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철현 Jul 20. 2023

어쩌면 우연, 아무튼 인연

나는 그렇게 편의점 회사에 입사하였다

2010년 봄, 스물아홉이 되던 해 취업준비생이었던 나는 마지막 학기 동안 열심히 입사 지원에 매달렸다. 딱히 소개할 거 없는 자기소개서는 쓸 때마다 곤욕이었고 한껏 나를 뽐내야 하는 주관적인 자기객관화는 몹시도 낯간지러운 일이었다. 기업마다 문항도 다르고 정해진 글자 수도 천차만별이었던 자소서란 숙제는 취준생에겐 하염없이 걸어도 아득하게 남겨진 오르막길 같았다. 밤에 쓴 편지와 자소서는 부치는 게 아니라기에 가뜩이나 잠도 많은데 한동안 새벽형 인간으로 지냈다. 그렇게 직장인이 되기 위해 억지 미라클 모닝의 힘을 빌려 매번 같지만 다른, 겸손하지만 적당히 우쭐대는 아이엠 그라운드 자기소개를 끊임없이 반복해야만 했다. 진짜 너무너무너무 쓰기 싫을 때는 그냥 ‘아~싸, 킹콩 팬티’로만 자소서를 채우고 싶었다. 그때의 고단함과 간절함은 흡사 각혈을 하며 글을 썼던 근대 작가 못지않았다.


나는 대학에서 광고학을 전공했다. 그래서 당연히 광고 회사에 취업할 줄 알았고 또 그러길 바랐다. 하지만 광고업계에 먼저 발을 디딘 선배와 동기들은 한사코 내 꿈을 만류했다. “도시락 싸들고 말리고 싶다”, “진짜 광고를 하고 싶으면 대행사 말고 광고주가 돼라”, “니가 들어오고 내가 탈출할게” 등등 직장인, 광고쟁이, 을의 설움을 하나같이 쏟아냈다. 하지만 그들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의기양양했던 내가 광고회사 서류전형에서 모두 광탈했기 때문이다. 전혀 의도치 않은 방식으로 그들을 안심(?)시키는 바람에 나도, 그들도 적잖이 민망해했다. 故데이비드 오길비(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광고인)처럼 한국 광고계의 총아가 되고 싶었지만 당장 백수계의 총아가 될 판이었다.


벼랑 끝 취준생에겐 좌절마저 사치였다. 조급해진 나는 취업사이트에 올라오는 채용 공고를 닥치는 대로 쓰기 시작했다. 나의 적성과 흥미 따위는 중요치 않았고 지원하는 회사와 업종에 무조건 나를 바득바득 꿰맞췄다. 정유회사 자소서에는 경유에 밥을 말아 먹고 휘발유에서 수영이라도 할 것처럼 허세를 부렸다. 그러나 내가 수영을 못 한다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다. 역시 대기업은 대기업. 그렇게 나는 약 3개월 동안 총 42개의 지원서를 냈고 정말 운이 좋게도 이동통신, 맥주, 편의점 회사에서 면접의 기회를 얻었다.

첫 번째 이동통신 회사 면접은 관광버스를 타고 연수원에 들어가 1박 2일 합숙을 했다. 으리으리한 연수원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하루 종일 온갖 형식의 면접을 다 봤다. 마지막 자유면접 때, 면접관들이 궁금한 게 있으면 아무 질문이나 해보라고 했다. 순진했던 나는 “업무 강도는 어떤가요?, 정시 퇴근은 할 수 있나요?” 이딴 걸 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워라밸이란 단어조차 없던 시절, 회사에서 밤낮 숙직을 하겠다고 해도 모자랄 판에 새파란 지원자가 정시 퇴근이나 챙기려 하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오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면접관들도 '뭐야 이 녀석, 회장님 아들인가?' 하는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다행히 그중 신부님처럼 인상 좋은 한 분이 미소를 지으며 “부서마다 업무 강도는 좀 다르긴 한데 직장인에게 퇴근만큼 출근도 중요한 거 아닐까요? 허허허“라고 친절한 답변을 해줬다. 이 말은 친절한 '너 탈락'이란 의미였다.


이통사에서 고배를 마신 후 두 번째 맥주 회사 면접을 위해서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 회사의 맥주를 종류별로 마시면서 혹여 무슨 말이라도 시킨다면 반드시 '퇴근은 죄악, 야근은 행복‘이라 하겠노라 이미지 트레이닝까지 단단히 했다. 결전의 날, 아침부터 점심까지 다양한 면접을 거쳤다. 맥주의 시원한 목넘김처럼 꼴깍꼴깍 매 단계를 순탄히 넘기고 드디어 마지막 순서. 다수의 임원들이 일렬로 쭉 앉아 있었고 (또)지원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보라고 했다. 이때다! 나는 제일 먼저 손을 들었다. 그런데 그사이 재빨리 작전을 변경했다. 준비한 멘트 대신 면접을 보러 오는 길에 지하철역에서 우연히 마주친 한 장면에 대한 얘기를 하기로.

“오늘 강남역에 내렸는데 출입구에 붙어 있는 경쟁사의 랩핑 광고를 보았습니다. 우리 집 앞에 남의 집 간판을 걸려 있는 것 같아 매우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중략) 제가 이 회사에 입사하게 되면 경쟁사의 저런 도발에 흔들리지 않도록 OO맥주를 최고의 회사로 만들겠습니다!”

말이 끝나자 거기에서 가장 높아 보이는, 얼굴에 ’내가 킹왕짱‘이라고 쓰여있는 분이 갑자기 ’으하하~‘ 호탕한 웃음과 함께 나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워 약 3.5회 흔들어 보였다. 생각지도 못한 면접관의 격한 리액션에 나도 가만있을 수 없어 엉거주춤 쌍따봉으로 화답했다. 오는 따봉이 좋아서 가는 따봉에 살짝 애교를 얹였던 것인데 뭐가 재밌었는지 거기 있는 사람들이 다 같이 웃었다.


마지막으로 편의점 회사 면접. 다른 일은 많이 해 봤지만 편의점 알바는 해본 적이 없어서 아는 것이 많지 않았다.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다른 지원자들은 자신의 알바 경험을 토대로 따박따박 질문에 답했다. 어떤 지원자는 본인이 사는 행정구역 내 모든 편의점을 방문하고 이를 증빙하는 사진과 보고서를 책자처럼 만들어 왔다. 대단한 열정이었다. 양심이 있다면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저 대신 이 사람을 뽑아주십시오'라고 해야 할 것 같았다. 어리버리한 나는 기껏 한다는 소리가 “우리나라 편의점도 해외 진출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시에는 누가 들어도 허무맹랑한 말들을 마치 엄청난 아이디어인 양 떠들었다(지금은 그 말이 현실이 되어 감회가 새롭지만). 쟁쟁한 지원자들 사이에서 기가 눌려 빨랫줄에 말려놓은 오징어마냥 힘을 쭉 빼고 의식의 흐름에 맡기는 게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전략이었다. 그나마 마음이 편했던 것은 난데없는 미션을 던져주고 다짜고짜 풀어보라던 이전 면접들과는 달리 편의점 회사는 나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조금 더 궁금해했다. 반건조 오징어의 느슨한 화법으로 대학생활 에피소드부터 얼마 전 동생과 북한산에 올라갔던 일까지 미주알고주알 풀어놓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면접을 잘 봤단 느낌은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기분이 가볍고 좋았다.


얼마 후 맥주 회사로부터 합격 통지를 받았다. 그리고 편의점 회사에서도 축하 메시지가 도착했다. 꿈만 같았다. 바늘구멍을 뚫은 취업 성공보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으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뛸 듯이 기뻤다. 나에게도 이런 날이 오다니! 마침내 선택의 기로에 섰다. 맥주 회사 vs 편의점 회사. 어디로 가야 할까? 고심 끝에 나는 매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그동안 대체로 높은 승률을 가져왔던 나만의 공식을 쓰기로 했다. 그것은 최대값 승리법. 최근 일주일 동안 내가 맥주를 마신 횟수와 편의점에 간 횟수를 세어 보았다. 3대 7. 편의점 승! 미래 직장을 고르는 중차대함에 비해 말도 안 되게 허접한 알고리즘이지만 숫자만큼 강력한 논리는 없었다. 또, 막상 답을 정해 놓고 보니 편의점이 훨씬 더 재밌을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이 세상에 재미를 이길 수 있는 건 몇 없잖나?! 그렇게 나는 편의점이란 세계에 ’어쩌면 우연, 아무튼 인연‘으로 입문하게 됐다. 입사한 그해 여름은 굉장히 뜨거웠고 그로부터 어느새, 벌써, 맙소사 열 번째 여름을 맞이하고 있다. 세월 참 빠르다. 그게 우연이든 인연이든 초보의 초보(初步)는 나름의 히스토리, 그 만의 이유와 소신이 있기에 운명적 특별함을 지닌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위대한 결과란 애초에 후회 없는 선택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굳은 의지와 각고의 노력이 만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의 새로운 시작을 볼 때마다 나의 그 첫발을 기억하며 진심으로 열렬한 응원을 보낸다. 믿어라 그리고 열심히 달려라. 그럼 곧 당신의 전성기가 올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