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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요일 Mar 25. 2020

 시간의 [찰나역]   

같은 세상 그리고 너무나도 다른 세상 이야기 

글 쓰는 내내..... [그대 떠나는 날 비가 오는가]... 산울림 노래가 들린다. 


병원에 입원한 지 3일, 그리고 3일장! 하나밖에 없던 나의 친오빠와 그렇게 헤어졌다. 몸살감기라고 했는데 사망 원인은 A형 간염이라고 적혀 있다. 2009년 6월의 어느 날 믿기지 않는 일이 나와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 일어났다.  


2020년, 11년이 지났다.  

인사도 없이 가버린 2살 차이 오빠와의 짧은 만남을 나는 매번 동일한 장면으로 상상해본다.

조심스럽게, 간직하고 기억하고자 그 상상을 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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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겨있던 눈을 갑자기 떴다.  잠깐 졸았나 보다 

주말은 늘 회사일을 뒤로하고, 엄마 집에 간다. 운전을 직접 할 수도 있지만, 오빠는 늘 나를 데리러 온다. 

약속 시간보다 30분을 일찍 나와서 오피스텔 앞에서 오기를 기다린다.   

가능하다면 방금 산 커피가 다 식기 전에 와주었으면 하고 내심 기대해본다. 

30분이나 먼저 내려와서 기다리고 있어서인지,  기다림 시간이 꽤 길게 느껴진다. 

마지막 커피 한 모금을 원샷한다.  


오빠가 떠난 후에도, 나는 가끔씩 오피스텔 문 앞에서 기다린다. 

내가 사는 이 세상과 지금 이 동일한 순간 그가 살고 있을 그 세상을 상상한다.  

오빠가 있는 그곳과 내가 사는 이곳을 나는 똑같이 생긴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여름, 가을, 겨울. 봄과 같은 4계 절도 있고, 하늘과 땅도 있고, 자동차와 아파트도 있고, 회사도 있고 하물며 우리 가족도 있고, 반려견 봉구도 있다. 모두가 똑같은 세상이다. 

단, 다른 게 딱 하나 있다. 

내가 사는 이 세상에는 오빠가 없고,  오빠가 있는 그곳의 오빠는 나에 대한 기억이 없다. 

딱 하나가 서로 다른 세상인데, 우리 남매에겐 참 슬픈 다른 세상이다. 


상상 속인가? 현실인가? 나는 낯선 역에 서있다. 

기다리던 전철이 속도를 내며 들어온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밀려 나온다. 

누군가의 어깨에 몸이 흔들렸다.  "누가 밀고 이러지?" 앙칼지게 목소리를 내고 쳐다본다.  

'앗! 오빠?' 너무 닮았다.

내 눈과 마주친 그는 "죄송합니다"라는 형식적인 사과를 하고 앞으로 앞으로 가버린다. 


순간 내가 서있는 이 곳은 나의 세상도, 그의 세상도 아닌 시간의 [찰나역]이다. 

[찰나 역]은 보고 싶던 오빠를 보게 해 주었고,  듣고 싶던 오빠의 목소리를 아주 짧게 들려주었다. 

내 상상 스토리는 늘 같은 장소와 늘 같은 장면으로 시작하여 늘 결말이 없는 짧은 스토리다.


떠나버린 전철을 타지 못한 나는, 내가 사는 세상으로 돌아온다.

지하철역 많은 사람이 눈에 보이고, 다음번 들어오는 전철 안내방송이 들려온다. 현실로 돌아온다. 

'바보야! 달려가서 아느척을 했었어야지!' 하는 아쉬움도 남고,  내 눈을 보면서 '죄송합니다' 한마디 남기고 간 오빠가 진심으로 늘 서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상상 스토리는 11년째 변함이 없다. 

등장인물 : 나,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오빠 그리고 역위의 많은 얼굴들  

장소 : 늘 같은 장소, 시간의 [찰나역]. 

시나리오: 늘 같은 대사, 늘 같은 얼굴 표정.


인사도 없이 가버린 하나밖에 없던 오빠를 보기 위해 만들어 낸 상상 장소, 상상 이야기. 

나의 세상도, 그의 세상도 아닌 시간의 [찰나역]

이 뜨거운 커피 한 잔 다 식기 전에 그 장소에 가보고 싶다. 



찰나(刹那) 

 '찰나'는 산스크리트어의 '크샤나'에서 온 말로
'생각이 스치는 한 순간처럼 짧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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