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 20년 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70년대생 동기들은 누구나 비슷한 아버지의 아침 밥상을 본적이 있다는 것을 회식에서 공통적으로 알게되었다. 회식을 끝내고 돌아오는 택시안에서, [아버지의 밥공기]라고 핸드폰 메모에 적어 두었었다.
잊고 지내던 중에 브런치에 올라온 [밥에 담긴 가족 이야기]라는 주제를 보고 클릭클릭 하여 메모를 기억했다.정확하게 [아버지의 아침 밥공기] 라고 써두었고, 스크롤로 한참 아래로 내려가보니 [보고싶어요] 라고 쓰여있었다
겨울은 늘 아침이 되어도 캄캄했다. 7시 통근버스를 타야 하는 아버지의 출근일정은 늘 정확하게 알람에 맞춰서 일어났다. 화장실 문을 열고 조금후에 헤어드라이기 소리가 들렸다. 그 시간 동안 엄마는 밥과 국(탕)을 각각 밥공기와 국(탕)그릇에 담고, 작은 생선을 지졌다. 된장찌개 또는 두부새우젓찌개, 나박김치 또는 백김치와 한가지씩의 장아찌와 젓갈로 아버지의 출근 밥상을 준비하셨다. 아버지는 8각 밥상 앞에 앉으셔서 15분도 안되는 엄마표 아침밥을 드시고, 넥타이 메고 양복을 입고, [안녕히 다녀오세요] 라는 아들과 딸의 인사를 받고 출근을 하셨다. 아버지가 나가시자마자 우리는 바로 8각밥상으로 달려간다. 아버지가 남긴 밥과 반찬을 맛있다며 먹었다.
아버지의 아침 밥상은 육류보다는 채소와 해산물이 많다. 지금 기억해보면 아버지의 아침 밥상은 자연에 가까운 재료들로 만들어져 있었다. 요즘 우리가 말하는 웰빙음식 또는 힐링음식으로 기억된다. 즉 간이 세지 않아서 맛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생각해보니 뭐가 그렇게 맛있었을까?
아버지의 아침 밥상은 밥과 국(탕)을 기본으로 하여 된장 또는 간장의 발효음식으로 만든 찌개, 생선구이, 젓갈류와 장아찌. 밥상은 화려하지 않았다. 그 시대에 가장 기본적인 대한민국 아버지들의 출근 상차림이 아니였을까. 하루종일 업무에 시달려야 하는 아버지의 배를 든든하게 채우되, 나름 소화가 잘 될수 있는 것들 위주로 엄마는 상을 차렸다. 아버지의 아침과 저녁의 밥공기의 밥이 담아지는 양, 나물을 무치는 방법, 찌개국물의 색깔이 달랐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우리가 먹는 아침밥상과 아버지의 밥상이 다르다고 엄마에게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맛보다는 음식을 담은 그릇과 상차림이 어린눈에 너무 이쁘고 좋았던 것 같다. 같은 날 아침에 우리가 먹는 동일한 반찬도 있었지만, 나는 아버지의 밥상에서 남은 밥, 찌개, 반찬들이 더 맛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안남기고 다 드시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도 하면서... 참 철없는 걱정이였음을 사회생활 20년을 한 이제서야 반성을 한다.
아버지는 늘 한두숟가락의 밥을 밥공기에 꼭 남기셨다. '짜게 먹지 말아라' 수저를 놓으시면서 항상 말씀하셨다. 우리가 좋아할 만한, 잘 먹을 반찬은 더 많이 남기셨다 즉 더 많이 안드신게다. 아버지가 꼭두새벽 아침밥상부터 우리를 생각하고 있었음에 잠시 울컥해진다.
사회생활하면서 제일 힘든 것은 출근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회사에 가장 나오기 싫을때가 언제에요?" 라는 인터뷰 질문에 "아침에 일어날때요. " 라고 답했다. 우리모두의 대변인 같았다. 우리 아버지도 다르지 않았을거라고 나는 알게 되었다. 우리 아버지도....
한두숟가락의 밥이 늘 남아 있던 아버지의 은색 밥공기가 그립다.
그 앞에서 그 길지 않은 15분 동안 아침식사를 하시던 아버지가 정말 많이 보고 싶다.
메모장에 [그리운 아버지의 밥공기] 라고 쓰고, 오늘도 2년전과 동일하게 한참을 스크롤로 내려 써본다.
'아버지, 보고싶어요. 하늘에서 오빠와 잘 지내시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