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과 나의 거리
100원 더 비싼 막걸리가 100배 더 맛있었으면
황금연휴를 맞아 오랜만에 동생이랑 부산 고향집에 내려갔다. 짐을 부리고 옷을 갈아입었을 때 즈음 부산역에 다다른 기차 안에서 미리 시켜놓은 치킨이 딱 맞게 도착했다.(부산역과 집은 차로 10분 거리 밖에 되지 않아 평소 이렇게 얼리 오더를 해둔다) 꿀 타이밍! 넣어 본 적은 없지만 버저비터를 넣은 것 같은 쾌감이었다. 딩동~! 배달원이 초인종을 누르자 어머니는 본인이 계산하겠다며 지갑에서 주섬주섬 돈을 꺼내려하셨다. 배달 앱에서 주문할 때 이미 결제를 했지만 나는 장난기가 발동해 시치미를 뚝 떼고 내가 계산하겠다며 덩달아 지갑을 찾는 시늉을 했다.
"(계산) 제가 할게요. 제가~!"
"어허이~ 와 이라노? 내가 할끼라. 고마 앉아 있어."
어머니와 서로 돈을 내겠다며 몸싸움을 벌이다 나는 헛계산을 위한 계산대로 못 이기는 척 물러섰다. 잠시 뒤 배달원에게 이미 계산이 끝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는
“에이~ 벌써 했구마! 니가 와 했노? 엄마가 사줄낀데!”
하시며 안타까운 표정으로 치킨을 들고 들어오셨다. 깜짝 카메라에 걸린 사람처럼 놀람과 허탈에 빠진 어머니의 반응은 예상대로 꿀잼이었다. ‘엄마가 사주겠다’는 그 말은 언제 들어도 포근했다. 부산집에 올 때마다 써먹는 장난인데 어머니는 매번 처음처럼 속으신다. 그것은 내가 한결같이 철없는 아들이기 때문일 것이며 그런 아들에게 하나라도 당신 손으로 먹이고 싶은 어머니의 사랑이 변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치킨을 뜯으며 다 같이 TV를 봤다. 아버지는 오랜만에 내려온 아들들에게 리모컨을 이양했다. 마침 지난주 본방을 놓쳤던 <쇼미더머니>가 재방을 하고 있었다. 동생과 나는 누구의 비트와 플로우가 더 좋았고 누구의 딕션과 훅이 귀에 더 때려 박혔는지를 논평하며 닭뼈와 함께 우승 후보들을 발라내고 있었다. 세미 파이널이 시작돼서 그런지 경연의 분위기는 점점 고조됐다. 그런데 옆에서 가만히 TV를 지켜보던 아버지가 툭 하고 던지신 한마디.
“이기 머꼬? 말 빨리하기 대회가?”
이 순수한 질문은 나의 웃음 버튼을 사정없이 눌렀다. 꺼이꺼이꺼이~ 자신만의 멋과 스웩으로 가득 찬 힙합씬 전체를 한방에 순살 치킨으로 만들어 버리는 촌철살인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쇼미더머니>가 명절날 특이한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 나와 장기를 겨루는 진기명기 프로그램처럼 보였다. 아버지 말씀대로 말 빨리하기 대회라면 아웃사이더 1등, 장문복 2등, 아버지한테 빡쳤을 때 우리 어머니 3등! 아버지는 영어 리스닝 시험이라도 치르는 학생의 표정으로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못 알아먹겠다고 혀를 내두르셨다. 감탄인지 조롱인지 모를 아버지의 힙합 감상에 잠시 넋을 잃고 있는 사이 어머니도 마이 턴을 기다렸다는 듯 살을 붙이셨다.
"야들 술 취한 거 아이가? 다들 혀가 꼬인네“
악 그만, 그만요! 꺼이꺼이꺼이~ 만약 100분 토론에서 ‘힙합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래퍼들과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맞붙었다면 래퍼들은 찍 소리도 못하고 불기둥 속으로 사라졌을 거다. 힙합씬이 제 아무리 말을 빨리한다 해도 트로트 세대의 이 순백의 무지몽매를 이길 재량은 없을 테니.
이렇게 전형적인 올드스쿨인 나의 아버지, 어머니가 평소 거들떠보지도 않던 편의점을 가신다. 아들이 편의점 회사를 다닌다는 이유에서다. 당신들이 많이 팔아줘야 아들이 잘될 거라는 아득한 믿음 때문에. 자동차 회사라도 다녔으면 큰 불효를 할 뻔했다. 나의 작고 소중한 월급에 부모님의 애틋한 사랑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니 평소 밥벌이가 새삼 더 뭉클하게 느껴졌다. 원래 부모님은 편의점과 멀찍이 떨어져 계신 분들이었다. 우리 집의 거의 모든 소비는 어머니가 전담하셨는데 주요 소비처는 재래시장 아니면 대형마트, 동네슈퍼였다. 편의점은 어머니가 필요로 하는 미나리나 고등어를 팔지 않았고 두부와 콩나물은 시장보다 비쌌으며 집밥처럼 나온 도시락은 진짜 집밥을 드시는 두 분에겐 관심 밖의 음식이었다. 이것저것 따질 것도 없이 부모님은 편의점에 딱히 갈 일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아버지가 막걸리를 사러 집 앞 마트 대신 편의점을 가신다. 이 얘기를 들은 동생은 "예? 아부지가 편의점을?!"이라며 화들짝 놀랐다. 어머니는 해안산책로에 운동하러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종종 커피를 사드신단다. 우리에겐 평생 트로트만 들으시던 부모님이 어느 날 갑자기 힙합도 한번 들어볼까 하시는 것과 같았다. 한 번은 아버지에게 편의점에서 사 드시는 막걸리가 동네슈퍼 막걸리와 맛이 다르더냐고 물어봤더니 똑같은 막걸리니 맛이야 다를 바 없지만 단지 편의점께 100원 더 비싸다고 하셨다. 평소 100원을 100만 원처럼 아끼시는 아버지이기에 그 말속엔 아들을 향한 무뚝뚝하지만 진한 사랑이 배어있음을 나는 잘 안다.
똑같은 막걸리겠지만 기왕이면 편의점 막걸리가 아버지에게 100배 더 맛있게 느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보다 편의점을 자주 가시는 어머니에게는 포인트 적립을 하시라고 멤버십 어플을 깔아드렸다. 마트의 적립률이 0.1%인데 편의점은 그보다 스무 배나 높은 2%를 적립해 준다고 했더니 반색하시다가 “그러다 너희 회사 망하는 거 아니냐”고 걱정하셨다. 나는 회사가 망하면 이제 치킨은 어머니가 진짜 사시라고 했다.
아무리 그래도 아버지는 동네슈퍼가, 어머니는 시장이 여전히 더 편하실 거다. 수십 년간 퇴적되어 온 그 익숙함을-아무리 아들이 편의점 회사를 다닌다 하더라도-모래 위 글씨처럼 한순간에 쓱 지울 순 없다. 어릴 때 어머니 손을 잡고 시장을 따라다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지금 어머니에게 편의점에 대해 알려드리는 것처럼 그때 어머니는 어린 나에게 시장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 주셨다. 그래서 시장은 갈 때마다 재밌었고 볼 때마다 새로웠다. 지금 부모님에게 편의점은 과연 어떻게 비춰지고 있을까?
세월이 많이 흘렀다. 부모님은 여전히 그때의 시장에 서 계시고 나는 길 건너 편의점에 서 있다. 시장과 편의점의 그 거리는 부산과 서울, 트로트와 힙합, 나이 드신 부모님과 훌쩍 커버린 나와의 거리를 모두 함축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