - FARM

10F - BUSINESS ROUNGE

8F - CRAFT

7F - FINE PAPER

6F - HOME

5F - TRAVEL

4F - MEETING

3F - DESK

2F - SHARE

1F - SENSE


아무도 손대지 않은 것처럼 잘 정돈되어 있고,
펠트 파우치가 정말 예뻤다.

브리프 케이스, 전자제품 파우치, 고급스러운 다이어리와 여권 케이스 등이 있는 4, 5층은 여성보다는 남성스러운 느낌이 강했다. 군더더기 없이 심플한 펠트 파우치가 마음에 들었다. 맥 에어 파우치를 새로 사고 싶었던 때라 한창을 만지작 거렸는데 결국 선택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최근에 집에서만 사용하고 있어서 새 파우치가 덜 간절해서가 아닐까.


진열된 싱품을 만지는 손길이 조심스럽다.
사무용품 외에도 귀여운 생활용품이 꽤 많다.

정갈하게 정리된 진열장을 만지는 사람들 손길이 조심스럽다. 조심스럽게 펜을 꺼내서 써보고 꽂혀있던 자리에 조심스럽게 다시 꽂는다. 작은 노트를 들어 혹시나 구겨질까 조심스럽게 몇 장을 넘겨보고 금세 다시 있던 자리에 놓아둔다. 나도 다른 사람들도 손길이 매우 조심스럽다.


왜 그런 때가 있지 않나. 잘 정돈된 매장에서 옷이든 뭐든 내가 만지고 지나갔을 때, 내 시선이 그곳을 벗어나기도 전에 점원이 무서운 속도로 그곳을 다시 정돈할 때 느껴지는 작은 불편함. 꽤 자주 이런 불편함을 느낀다면 내가 너무 예민한 것일까. 만지지 말라는 뜻은 아니겠지만 원래의 모습으로 최대한 빨리 원상복구 시키겠다는 점원의 손길이 작은 불편함을 일으킨다.


이토야의 직원 유니폼은 기억에 남지 않을 정도로 특별하지 않았다. 아마 무채색의 앞치마 정도였던 것 같은데, 손님들이 머물다 간 자리에 빠르게 가서 재 정돈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무심한 듯, 당신이 머물다 가든 말든 상관없이, 나는 나의 속도대로 점검을 하고 있다-는 느낌으로 슬쩍 재 정돈을 한다. 왜 이런 모습에 눈길이 갔는지는 잘 모르지만, 조금은 감동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래서인지 완벽하게 정돈된 매장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편안한 느낌.


6층과 5층 일부의 생활용품 코너도 꽤 괜찮았으나 이토야는 아무래도 사무용품이 더 강했다.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곳은 펜과 지류를 판매하는 코너, 그리고 고심 끝에 1층에서 카드도 몇 개 구입했다.  


맨 위층에서 아래층까지 정독하듯 보고 내려와,
고심끝에 쇼핑을 마쳤다.

이토야를 상징하는 빨간 클립도 몇 개 사서 나왔다. 여행을 가서 쇼핑을 하면 금액도 금액이지만, 부피와 무게도 무시할 수 없는 고려할 점이다. 1월이면 서울은 한겨울이지만 도쿄는 날씨가 조금 더 착했기 때문에, 가죽재킷을 입고 다닐 수 있었다. 옷도 가벼우니 손도 가볍고 싶어서 최대한 욕심을 눌렀던 기억이 난다. 프린스 아울렛에서 구입한 아디다스 슬립온도 가볍고 편했고, 모든 것이 완벽한 긴자의 낮.

 

혼자 다른 세상인 듯한 구두가게.

이토야에서 나와 뒷골목으로 들어섰다. 번잡한 뒷골목과는 동 떨어진 분위기의 구두가게를 발견했다. 앤티크 한 거리에 있었다면 눈에 띄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작은 가게였으나, 이 뒷골목에서는 유독 눈에 띄었다. 그리고 곧, 이 뒷골목에서 유독 눈에 띌 만큼 미니멀한 가게가 보였다. 이 곳이 BbyB.


@BbyB, Ginza

넨도(Nendo)가 브랜딩 한 초콜릿 가게 BbyB. 작고 검은 정사각형의 간판은 이 곳에 찾아갈 때 눈에 띄지만, 정면에서는 정면에서 보면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다. 생각보다 작고 생각보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이 곳은, 문을 열고 들어서야 진짜가 보인다.


뭔가 비현실적인 공간, 직원 둘에 손님 하나.

회사원으로 보이는 손님 한 명이 초콜릿을 구입하고 있었다. 직원 둘이 정성스럽게 포장을 하고 계산을 처리해주고 있었기에, 나는 입구 쪽에서 얌전히 내 순서를 기다렸다. 도쿄에서 맛볼 수 있는 벨기에 초콜릿, 넨도가 브랜딩 한 초콜릿 브랜드, 긴자 뒷골목에 아주 작게 자리 잡은 초콜릿 가게, 매력적일 수밖에 없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더 괜찮은 느낌이었다.


너무 심플하면 무섭다던데, 무섭기엔 또 귀엽다.

SF영화를 보다 보면 꼭 무서운 장면이 아니어도 무섭거나 섬뜩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흰색이 깨끗해 보이기보다 차가워 보이는 분위기, 칼로 도려낸 듯 날카로운 모퉁이들, 문을 열어보기 전까진 어떤 것이 안에 들어있을지 전혀 가늠할 수 없는 문-같은 것들을 볼 때의 느낌. 내가 가본 도쿄의 디저트 가게들은 대부분 포근한 느낌이 강했는데, 이 곳은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느낌이었다. 작은 정사각형 모양을 한 수많은 서랍들 속에는 초콜릿이 들어있겠지.


각각의 맛이 궁금해지는 비주얼.

계산 중이던 손님이 나가자, 직원 중 하나가 친절한 말투로 말을 건다. 작은 글씨로 맛이 설명되어 있으니 참고해 달라,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면 구매를 도와줄 것이며 밸런타인데이를 맞이하여 섞어서도 구입 가능할 수 있는 패키지가 있다고 했다.


고심 끝에 세 가지 맛을 골랐다.
다음에 가면 다른 맛을 사 보기로.

고심 끝에 고른 맛은 아주 기본이라는 다크 초콜릿, 체리 초콜릿, 솔트 캐러멜 맛이었다. 다크 초콜릿은 맛이 쉽게 연상되는 다크 브라운 컬러, 체리 초콜릿도 역시 맛이 쉽게 연상되는 코랄 핑크 컬러, 그리고 솔트 캐러멜 맛은 솔트(Salt)는 바다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연상에서인지 밝은 블루 컬러였다. 여행 중이라고 하자 내가 필요할 때 봉투에 넣으면 되도록 작은 쇼핑백을 개수대로 따로 챙겨주었다. 계산을 마치고 음료를 마시고 싶다고 하자, 안 쪽으로 안내해 주었다.


음료를 마실 수 있는 공간.

대체 조명을 어떻게 한 것일까. 하얗다 못해 푸르스름한 느낌마저 들었던 초콜릿 코너와는 완벽히 분리된 검은 공간이었다. 사진을 다시 샅샅이 뜯어봐도 조명을 대체 어떻게 한 것일까 신기하다. 물 한잔과 메뉴판을 챙겨주고는 고를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주었는데, 그러기엔 메뉴가 단출하였다.


시원한 초코음료를 주문하고 얌전히 기다렸다.
특별하진 않으나 만족스러운 맛.

이 곳에서는 커피보다 초코 음료를 마셔야 한다는 말이 기억나서 시원한 초코음료를 주문했다. 얼음을 최소화해서 음료 맛이 옅어지는 것을 방지하는 것 같았다. 오랜 시간 걷고, 또 오랜 시간 걸어야 하는 나에게 당을 충전해주는 시간.


정적이 흐르는데 불편하지가 않다.

손님이라곤 나 한 명뿐인 곳에서 짧은 휴식을 누리고, 다음에 또 와야지-하며 밖으로 나서자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확실히 겨울에 해가 짧다.


이세이 미야케 매장은 보는 내내 즐겁다.

이미 해가 지고 있어 다이칸 야마에 가면 한밤중이 될 것 같아 빠르게 걸었다. 그렇지만 이세이 미야케 매장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지. 플리츠 플리츠와 바오바오 백이 국내에서보다 매우 싸기 때문에, 꼼데 가르송과 함께 반드시 들러야 하는 매장이다.



@Daikan-yama, Tokyo

열심히 전철을 타고 달려온 다이칸 야마. 밤이라 그런지 한적하다. 츠타야 서점이 있는 T-Site와 인스타그램에서 핫한 메종 드 리퍼를 가 보기로 했다. 우선 T-site에 직진.


@Tsutaya books, Daikan-yama
여백이란 없어보이는 내부.
밤이라 그런지 더 아늑해 보인다.

저녁시간에도 사람들이 많이 붐빈다. 딱히 목적을 둔 코너는 없었다. 시선이 닿는 대로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꽤 많은 사람들이 서서 책을 보고 있었다. 여느 상점과는 달리 여백이 거의 없고 코너와 코너를 잇는 통로도 꽤나 좁은데 번잡스럽진 않다.


같은 잡지도 다른 언어로 풀어놓으니 달라 보인다.
사진들이 하나같이 곱다.

학생 때에는 디자인 서적 코너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을 테고, 무겁고 비싸도 어떻게든 하나 사가려고 애썼을 텐데 이젠 그런 마음이 줄었다는 것이 조금 씁쓸하다. 어쩌면 더 많은 정보를 인터넷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것도 한몫하겠지만, 열정이나 욕심이 어느 정도 줄었기 때문이라는 것도 부정할 수가 없다.


 

@Mason de Reffur, Dakan-yama

핑크색 텀블러와 에코백 사진이 인스타그램에 엄청나게 올라왔다. 지금은 조금 시들해진 것 같지만 한창 도쿄의 성지처럼, 너도 나도 이 곳에 들러 인증샷을 남기는 것 같았다.


여백이 돋보이는 디스플레이.
텀블러보다 타올이 더 탐난다.

가기 전엔 몰랐는데 에코백은 계산할 때 넣어주는 일종의 쇼핑백이었다. 이 에코백을 받기 위해서 뭐라도 사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나중에 들어서 알았다. 아이용품을 파는 코너도 마음에 들었고 룸 스프레이를 파는 코너도 마음에 들었는데, 타월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시그니처 컬러라 할 수 있는 인디언 핑크 컬러, 팥죽색이 도는 좀 더 톤 다운된 핑크 컬러, 그리고 그레이 컬러가 같이 두면 참 예쁘겠다 싶었다. 제대로 쓰려면 컬러당 2개씩은 사야 할 것 같은데, 금액이 착하지가 않았다. 나는 당분간 백수이니까 참기로 했다.



@Tenoha, Daikan-yama

다이만 야마, T-Site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테노하(Tenoha). 온갖 주방용품을 파는데 그 외에도 인테리어 소품, 식품, 액세서리도 판매한다. 작은데 너무 비싸다-싶은 것들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가격도 합리적이다. 식품류와 도자기 식기류는 어차피 구입하지 않을 것이었기 때문에, 패브릭 제품 위주로 둘러보았다.

 

T-SITE에서 가장 사랑하는 이 곳.
마음 같아선 다 쓸어오고 싶었다.

딱 보면 어디에 쓰이는 물건인지 알 수 있는데, 위 사진 왼쪽 아래 있는 것들의 용도를 도통 모르겠어서 직원에게 헬프를 외쳤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하고 묻자 직원이 조금 당황한다. 손님들이 왔을 때 테이블에 하나씩 올려놓거나 선물로 주는 것이라고 답하였고, 나는 되물었다. 테이블에 냅킨 외에 이 것을 하나씩 올려놓는 목적이 따로 있는고-하고 묻자 멋쩍게 웃으면서 답한 내용은 이러했다. 각 컬러마다 웰컴 메시지가 쓰여있는데(축하, 감사 등) 손님에게 이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기념품으로 하나 챙겨가게끔 하는 목적이라고 했다. 본인 생각에 그 의미를 100% 전달하지 못한 표정이길래 일단 고맙다 하고 말았다. 나중에 H에게 이 것을 물어보니 일본에 이런 제품들이 꽤 많다고 했다. 손님을 맞이하는 문화의 하나라고 볼 수 있겠다. 이 코너를 떠나 드디어 만난 린넨 코너.

 

컬러가 엄청난 린넨 코너를 발견했고,
고심 끝에 3종류 크기의 린넨을 고루 골라왔다.

컬러가 어찌나 예쁘고 다양한지, 조합하느라 애를 먹었다. 모노톤으로만 손에 집어보았다가 블루 계열로만 또 집어 보았다가- 한참을 뒤적거렸다. 코랄 컬러도 예뻤고, 체크무늬 들어간 것들도 예뻤지만 결국 내가 선택한 컬러는 화이트, 그레이, 데님블루, 청록빛이 도는 그린 컬러였다. 크기도 다양하게 3종류나 구입했으니 언젠가 요긴하게 쓸 날이 오겠지.


평화로운 다이칸야마의 밤.

쇼핑을 마치고 나오니 하늘이 칠흑같이 어두웠다. 신주쿠나 시부야는 한창 붐비고 번쩍거릴 시간인데, 다이칸 야마는 이 시간이 되니 한적하다. 다음엔 낮에 와야지- 하며 다시 신주쿠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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