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
하루 종일 그간 쌓여있던 영수증을 모아 차곡차곡 가계부에 정리한 날, 항목과 숫자만을 오갔던 시간들 속에서 시적 정황을 찾지 못했다.
자두를 먹었다는 메모로 시를 쓴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처럼 나의 별것 아닌, 너무나 시 같지도 않은 가계부 쓰는 일을 그대로 옮겨 적었다. 내가 정한 항목들이지만 12개라는 항목으로 나의 시간들이, 돈과 끈적하게 연결되어 돌아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는데 몇 개월, 몇 년의 시간들이 그런 틀 안에서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새로운 틈을 만들고 그 틈 밖으로 미끄러질 방법은? 나에게 묻는다.