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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결혼 소식을 미나리곰탕 먹다가 말하니

절친이 결혼한단다, 나는 워킹홀리데이 가는데

by 이하늘

”나는 내년에 결혼할 거 같은데.“

“씨, 바ㄹ...”


미나리곰탕을 먹다가 갑작스레 듣게 된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그전까지 2달 앞으로 다가온 나의 워킹홀리데이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워킹홀리데이 비자 신체검사를 마치고 부랴부랴 달려온 미나리곰탕 집에는 이미 친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놀랍게도 내가 앉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음식이 나왔다.


“야야 진짜 미안해, 끝나자마자 달려온 건데…”

“아냐, 대박 타이밍 죽인다. 도착하자마자 음식 나오네.”

“그러게.“

“미팅은 잘 끝났어?”

“아니, 미팅이 아니라… 사실 나 워킹홀리데이 가. 비자 발급받으려고 신체검사받고 오는 길이야.“

“어? 갑자기?“

“응. 사실 예전부터 가고 싶다고 생각하고는 있었어. 근데 지인이 올해 말에 워킹홀리데이를 갈 거라고 하더라고. 나도 마침 퇴사도 했고, 영어 공부도 하고 있고, 아직 취업은 좀… 하고 싶지 않아서, 타이밍이 딱 맞는 것 같아서 가려고.”

“어디로? 언제?“

“호주. 5월 초에 가려고 준비 중.”

“5월? 두 달밖에 안 남았네?”

“응. 그래서 가기 전에 보고 싶어서 만나자고 한 거야.”

“헐…“


호주는 어떻냐느니, 워킹홀리데이를 가면 무슨 일을 할 거냐느니 같은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는 천천히 미나리곰탕과 미나리육회비빔밥을 먹었다. 사실 나는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친구의 질문에 계속 답변하다가,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슬슬 미나리곰탕을 한 입 하려던 참이었다. 아침도 거르고 일찍 신체검사를 받고 오느라 비어있는 속에 향긋한 미나리를 집어넣으려던 순간에 친구가 말했다.


“나는 내년에 결혼할 거 같은데.”


뭐? 너무 충격적인 소식에 반사적으로 욕이 먼저 나왔다. 말문도 막히고 식도도 막혔다. 이미 입에 들어온 미나리곰탕을 대충 삼키고 친구를 바라봤다. 콜록대는 내 모습을 보며 친구는 평소처럼 웃으며 미나리곰탕을 휘적거렸다. 다만 내 반응이 생각보다 격했는지 머쓱한 듯 웃었다.

결혼이라고?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알게 된 내 첫 친구가, 1학년 때 자동으로 배정된 기숙사에서 함께 지내며 그 후로 졸업 때까지 서로를 룸메이트로 선택하고 동고동락하던 내 친구가 내년에 결혼을 할지도 모른다고 한다. 물론, 내 친구는 예전부터 언젠가 결혼하게 되면, 이라는 가정을 하고 미래를 이야기하기도 했기 때문에 언젠가 결혼할 것이라 생각하긴 했다. 그리고 그 순간이 이제 다가온 것이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래도 어쩌면 내 친구가 결혼을 안 할 수도 있잖아, 그냥 이렇게 각자 일하면서 살다가 종종 놀러 다닐 수도 있잖아,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딱히 결혼 생각이 없어서 다른 친구들도 그러기를 바란 것 같다.


언제? 프로포즈는 받았어? 상견례도 했어? 같은 질문을 하다가 현실감이 없어서 그냥 멍하니 ‘헐…’이나 ‘대박…’만 중얼거렸다. 결혼 이야기가 나온 지 한참 됐는데도, 내 입에서는 축하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니, 나올 수 없었다. 말문이 턱 막힌 기분이었다. 결혼이라는 제도에 부정적인 입장인 나였지만, 그래도 지인들이 결혼한다고 하면 각자 다른 가치관을 존중하며 축하의 인사를 해주었다. 회사 동료들이 청첩장을 돌리며 인사할 때는 ‘축하해요! 언제예요? 와 이때? 너무 좋을 때 결혼한다~’ 같은 말을 청산유수처럼 뱉으며 모든 결혼식에 참석하던 나였는데, 10년도 넘게 알고 지낸 나의 절친이 결혼한다는 얘기에 도저히 축하한다는 말이 나오질 않았다. 그러다가 ‘아직 아무한테도 얘기 안 했어, 너한테 처음 얘기한다’라는 얘기를 듣게 되어서야 내 입에서 나온 건 울음소리였다.


“미안… 흐엉…”

“미친 거 아냐 왜 울어?”

“축하한다는 말 못 해줘서… 근데 나한테 처음으로 얘기한 건데… 너는 결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니까 그런 생각하고 있는 애들한테 먼저 말했으면 축하받았을 텐데… 나는 계속 우니까… 그래도 네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해… 진짜로…“


친구는 어이없어서 웃었다. 그러나 이윽고 나를 따라 울었다.


“아니 미친… 니가 우니까 괜히 나도 눈물 나잖아.”


대성통곡을 한 건 아니지만, 우리는 미나리곰탕을 앞에 두고 휴지로 눈물을 콕콕 찍으며 울었다.


“그런 말 안 해도 니가 진심으로 나를 위해주면 된 거지.”


너무 사랑하는 나의 친구가 새로운 가족이 생긴다. 자기가 선택한 가족이 생긴다. 세상을 남과 가족으로 나눈다면 나는 친구와 남인데, 내 친구와 알게 된 지 2년밖에 되지 않은, 마음이 변하면 떠날 수도 있는 사람이 내 친구의 큰 신뢰를 얻고, 선택을 받아 가족이라는 영역 안으로 들어간다. (다른 친구에게 이렇게 얘기했더니, 너무 극단적으로 질투하는 거 아니냐는 말을 들었다. 그런가? 그럴지도 모른다. 내 대인관계는 좁고 깊어서, 이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너무 소중하고,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는 걸. 아직 결혼식장을 잡은 것도 아니고, 상견례를 한 것도 아니지만, 준비하는 동안 애인되는 사람이 내 친구를 힘들게 하면 가만두지 않을 거다.) 그래,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가장 친한 친구 중에서 여태 결혼한 친구가 없어서 더욱 충격받았던 것 같다.

결혼에 관한 온갖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이야기가 가득하지만, 나는 워낙 모든 일에 걱정이 앞서는 사람이라 내 친구 앞에 가시밭길이 펼쳐진 것처럼 느껴졌다. 인생이 언제나 꽃밭일 수도, 가시밭길일 수도 없는 것이라는 걸 안다. 이 세상에 바다도, 사막도, 초원도 숲도, 시골도, 도시도 있는 것처럼 인생도 똑같은 건데.


“아니 웃겨 평생 못 보는 것도 아닌데…”

“그니까… 나중에 애 데리고 나올게.”

“미친 남편한테 맡기고 나와!”


심지어 애 생각도 하고 있다! 물론 아이나 동물을 좋아하는 내 친구니까 그럴 만도 하다.


“야 그만 울어, 누가 보면 전 애인인 줄 알겠네.”

”아 눈물이 계속 나오는데 어쩌라고… 하… 근데 진짜 그만 울어야겠다.“


복작복작한 미나리 맛집에서 계속 우는 것도 대기 손님에게 예의가 아니었다. 도저히 남은 곰탕이 넘어가지 않아 당분을 채우러 나가기로 했다.

카페에 가는 길에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이 눈가를 식혀주었다. 왜인지 친구에게 기대서 꽈악 끌어안아 주고 싶었지만, 여태 그런 사이는 아니었어서 꾹 참았다.

30살. 나는 혼자 워킹홀리데이를 떠날 준비를 하고, 친구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준비한다.

결혼을 한다 만다의 이야기는 아니다. 이건 그냥 수억 개의 선택지 중 두 개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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